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슷한 경력 판사가 한팀... 李 선거법 2심도 맡은 ‘대등 재판부’는
요즘 법원에서는 판사 3명으로 구성된 합의부 중에서 지위나 기수, 경력이 비슷한 ‘대등 재판부’를 흔히 볼 수 있다. 부장판사 1명과 배석판사 2명으로 구성된 전통적 합의부와 달리, 중견 판사들이 대등한 위치에서 사건을 심리하고 합의하는 구조다. 올해 서울고법에는 고법판사 3명으로 이뤄진 재판부가 23곳, 고법부장 3명으로 이뤄진 재판부가 8곳 있다. 서울중앙지법에도 부장판사 3명으로 이뤄진 17개의 항소 합의부가 있다.
대등 재판부에서는 세 판사가 소송을 지휘하는 재판장 역할과, 판결문을 작성하는 주심 역할을 돌아가면서 나눠 맡는다. 부장판사가 재판장을, 배석이 주심을 맡는 기존 비(非)대등 재판부와 가장 큰 차이다. 수평적 관계인 재판장과 주심이 기록을 모두 꼼꼼히 보고, ‘실질적 3자 합의’가 이뤄지게 하자는 취지로 김명수 전 대법원장 재임기에 일선 법원으로 확대됐다.
지난달 이재명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의 공직선거법 위반 사건에서 1심의 징역형을 뒤집고 무죄를 선고한 서울고법 형사6부도 고법판사 3명으로 구성된 대등 재판부다. 이 사건의 재판장은 최은정 부장판사, 주심은 이예슬 부장판사가 맡았다. 그런데 통상적으로 알려진 것과 달리 이 전 대표 사건은 재판장인 최 부장판사가 판결문을 주도해서 쓴 것으로 전해졌다. 해당 재판부는 원래부터 재판장이 소송 지휘뿐 아니라 판결문 작성까지 도맡아왔다고 한다.
일선 판사들에 따르면, 각급 법원 대등 재판부 상당수는 형사6부처럼 재판장에게 주심 역할까지 맡긴 채 운영되고 있다고 한다. 특히 기록이 많고 사건 처리 부담이 큰 형사 합의부에서 재판장과 주심을 사실상 일원화하는 경향이 뚜렷한 것으로 알려졌다. 한 고법판사는 “판결문을 재판장과 주심 중 누가 쓸지는 각 재판부마다 알아서 결정하고 있다”면서도 “형사 대등 재판부는 대부분 재판장이 판결문 작성 업무를 맡고 있고 민사나 행정은 주심이 쓰는 경우가 많다”고 했다. 지방법원의 항소 합의부도 마찬가지 상황이라고 한다.
재판장에게 주심 역할을 몰아주는 이유는 재판 진행과 심리의 효율성 때문이다. 한 명의 판사가 책임지고 소송을 지휘하며 판결문을 쓰는 것이 사건을 빠르게 처리할 수 있다는 것이다. 막대한 분량의 증거 등 소송 기록을 재판장과 주심 두 사람이 모두 꼼꼼히 봐야 하는 부담도 덜 수 있다.
동등한 경력으로 구성된 재판부가 합의를 보다 수월하게 하기 위해 역할을 합친 측면도 있다. 판결 방향을 두고 재판장과 주심의 견해가 갈리면 선고가 난망해진다는 것이다. 다른 고법판사는 “재판장과 주심의 판단이 다른 경우 결론을 합의하기가 참 어렵게 된다”며 “대등 재판부에서 주요 사건에 대한 합의가 잘 안돼 판사들 사이가 나빠지는 경우도 종종 있다고 들었다”고 했다.
법원 내부에서는 실질적 합의를 지향하는 대등 재판부의 원래 취지가 무색해진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온다. 한 고법부장은 “재판장과 주심 두 사람이 책임감을 갖고 기록을 본 뒤 토론을 거쳐 합의하라는 취지로 대등 재판부가 만들어졌는데, 이를 한 쪽으로 몰아주면 결국 재판장이 심리를 주도할 가능성이 커진다”고 말했다. 대등 재판부가 판사 한 명이 사건을 처리하는 단독부처럼 운영될 것이라는 우려는 수년 전부터 나왔다.
반면 주심 판사가 판결문을 쓰지 않더라도 충실히 사건을 검토하며, 합의가 충실히 이뤄지고 있다는 반론도 있다. 다른 고법부장은 “실제로는 판결문을 회람(回覽)하는 과정에서 주심뿐 아니라 주심이 아닌 판사도 적극 의견을 개진하고 논리를 보태며 합의하고 있다”며 “판결문을 누가 쓰느냐는 크게 중요하지 않다”고 말했다.
한편, 법조계에서는 근거와 역할이 모호한 주심 판사와 관련된 규정을 재정비하자는 제언이 나왔다. 양창수 전 대법관은 최근 법률신문 기고글에서 “재판장과 달리 주심 법관에 대해서는 어디에도 그 근거 법령이 일절 인용돼 있지 않다”며 “주심 법관의 무게 내지 역할에 대하여 관심이 적지 않은데, 법률에 정면으로 규정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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