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수신문에 '극우'가 스며들었다
[내란 종식 이후 저널리즘 ①]
'극우' 택한 매일신문·아시아투데이, 내란옹호 사설 각각 17건·65건
조선일보, 사법부에 서부지법 폭동 책임 묻는 '물타기' 논조
극우 논조 尹 지지층 만나 확대 재생산… "극우적 주장 시장에서 퇴출돼야"
[미디어오늘 윤수현, 박서연, 박재령 기자]
윤석열 전 대통령이 불러온 내란 사태로 보수언론이 분화되고 있다. 내란 사태를 바라보는 관점부터 사법부·수사기관에 대한 평가까지. 보수언론이라도 논조가 180도 달라진다. 보수언론을 통해 나오는 극우·물타기성 논조는 극우세력을 만나 확대·재생산되고 있으며, 부정선거 음모론 확산이라는 부작용도 만들고 있다.
극우 논조 강화된 매일신문·아시아투데이… 조선일보는 물타기
이번 국면에서 보수언론은 크게 △윤 전 대통령을 적극 옹호하고 헌법재판소 판단을 존중하지 않는 매일신문·아시아투데이 △윤 전 대통령을 옹호하진 않지만 사법부·수사기관·민주당 비판에 집중한 조선일보 △비상계엄 선포 초기부터 내란 세력과 선을 긋고 대통령 탄핵을 요구한 동아일보·중앙일보로 분류할 수 있다.
지난해 12월4일부터 지난 22일까지 신문 사설을 분석한 결과, 매일신문·아시아투데이가 비상계엄이나 윤 전 대통령을 옹호하는 사설 건수는 각각 17건·65건에 달했다. 기성언론 중 가장 극단적 논조를 보이는 곳으로, 아시아투데이는 <법원은 尹 대통령 구속 취소하라> <헌재, 3·1절 국민의 뜻대로 윤 대통령 탄핵 각하하라> 등 사설을 내며 대통령 탄핵·내란 사태 수사의 부당성을 주장했다. 매일신문 역시 <윤 대통령이 밝힌 계엄 불가피성, 헌재는 경청하라> 사설에서 “동원된 계엄군 숫자는 소수였고, 계엄군은 국회의원 체포를 시도조차 하지 않았다”며 계엄이 해프닝이었다는 윤 전 대통령 주장을 옹호했다. 조선일보·중앙일보·동아일보에선 비상계엄·윤 전 대통령 옹호 사설을 찾을 수 없었다.
중앙일보·동아일보가 비상계엄 국면 초기부터 내란사태를 비판하고 윤 전 대통령이 책임을 져야 한다는 일관된 논조를 보인 것과 달리, 조선일보는 전략적 모호성을 취하고 물타기 논조를 택했다. 비상계엄 선포에 대해선 비판하지만, 동시에 사법부·수사기관·민주당을 비판하는 것이다. 지난해 12월4일부터 지난 22일까지 조선일보에 나간 사법부·수사기관·민주당 비판 사설은 총 63건으로, 중앙일보·동아일보(각각 9건)보다 압도적으로 많았다.
조선일보는 지난달 12일 <3년간 30회 연쇄 탄핵, 이것은 내란 아닌가> 사설에서 민주당의 탄핵소추가 내란과 다름없다는 주장을 내놨으며 서부지법 폭동이 있었던 지난 1월 <법원이 법원 난입 사태에 생각해야 할 것> 사설을 내고 폭동의 원인을 재판부로 돌렸다. 헌법재판소 흔들기도 눈에 띈다. 조선일보는 <헌재의 거듭되는 경솔하고 정파적인 행태> 사설에서 헌법재판관 중 우리법연구회 출신이 있다는 점을 지적했다. 이에 독자권익보호위원회에서 “승복 문제까지 우려되는 상황에서 지나친 헌재 흔들기는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지적이 나오기도 했다.
동아일보 관계자는 미디어오늘에 “위헌적 행위가 너무나도 명백했기 때문에 구성원들은 정부 비판적 논조가 상식적 보도라고 여겼던 것 같다”고 밝혔으며, 중앙일보 관계자는 “비상계엄이 잘못됐다는 것에 대해 회사 내 누구도 의심을 한 적 없다. 이런 판단이 논조가 된 것”이라고 했다.
