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금 사각지대를 없애는 길 [한겨레 프리즘]
이경미 | 인구·복지팀장
지난달 여야 합의로 연금개혁안이 국회를 통과한 뒤 후속 논의가 한창 진행되고 있다. 보험료를 올리고 연금액도 더 받는 방향으로 개편한 이번 개혁은 ‘연금재정 안정’과 ‘노후 소득 보장’이라는 상충하는 과제 사이에서 오랜 줄다리기 끝에 나온 절충안이다. 결과적으로 양쪽 모두를 충족할 수준은 되지 못했다. 이 때문에 정부와 국회는 기초연금·퇴직연금 제도까지 함께 손을 봐 두가지 목표를 실현하기 위한 묘수를 짜내려고 한다. 마침 조기 대선 국면과 맞물리면서 대선 주자들도 이런저런 후속 개혁 방안을 내놓고 있다.
그런데 진짜 중요한 문제는 빠진 채 논의가 진행되고 있다. 바로 연금 사각지대 해소다. 보험료율, 소득대체율을 얼마로 할지는 국민연금에 가입한 다수 국민에게 곧바로 영향을 미치는 관심사여서 치열한 논쟁이 벌어졌다. 하지만 연금 사각지대 문제는 여야가 크게 주목하지 않았고, 이들에게 보험료 지원을 조금 더 늘리는 수준에서 매듭지었다.
현재 국민연금에 가입되어 있지 않거나 가입했어도 형편이 어려워 보험료를 못 내는 사람은 1천만명에 이른다. 자영업자, 플랫폼 노동자, 프리랜서 같은 사람들이 많이 포함돼 있는데, 18~59살 인구(3010만명)의 3분의 1이나 된다. 이들이 계속 미가입이나 보험료 미납입 상태로 나이 든다면 노후에 빈곤에 빠질 가능성이 크다. 현재 정부가 노인들에게 지급하는 기초연금이 있지만 빈곤 해소엔 역부족이다. 경제 상황과 정부의 재정 여건상 기초연금을 대폭 올리기도 어렵다. 이들을 국민연금 제도 안으로 끌어들이는 것은 시급하면서도 현실적인 문제다.
연금 사각지대는 특히 청년층에서 더 많다. 청년층은 플랫폼 노동자처럼 고용과 소득이 불안정한 비정형 노동자인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2020년 기준 18~34살 인구 중 연금 사각지대 비중은 55.7%에 이른다.
우리 연금제도가 정규직 노동자 중심으로 설계되어 있는 점도 광범위한 사각지대를 유발하는 측면이 있다. 직장인들은 회사에서 4대 보험을 강제하는 방법으로 국민연금 보험료를 자동 납부한다. 특수형태 근로종사자, 프리랜서 같은 이들에게는 사실상 자발적 가입·납부를 기대해야 하는데 이들을 끌어들일 유인이 부족하다.
고용이 안정된 정규직들은 보험료를 오래 납부하면서 노후에 받을 연금액을 늘려나갈 수 있다. 그런데 산업과 노동시장 구조가 빠르게 변하면서 이런 정규직의 문턱은 점점 좁아지고 있다. 사각지대가 더욱 커질 수 있다. 연금제도가 장기적인 인구구조 변화뿐만 아니라 가까운 미래에 닥칠 수 있는 직업구조 변화에도 서둘러 대응해야 하는 이유다. 지금처럼 보험료 지원을 조금씩 늘리는 식으로는 큰 물줄기의 방향을 바꾸기 어렵다. 연금 미가입자들의 가입과 보험료 납부를 유도하는 획기적인 정책 전환이 필요하다.
왜 연금개혁을 해야 하는가. 이 질문에 답하기 위해 우리는 기본으로 돌아가야 한다. 연금 문제는 복지제도와 직결된다. 연금이 부실하면 국민은 정부가 제공하는 복지에 기댈 수밖에 없다. ‘연금이 곧 복지’라는 개념이 강화되어야 한다. 연금 가입을 꺼리는 이들에게 이런 인식을 심어줄 필요가 있다. 국민연금엔 소득재분배 기능도 포함돼 있다. 고소득층보다 저소득층이 낸 돈보다 더 많은 연금을 받도록 설계돼 있다. 노후 소득 보장은 국민연금 강화를 중심으로 풀어나가는 게 사회 안정성 측면에서도 바람직하다.
이번 개혁으로 국민연금 재정은 2064년 소진될 것으로 추정된다. 연금 재정 고갈 위기 때문에 국고를 투입해야 한다는 공감대가 커지고 있다. 가입자의 연금액을 충당하는 것 못지않게 가입자 확대를 위한 인센티브에도 아낌없이 투입한다면 국민연금 재정 안정성에도 도움이 될 것이다.
일부 대선 주자들은 연금개혁을 두고 ‘청년세대가 손해’라면서 자극적인 말들을 내놓는다. 곧 국민연금의 혜택을 받을 대선 주자들은 자신의 발언이 청년들에게 오히려 국민연금 불신을 조장하는 게 아닌지 되돌아봐야 한다.
kmle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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