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亞 첫 방한 애정… 세월호 상처 보듬고 갔다

김이현 2025. 4. 21. 18: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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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란치스코 교황은 요한 바오로 2세에 이어 한국을 방문한 두 번째 교황이었다.

교황이 된 뒤 첫 번째 아시아 방문국이 한국이었다는 점에서 그의 애정을 알 수 있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방한 이후에도 북한을 방문하고 싶다는 의사를 수차례 밝혔지만 끝내 성사되지 못했다.

특히 주교 신분이던 유 추기경을 2021년 6월 교황청 성직자부 장관으로 파격 발탁했는데, 한국인이 교황청 장관에 임명된 첫 사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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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란치스코 교황이 2014년 8월 방한 당시 충남 서산시 해미읍성에서 한복을 차려 입은 아이에게 축복을 내려주고 있다. 국민일보DB


프란치스코 교황은 요한 바오로 2세에 이어 한국을 방문한 두 번째 교황이었다. 그는 한국에 대한 각별한 관심을 수차례 드러냈다. 교황이 된 뒤 첫 번째 아시아 방문국이 한국이었다는 점에서 그의 애정을 알 수 있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2014년 8월 14일 아시아청년대회 참석을 위해 4박5일 일정으로 한국을 찾았다. 1989년 요한 바오로 2세 방한 이후 25년 만이었다. 특히 교황이 아시아청년대회에 참석한 것은 최초였다. 그는 방한 시작부터 약자와 함께했다. 서울공항에 영접을 나온 세월호 유가족들의 손을 잡고 “마음속에 깊이 간직하고 있다. 가슴이 아프다. 희생자들을 기억하고 있다”고 말해 감동을 줬다.

그는 대전에서 열린 성모승천대축일 미사 때는 세월호 참사를 상징하는 노란 리본을 가슴에 달고 미사를 집전했다. 리본은 미사 직전 만난 세월호 유가족이 전달한 것이었다. 그는 귀국길에 기자들과 만나 “어떤 사람이 당시 내게 와서 중립을 지켜야 하니 노란 리본을 떼는 것이 좋지 않겠느냐고 물었다”며 “하지만 인간적 고통 앞에서 중립을 지킬 수 없었다”고 말했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와 쌍용자동차 해고 노동자, 용산 참사와 밀양 송전탑 건설 피해자, 장애인 등을 초대해 미사를 진행하기도 했다.

그는 한반도 평화도 간절히 염원했다. 방한 당시 박근혜 대통령이 “분단과 대립의 한반도에 평화와 화해의 시대가 열리길 바란다”고 말하자 “한반도 평화를 마음속에 깊이 간직하고 왔다”고 답했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방한 이후에도 북한을 방문하고 싶다는 의사를 수차례 밝혔지만 끝내 성사되지 못했다.

그는 역대 한국인 추기경 4명 중 2명(염수정·유흥식)을 임명됐다. 특히 주교 신분이던 유 추기경을 2021년 6월 교황청 성직자부 장관으로 파격 발탁했는데, 한국인이 교황청 장관에 임명된 첫 사례였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2027년 세계청년대회 개최지를 서울로 결정하고 방한을 약속했지만 이는 차기 교황의 몫이 됐다.

김이현 기자 2hyun@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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