매일신문·아시아투데이에선 극우적 논조뿐 아니라 부정선거 음모론도 확산됐다. 매일신문은 <헌재, 선거 부정 검증 않겠다면 尹 탄핵 심판 접으라> 사설에서 헌재가 부정선거 음모론을 검증해야 한다고 주장했으며, 아시아투데이는 <대수술·선거시스템 검증 없이는 선관위 못 믿어> 사설을 통해 중앙선관위 부정채용 의혹이 수면 뒤로 드러난 김에 부정선거 음모론도 검증해야 한다고 했다. 조선일보는 부정선거 음모론에 거리를 뒀지만, 필요에 따라 음모론을 부추기는 듯한 보도도 내놨다. 중앙선거관리위원회 문제를 지적하면서 “이러니 부정선거 음모론이 끊이지 않는다”고 비판하는 식이었다.
매일신문·아시아투데이는 헌법재판소 탄핵 결정을 불복하기도 했다. 윤 전 대통령이 임명한 헌법재판관조차 탄핵을 인용했지만 결과를 인정하지 않고 사법 불신을 유발한 것이다. 아시아투데이는 선고 후 <대한민국·헌법·국민 배신한 헌법재판관들, 역사의 심판 받을 것> 사설에서 “우파 재판관들마저 윤 대통령 탄핵을 결정했으니 이를 두고 역사가 심판할 것”이라고 했다. 매일신문은 <'선출되지 않은 권력'의 '선출된 권력' 파면, 과연 정당한가> 사설에서 “헌재가 국회 독재의 들러리로 전락했다”는 극단적 주장을 내놨다.
尹 지지 유튜버 “조중동 압도하는 매일신문”
민주적 기본질서와 헌재 결정까지 부정하는 극우적 논조는 주요 독자라고 할 수 있는 윤 전 대통령 지지층을 인식한 결과로 보인다. 논조가 극우화될수록 지지층의 선택을 받을 수밖에 없는 것이다. 실제 매일신문·아시아투데이는 내란 사태가 진행되면서 구독자가 증가한 것으로 알려졌다. 비상계엄 전까지 주변부에 있던 극우가 보수정당의 주류로 향해가고 있는 현 상황과 보수언론의 분화는 무관하지 않다.
아시아투데이 관계자는 미디어오늘에 “원래 보수적이긴 하지만, 비상계엄 이후 문제가 크게 드러났다”며 “실제 윤 전 대통령 지지자들의 구독이 크게 늘긴 했다. 계속 회사로 (구독 신청) 전화가 올 정도였고, 경영진이 이에 고무된 것 같다”고 했다. 매일신문 관계자 역시 미디어오늘에 “국민의힘 의원들과 극우 지지자들의 결집에 맞춰 사설 논조도 바뀐 것 같다”고 밝혔다.
실제 온라인 커뮤니티와 극우 유튜버 사이에선 “매일신문·아시아투데이가 진짜 우파 언론이다”는 주장이 공개적으로 나왔고, 유튜버 배승희변호사·고성국TV 등은 구독자에게 '조중동 절독'을 호소하기도 했다. 이에 따라 조선일보도 '전략적 모호성' 논조를 택한 것이라는 분석도 있다. 수도권 신문지국장은 지난달 미디어오늘에 “12월 탄핵 이후 조선일보 유료 독자는 1만5000명에서 2만 명 정도 빠졌을 것”이라고 했다. 최보식 전 조선일보 선임기자는 지난 1월 인터넷매체 최보식의언론에서 조선일보 절독 신청이 이어지고 있다며 “조선일보가 망상에 사로잡혀 계엄선포를 했던 윤 대통령과 더 이상 같이 갈 수 없다고 작별하려 하자, 아직도 윤통에 대해 미련을 못 버리는 보수층에서 '기레기' '왜곡보도'라며 배신감을 표출하고 있는 것”이라고 했다.
극우적 논조의 사설은 극우 유튜버에 소개되며 윤 전 대통령 지지층에 빠르게 퍼져나갔다. 구독자 11만 명 유튜버 권순활TV는 1월25일 <조중동 압도한 '선관위 전면검증' 매일신문 사설> 영상에서 매일신문의 부정선거 음모론 사설을 소개하며 “(매일신문은) 조중동 메이저 언론보다 정상적이라고 평가할 수 있다”고 했고, 이 영상엔 “조중동 절독은 애국 활동” “조중동 절독 대구매일신문 애국신문이다” 등 댓글이 달렸다. 구독자 119만 명 유튜버 성창경TV는 지난달 16일 탄핵 심판에 절차적 흠결이 발견됐다는 아시아투데이 사설을 소개하며 탄핵 반대 주장을 설파하기도 했다.
