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리더들의 올림픽’ 만든 슈바프의 퇴장

김정훈 기자 2025. 4. 23. 01: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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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EF 이사회 의장·이사 직위 사임
지난해 6월 중국 다롄시에서 열린 하계 세계경제포럼(WEF·다보스포럼) 행사에서 클라우스 슈바프 당시 회장이 발언하고 있다. 슈바프는 다보스포럼을 창립한 지 54년 만에 이사회 의장과 이사직에서 물러나기로 했다. /EPA 연합뉴스

전 세계 정·재계 유력 인사들이 참여해 ‘글로벌 리더들의 올림픽’으로 불리는 세계경제포럼(WEF·다보스포럼)의 창립자 클라우스 슈바프(87)가 WEF 이사회 의장과 이사 직위에서 물러나기로 했다. 1971년 WEF의 전신인 유럽경영포럼을 창립한 지 54년 만이다.

독일 태생인 슈바프는 미 하버드대 케네디스쿨을 졸업하고 스위스 취리히공대와 프리부르대에서 각각 공학박사, 경제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그가 스위스 제네바대 교수였던 30대 초반 이 행사를 시작했을 때만 해도 거창하지 않았다. 1971년 1월 스위스 다보스에서 처음 열린 포럼에는 유럽 31국 기업의 최고경영자(CEO)와 임원 450명이 참석했다. 미국 경영대 교수들이 주로 미국식 경영 기법을 전파했다. 포럼 직원은 3명이었고, 포럼 기금 규모는 2만5000스위스프랑, 당시 환율로 5800달러(약 825만원)였다.

슈바프는 1987년 지금의 이름인 WEF로 변경하고 외연 확장에 나섰다. 냉전이 끝난 1990년대 초반부터 세계화가 시대 조류가 되면서 전성기를 구가했다. 포럼은 ‘책임 있는 세계화’(1999), ‘지속 가능 성장과 격차 해소’(2001) 등의 주제로 진행돼 당대의 시대정신을 반영하고, 이를 통해 기후변화, 에너지 전환, ESG(환경·사회·지배구조) 등 세계 경제의 핵심 아젠다를 선도했다.

2016년 슈바프는 ‘4차 산업혁명’ 개념을 주창했다. 컴퓨터·인터넷의 보급과 생산 자동화를 주된 내용으로 했던 ‘3차 산업혁명(디지털 혁명)’을 토대로 경제·정치·사회·문화·환경에 걸쳐 광범위하게 동시다발 일어나는 기술 혁명을 의미한다. ‘4차 산업혁명’은 학술 용어라기보다 일종의 마케팅 용어였지만, 전 세계 정치인과 기업인들이 이를 차용하면서 큰 인기를 끌었다.

다보스포럼은 전 세계 주요 인사들의 사교장 역할을 해 왔다. 인구 1만명 정도의 작은 도시에 매년 초 정치인, 기업인, 연예인이 3000명 가까이 집결하다 보니 비즈니스 미팅에 최적인 행사로 통했다. WEF도 덩치를 키웠다. 연간 매출이 5억유로(약 8200억원)에 이르며, 제네바 본사에서 600명 이상의 직원이 일하고 있다. 포럼 회원사들은 연회비로 최대 60만스위스프랑(약 10억5000만원)을 낸다.

그러나 슈바프는 최근 코너에 몰려 있었다. ‘글로벌 성(性) 격차 보고서’를 매년 작성해 각국의 성평등 진척 상황을 평가해 왔던 WEF의 사무국이 임신한 직원을 해고하는 차별의 온상이며, 슈바프가 직원을 성희롱하기도 했다는 월스트리트저널의 폭로가 지난해 터져 나왔기 때문이다. WEF는 혐의를 부인했지만 이 보도 직전 슈바프는 회장직에서 물러났고, 그간 이사회 의장직만 유지해 왔다.

슈바프의 퇴장을 WEF가 지향하던 글로벌리즘의 퇴조와 연관 짓는 시각도 있다. 그간 WEF는 좌파와 우파 모두에게서 일반 대중의 삶과 동떨어진 엘리트들의 토론장이라는 비판을 받았다. 로이터는 21일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지정학적 긴장과 미국의 보호무역주의에 의해 WEF는 큰 타격을 입었다”며 “WEF를 ‘쇠퇴하고 있는 기관’으로 보는 이도 있다”고 했다.

WEF는 현 이사회 부의장인 페테르 브라베크-레트마테 전 네슬레 회장을 임시 의장으로 선임하고 차기 의장을 물색하기 시작했다고 밝혔다. WEF 이사회에는 크리스틴 라가르드 유럽중앙은행(ECB) 총재, 크리스탈리나 게오르기에바 국제통화기금(IMF) 총재, 앨 고어 전 미국 부통령, 세계 최대 자산운용사 블랙록의 래리 핑크 최고경영자 등이 포진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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