대선 한달여 앞두고… 20조원 해상풍력 단지 지정한 산업부
전남 신안 집적화 단지 허가 논란
산업통상자원부의 전남 신안 해상풍력 집적화 단지 지정이 논란을 키우고 있다. 대선을 한 달여 앞두고 정부가 20조원이나 들여야 하는 해상풍력 사업을 허가해 논란이 커지는 것이다. 동해안과 호남 등에서 생산한 전기를 수요지인 수도권으로 보낼 송전망이 부족해 곳곳에서 발전소가 멈추는 현실에서 어려움이 심해질 수 있다는 우려가 커진다. 더욱이 이번 집적화 단지 지정으로 한전은 더 비싸게 전기를 사고, 추가로 지자체에 연간 2000억원가량 보조금을 지급해야 해 결국 전기료 인상으로 이어지는 게 아니냐는 지적도 나온다. 업계에선 “하필이면 지금 같은 때에 서둘러 지정하는 이유를 모르겠다”는 비판도 나온다.
◇왜 지금인가?
산업부는 지난 22일 3.2GW(기가와트) 규모 ‘전남 신안 해상풍력 발전 사업’을 ‘신재생에너지 집적화 단지’로 지정·공고한다고 밝혔다. 3.2GW는 건설 중인 신한울 3·4호기 등 기(基)당 1.4GW인 신형 원전 2기보다 크고, 지금까지 입찰을 통과한 해상풍력발전 총량인 2.7GW보다도 많은 규모다.
집적화 단지는 지자체가 해상풍력 입지를 발굴하고 지역 주민과 어업인 등을 직접 설득하며 사업을 주도하는 방식이다. 지자체는 완공 후 전력 생산·판매 과정에서 일정 수익을 얻을 수 있고, 송전망과 연결하는 설비도 일괄적으로 구축해 비용 부담을 덜 수 있다. 해상풍력 사업자들이 난립해 난개발이 이어지고, 지역민들의 반대로 신재생에너지 사업이 제때 진행되지 못하자 지자체에 ‘당근’을 제시하며 사업에 속도를 내기 위한 취지다. 앞서 지난 2월엔 전북 고창·부안 1.4GW 해상풍력 사업이 집적화 단지로 지정됐다.
하지만 전남도가 추진하는 이번 사업은 이런 혜택을 주기에는 부적절하다는 논란이 있었다. 개별 사업자들이 진행하다 각종 문제로 난관에 부딪혔던 여러 사업을 묶은 데 지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업계에서는 이번 지정을 두고 대선이 임박한 시점에서 정치권의 눈치를 본 것 아니냐는 지적도 나온다. 한 업계 관계자는 “2019년 시작한 사업을 왜 하필이면 지금 지정했는지 궁금하다”고 했다. 정부는 수년째 협의를 계속해 왔고, 지난해 11월 전남도의 신청에 따라 기한에 맞춰 심의하고 결론을 낸 것이라고 설명했다. 정부 관계자는 “산업부, 기재부, 과기정통부, 환경부, 해수부 등 관계 부처와 전력 거래소 등 유관 기관, 민간 전문가 등이 참여한 가운데 송배전망 계획 등에 근거해 심의가 이뤄졌다”고 말했다.
◇지금도 송배전망 미어터지는데…
하지만 동해안에 잇따라 건설된 신규 석탄화력발전소들이 수도권으로 전기를 보낼 방도가 없어 멈추고, 전국적으로 송배전망 건설이 계획보다 수십 개월씩 늦어지는 게 다반사인 상황에서 비현실적인 장밋빛 계획에만 근거한 결정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특히 호남권 송배전망 문제를 해결할 열쇠로 꼽히는 서해안 HVDC(초고압 직류 송전망)는 계획대로 기술 개발과 구축이 가능할지 불안감이 큰 상황이다.
2022년부터 경쟁 입찰을 거쳐 사업이 본격화한 해상풍력 설비 2.7GW 중 80%에 가까운 2.1GW가 전남 지역에 몰려 있는 현실에서 이 지역에 또다시 대규모 추가 해상풍력 단지 건설이 추진되면 전력망 상황이 악화할 것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정용헌 전 아주대 교수는 “지금 호남 지역은 발전 설비는 늘어나는데 수도권으로 보내는 송전망은 늘지 못하면서 미어터지는 상황”이라며 “이런 상황에 대한 고려 없이 발전소가 들어오면 결국 송전망은 견디지를 못한다”고 말했다.
지난해 기준 호남 지역의 전력 생산량은 8만7542GWh(기가와트시)로 판매량(5만5221GWh)을 크게 웃돈다. 발전량의 40% 가까이 다른 지역에 내다 팔고 있다는 뜻이다. 생산한 전기를 수도권으로 실어 보낼 송전선은 그대로면서 해상풍력 사업이 계획대로 진행되면, 원전과 석탄화력발전소가 돌아가며 가동을 중단하는 동해안 지역 발전소와 같은 일이 일어날 수 있다고 우려한다. 박종배 건국대 교수는 “송배전망 확충, 데이터센터 건설과 같은 수요 확보까지 같이 진행되지 않으면 전기를 만들어도 보낼 수가 없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해상풍력에서 만든 전기를 생산·판매하기 위해 전남 영광에 있는 한빛 원전의 허가 연장을 막을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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