극우인사들은 지면을 통해 공론장으로 올라왔다. 아시아투데이는 <전한길 1명보다 못한 국힘 의원들의 탄핵반대> 사설에선 국민의힘 의원들이 전씨를 본받아야 한다고 했다. 매일신문은 <“자유 대한민국을 지키기 위해 싸우고 싸우고 또 싸웠노라”> 사설에서 그라운드C·전한길 등 극우인사들이 탄핵 반대 집회에 참석했다고 전하며 “(탄핵 반대 집회는) 공산주의와 전체주의를 향해 쏟아낸 엄중한 경고이자 분노의 표출”이라고 했다.
극우적 주장, 주류언론 담론에서 퇴출시키려면
윤 전 대통령은 탄핵됐지만, 일부 언론은 여전히 헌재 결정을 부정하고 있다. 이 같은 민주주의 질서를 부정하는 극단적 논조는 향후 대선 등 선거 국면에서 재현될 우려가 있다. 김희원 한국일보 뉴스스탠다드실장은 미디어오늘에 “언론이 정파성을 보일 순 있으나 계엄을 옹호하거나 파시즘적 인식까지 대변되는 건 안 된다”며 “이런 극우적 논조로 극우세력이 결집·확산될 우려가 있다. 계엄을 옹호하지 않는 이들은 영향을 받지 않겠지만, 윤 전 대통령 지지층 생각을 한쪽으로 기울게 할 수도 있다”고 지적했다.
김희원 실장은 “언론사를 규제할 수도 없으니 명확한 답은 없다”면서도 “극우적 논조를 원하는 이들이 있으니 언론사가 거기에 맞추는 것인데, 극우적 주장이 시장에서 퇴출되게 만들어야 한다”고 밝혔다.
시민 감시를 통해 극우적 논조를 견제해야 한다는 지적도 있다. 김동찬 언론개혁시민연대 정책위원장은 미디어오늘에 “언론사가 정치적 성향을 가질 순 있지만, 기본적인 원칙과 범주를 벗어나는 언론이 존재하면 안 된다. 조선일보는 물타기 논조를 통해 민주주의 질서를 위기에 빠뜨렸는데, 이런 언론을 정론지로 보지 않는 사회적 평가를 통해 감시와 견제를 할 수밖에 없다”며 “이런 보도에 문제가 많다는 것을 계속 드러내는 방법밖에 없는 것 같다”고 했다.
언론사 내부 견제 조직이 필요하다는 주문도 나온다. 김동원 언론연대 정책위원은 미디어오늘에 “편집위원회 등 내부 기구가 필요한 건 맞다. 다만 논의가 내부에서만 끝난다면 실효성이 없으니, 회의 내용이 기사 등을 통해 외부로 공개되는 게 필요하다”며 “법제화는 힘들 수 있지만, 편집위원회 투명성 등 제도를 갖춘 언론사에 대해 정부광고 등 사업에서 인센티브를 주는 방향을 검토해 볼 수 있다”고 했다. 2020년 신문사 편집위원회 설치를 의무화하는 신문법 개정안이 발의됐지만 “편집권 침해”라는 신문업계 반발이 나왔고, 법안은 통과되지 않았다. 지난해 6월엔 신문사 사업자가 변경될 시 편집·제작운영계획서 작성을 의무화하는 신문법 개정안이 발의됐다.
매일신문의 경우 자유언론실천위원회라는 편집국 내부 견제장치가 구성원들의 목소리를 대변하는 성과를 보이고 있지만 실효성 측면에선 과제가 남아있다. 구성원들은 위원회에서 극우적 논조를 비판했고, 개선되지 않자 2월10일 기수별성명을 내는 등 집단적 저항을 하기도 했다. 지속적인 문제제기 끝에 부정선거 음모론을 주장하는 선임논설위원의 칼럼 게재가 중단되는 등 소기의 성과가 나타나기도 했지만 논조의 본질을 바꾸지는 못했다. 매일신문 관계자는 “논설위원실은 위원회에 소환할 수 없기에 한계가 있는데, 이는 개선해야 할 점”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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