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 공포에 ‘셀 USA’…달러 3년만 최저 [이슈&뷰]

김빛나 2025. 4. 22. 11: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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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럼프 “중대 실패자” 파월 때리기
연준 독립성 우려에 달러패권 휘청
강압적 해임 시도땐 득보다 실 커
“시장붕괴” 공포감에 자금 美탈출

“중대 실패자(a major loser), ‘미스터 투 레이트’(Mr. Too Late·의사결정이 매번 늦는다는 뜻)”

미국 대통령의 중앙은행 의장에 대한 부정적인 말 한마디에 달러화가 순식간에 무너졌다. 21일(현지시간) 달러 가치는 3년 만에 가장 낮은 수준으로 하락했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연일 연방준비제도(연준·Fed)의 제롬 파월 의장에 금리 인하를 압박하면서 중앙은행의 독립성이 훼손될 수 있다는 우려가 커진 것이다. 트럼프 대통령의 발언이 계속되자 “미국 시장이 붕괴할 수 있다”는 경고까지 나왔다. ▶관련기사 4·5·6면

21일(현지시간) 주요 6개 통화에 대한 달러화의 가치를 반영한 달러 인덱스는 장중 97.9로 2022년 3월 이후 가장 낮은 수치를 기록했다. 이날 미 동부 시간 오후 3시 기준(한국 시간 22일 오전 8시) 98.29로 전 거래일 대비 1.1% 하락했다.

달러 매도세가 강해진 건 트럼프발(發) 관세전쟁으로 이미 불안감이 조성된 시장에 전 세계 통화정책을 좌우하는 미국 중앙은행 연준 흔들기에 나섰기 때문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날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파월 의장을 저격하며 “‘미스터 투 레이트’(Mr. Too Late·의사결정이 매번 늦는다는 뜻)이자, 중대 실패자(a major lose)가 금리를 내리지 않으면 경기 둔화가 있을 수 있다”고 썼다.

또한 트럼프 대통령은 이어 “많은 사람이 금리의 ‘선제적 인하’를 요구하고 있다”며 취임후 에너지 가격과 식료품 가격이 실질적으로 내려갔고, 대부분의 다른 품목 가격도 하향 추세를 보이는 상황에서 인플레이션은 사실상 존재하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최근 트럼프 대통령은 관세 파장을 우려하는 파월 의장을 맹비난하고 있다. 그는 지난 17일에는 “파월의 임기는 빨리 종료되어야 한다”고 썼고, 같은 날 파월에 대해 “만족하지 않는다”며 “내가 그의 사임을 원하면 그는 매우 빨리 물러날 것”이라고 주장했다

파월을 무력화하는 방안을 모색 중이라는 백악관 측 발언도 나왔다. 트럼프 경제 보좌관인 케빈 해싯 백악관 국가경제위원회(NEC) 위원장은 “백악관이 현재 적법하게 파월을 제거할 수 있는 방안을 적극적으로 알아보고 있다”고 말했다. 하셋 위원장은 “최근 몇 년 동안 중앙은행이 금리를 설정하는 데 있어 정치적 판단이 작용했다”며 연준을 비판하기도 했다.

파월 의장을 해임하거나 무력화하는 방안 모두 현실로 이어지기 어렵다. 현행법상 미국 대통령이라도 중앙은행인 연준 의장을 자기 뜻대로 해고하기 어렵다. 연방준비법에는 “정당한 사유가 있을 경우에 한해 대통령이 해임할 수 있다”고 하지만 ‘정당한 사유’는 심각한 문제, 권한 남용을 저질렀을 경우에 적용된다. 이러한 이유로 트럼프 1기 때도 트럼프 대통령은 파월 해임을 고려했다가 포기했다.

설령 ‘정당한 사유’를 발견해 트럼프 대통령이 해임을 시도해도 법적 분쟁이 진행되는 동안에는 파월 의장의 지위가 유지된다. 파월과 법적 분쟁이 1년 이상 길어질 경우 내년 5월 임기가 만료되면서 해임 절차가 무의미해진다.

일부 법학자는 금리 인하 등 정책 판단 실수를 근거로 트럼프 대통령이 해임을 시도할 수 있다고 지적한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헌법학자들은 연준 의장을 해임하는 것이 매우 어렵다고 본다”며 “실제로 그런 시도가 있다면, 최종 판단은 미국 대법원에서 이뤄질 것이라는 견해가 많다”고 전했다.

하지만 파월 해임은 득보다 실이 더 크다는 것이 중론이다. 연준의 독립성 훼손 우려에 권위가 땅에 떨어지면서 달러화 매도세를 가속할 수 있기 때문이다. 달러가치 하락, 채권금리 상승, 주식 투매 등 미국 경제가 악순환에 빠질 수 있다.

이미 트럼프의 경고성 발언만으로도 시장은 큰 변동성을 보이고 있다. 이날 달러화 가치 하락뿐만 아니라 미국 채권 매도세가 강해지는 등 미국 자산에 대한 재평가가 이뤄지고 있다.

월가에서는 우려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바클레이즈 은행은 이날 보고서를 통해 “연준 의장 해임 가능성을 여전히 낮게 보지만, 연준 독립성 약화 가능성은 이제 무시할 수 없는 달러 위험으로 이어지고 있다”고 밝혔다.

월가 대형 투자자문사 에버코어 ISI는 “트럼프가 파월을 해고하려고 한다면 경기침체뿐만 아니라 스태그플레이션(경기 침체와 물가 상승이 동시에 발생하는 현상)으로 전환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엘리자베스 워런 미 상원의원(민주·메사추세츠)은 “만약 파월 의장이 트럼프 대통령에 의해 해임된다면 미국 시장은 붕괴할 것이라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며 “미국의 금리가 트럼프 대통령의 통제를 받는다면 독재 정권과 미국과 차이가 사라지게 된다”고 비판했다. 김빛나·김영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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