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학교 담벼락 밀어넣고 만든 ‘생명 구하는 보행로’···강남구 2년의 결실
11개교 중 마지막 ‘도곡초’ 보행로 완성 눈 앞
2022년 12월 2일 오후 5시쯤 서울 강남구 청담동 언북초 3학년 A군(9세)이 음주운전 차량에 치여 사망했다. A군이 사고를 당한 곳은 학교 후문 앞 어린이보호구역 이면도로였다. 아이들이 늘상 다니는 통학로였음에도 차량과 분리된 별도의 보행로가 없었다. 이 사고는 강남구의 모든 초등학교 주변에 보행로를 설치하는 계기가 됐다.
강남구는 2023년부터 본격적인 보행로 설치작업에 들어갔다. 보행로가 없는 총 12개 학교 가운데 보행로 설치가 물리적으로 어려운 1개 학교를 제외하고 언북초, 대현초, 삼릉초 등 10개 학교 주변 양방향 도로 폭을 줄여 보행로를 설치했다. 보행로가 놓이면서 도로폭이 좁아진 점을 감안해 도로는 일방 통행로로 변경했다.
대치동 도곡초는 사정이 달랐다. 학교를 둘러싼 4개의 도로 중 3개가 이미 일방통행로였다. 경찰은 “이미 3개 도로가 일방통행로인 상황에서 나머지 1개 양방향 도로마저 일방통행로로 바꿀 수는 없다”며 난색을 표했다.
그때 강남구의 눈에 들어온 것이 도곡초 담벼락 안쪽 부지였다. 학교 담벼락을 좀 더 안으로 밀어넣고 기존 학교 부지에 보행로를 설치하면 이면도로를 훼손하지 않고 보행로 설치가 가능하다는 판단이었다.
자치구에서 학교소유 부지에 보행로를 놓는 게 쉬운 일은 아니었다. 법적·행정적으로 복잡하게 얽혀있는 문제를 해결해야 했다. 강남구 관계자는 22일 “도곡초 재학생의 안전을 위한 일이지만 학교입장에서도 쉽게 결정할 일이 아니라 처음에는 소극적인 분위기였다”라고 말했다.
강남구는 끈질기게 학교를 설득했다. 2023년 5월 첫 면담을 시작으로 10여 차례 가까이 설득작업을 벌였다. 학교를 직접 찾아가 보행로의 필요성을 계속 설명했다. 학교 부지가 일부 줄어들면서 발생하는 주차문제 등도 적극적으로 해결을 약속했다.
주민들을 설득하는 것 역시 구청의 몫이었다. 학교 맞은편 주민들은 “보행로가 설치되면 차량이 코너를 돌기 어렵다”는 등의 불만을 꾸준히 제기했다. 구청은 주민들을 설득하는 한편 학부모설명회도 여러차례 열었다.
그 결과 1년 6개월만인 지난해 11월 서울시교육청과 강남서초교육지원청, 도곡초, 강남구는 보행로 신설 업무협약을 체결했다. 강남구가 추진해온 11개 학교 보행로 설치사업의 ‘마지막 퍼즐’이 완성된 것이다.
구는 현재 학교부지에 보행로 보도블록 설치 및 연결구간 보완작업 등을 진행 중이다. 학부모들의 요청을 반영해 펜스도 설치할 예정이다. 공사가 원만히 진행된다면 이르면 5월 말부터는 학생들이 안전하게 보행로를 이용할 수 있게 된다.
구 관계자는 “보행로를 설치하는 과정에서 학교 부지를 활용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라며 “학교의 적극적인 도움으로 이제 아이들이 더 안전하게 통학할 수 있게됐다”고 말했다.
류인하 기자 acha@kyunghyang.com
Copyright © 경향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속보]이재명 대통령, G7 정상회의 참석한다…첫 정상 외교 무대
- [신문 1면 사진들] 웃는 이재명 대통령 앞에서···'내가 웃는 게 웃는 게 아니야~'
- 휴가날 ‘햄버거 회동’ 나간 군간부의 메모 “선관위, 명단, 확보, 짜증” [법정 417호, 내란의
- [단독]“한덕수가 그날 후보 등록하러 가지 않은 것은 팩트”
- [오마주] 죽은 첫사랑이 저승사자가 되어 나타났다
- 클래식도 내 식대로 즐긴다, Z세대가 클래식 음악을 즐기는 방법
- ‘대통합’ 내세운 이 대통령, 관용과 절제할 수 있을까
- 정치 지형과 민심이 변했다…숫자로 보는 21대 대선
- 수험생 98%가 ‘2류’가 된다면…중국판 수능 가오카오의 그늘
- [이진송의 아니근데] ‘경쟁’도 ‘전쟁’도 아닌···우리에겐 더 나은 ‘논쟁’할 권리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