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임 후 첫 미사에 바티칸 청소부 초대 방한 땐 위안부 할머니 손 일일이 잡아 교황청 내 전용 숙소 마다 ‘소탈’ 난민 관련 “무관심의 세계화 문제”
지난 21일 선종한 프란치스코 교황은 2013년 취임 이후 교황청의 기득권을 개혁하고 가톨릭 교회에서 소외받았던 소수자를 챙기기 위해 애썼다. 초등학생이라도 알아들을 수 있는 쉬운 강론, 항상 미소 짓는 ‘2중턱 할아버지’로 대중에게 친근한 교황이었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어떤 교황보다 소탈했다. 역대 교황은 취임하면서 복장부터 바뀌지만 프란치스코 교황은 추기경 시절부터 쓰던 가슴 십자가와 검정 구두를 그대로 착용했다. 또한 교황청 내의 전용 숙소를 마다하고 베네딕토 16세 선종 후 새 교황 선출을 위해 로마를 찾았을 때 묵었던 방문객 숙소인 ‘마르타의 집’에서 지내왔다.
21일(현지 시간) 페루 리마의 매직 워터 서킷 분수에서 방문객들이 분수에 투영된 고(故) 프란치스코 교황의 사진을 바라보고 있다. AP연합뉴스
“여보세요. 교황입니다”라는 전화를 받았다는 일화는 숱하다. 교황청 교환원부터 교황에게 편지를 보냈던 학생까지 수행원을 거치지 않고 직접 교황이 걸어온 전화를 받았다. 취임 후 첫 미사에 바티칸 청소부를 초대하고 부활절에는 무슬림 여성의 발을 씻어줬다. 미사 중에 장애를 가진 어린이가 연단 위를 뛰어다녀도 미소만 지었다.
교황청 주변엔 ‘교황이 된다는 것은 잘못했다고 말하지 않는 것’이라는 농담이 있지만 프란치스코 교황은 몸소 언행을 통해 과거의 잘못을 수정하는 모습도 보였다. 이민자 가정 출신답게 이민자와 난민 문제에 대해서는 포용적인 입장을 보였다. 교황 취임 후 첫 방문지는 북아프리카에서 난민들이 지중해를 건너와 밀입국하는 항구인 이탈리아 남부 람페두사였다. 교황은 “재정적 부패도 문제이지만 마음의 부패도 문제” “무관심의 세계화가 큰 문제”라고 말해왔다.
프란치스코 교황이 2014년 8월 서울 중구 명동성당에서 위안부 출신 할머니들을 만나 위로 하고 있다. 세계일보 자료사진
한국에 대한 관심을 적극적으로 표현하기도 했다. 2014년 8월 즉위 1년 반 만에 아시아 첫 사목 방문지로 한국을 방문한 자리에서 보여준 프란치스코 교황은 모습은 깊은 울림을 남겼다. 당시 명동대성당에서 거행된 ‘평화와 화해를 위한 미사’에서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를 발견한 교황은 허리 굽혀 할머니들의 손을 일일이 잡아줬다. 또 짧은 방한 일정에도 불구하고 방한 다음 날인 15일 따로 시간을 내 세월호 유가족을 면담하기도 했다. 교황은 이때 이들에게서 받은 두 개의 배지, 노란 리본과 나비 모양 배지를 흰 제의에 나란히 달고 로마로 돌아갈 때까지 떼지 않았다.
당시 세월호로 충격에 빠진 한국민을 위해 그는 “특별히 세월호 침몰 사건으로 생명을 잃은 모든 이와 국가적 대재난으로 여전히 고통받고 있는 이들을 성모님께 의탁한다”며 “주님께서 세상을 떠난 이들을 위로해 주시고 형제자매들을 도우려고 기꺼이 나선 이들을 계속 격려해 주시기를 기도한다”고 말했다.
고향서도 추모 물결 21일(현지시간) 아르헨티나 부에노스아이레스의 오벨리스크에 프란치스코 교황의 얼굴과 애도의 상징인 검은 리본이 함께 비치고 있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1936년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 이탈리아 출신 이민자의 아들로 태어났다. 부에노스아이레스=AFP연합뉴스
그는 ‘평화와 화해를 위한 미사’에서 북한에 대한 인도적 지원을 중단하지 않고 모든 한국인이 같은 형제자매라는 인식이 확산하도록 기도했다. 교황은 “일흔일곱번까지라도 용서해야 한다”(마태 18,22)는 성경 말씀을 인용하며 “용서와 화해는 인간 시각으로는 불가능하고 거부감을 주는 것이더라도 예수님은 당신 십자가의 무한한 능력으로 그것을 가능하게 하고 열매를 맺게 하신다”며 사람들의 마음을 어루만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