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다를 따라, 여수에서 순천으로
1998년부터 해마다 봄이 오면 녹색연합 활동가들은 녹색순례를 떠납니다. 무분별한 개발과 오염으로 훼손된 상처받은 환경 현장, 투쟁의 현장을 찾고, 지켜야 할 자연 속으로 뚜벅뚜벅 걸어 들어가 생태감수성을 또렷이 합니다. 그렇게 녹색 활동의 힘을 다시 충전해 왔습니다. 올해 걷는 제25회 녹색순례는 겨우내 다친 마음을 추스르고 다잡으며 민주주의의 길로 떠납니다. 518 광주 민주화운동의 길, 1019 여순항쟁의 길을 걸으며, 거대하고 숭고한 역사와 운동을 다시 만납니다. 생명의 편에서 비폭력 평화, 녹색 정치란 무엇인지 묻고, 결코 포기할 수 없는 민주주의의 길을 만들어갑니다. <기자말>
[녹색연합]
올해 녹색순례의 하루는 선식 배급으로 시작한다. 매일 여섯 시 삼십 분, 각자 챙겨 온 물통을 들고 식당에 모여 두유에 미숫가루를 탄다. 그 자리에서 선식을 먹지 않고, 일곱 시에 모둠별로 모여 점심 도시락을 준비하고 '밥 노래'를 부른 뒤 함께 선식을 먹는다. 밥은 하늘이고, 하늘을 혼자 가지지 못하듯이, 밥은 서로 서로 나누어 먹는다는 가사의 노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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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선두에 선 녹색연합 깃발 |
ⓒ 녹색연합 |
신년 워크숍 한 달 전 선포되었다가 해제된 계엄의 여파가 계속되던 시점이었다. 국민을 폭도로 규정하여 총칼을 겨누려던 시도는 즉시 무산되었으나 그 충격과 혼란이 여전했다. 하물며 군부가 이미 정권을 장악한 1980년 5월의 광주였다. 계엄을 전국으로 확대한 군정은 시민을 폭력으로 진압했다. 일제로부터 해방하고 한국전쟁이 발발하기 전인 1948년 10월에는 당시 여수에 주둔하던 14연대 군인들의 항거가 있었다. 군대는 제주를 진압하라는 지시에 저항함으로써 악을 실현하는 일에 상투적으로 임하기를 거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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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섯 명의 모둠원이 둘러앉아 나누는 점심 식사 |
ⓒ 녹색연합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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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들길에서 만난 청보리밭의 나비 |
ⓒ 녹색연합 |
순례를 시작할 때 모두 일주일 동안 사람들과 나누어 먹을 반찬을 한두 종류씩 준비해 왔다. 여기에 더해 그날그날 저녁마다 지원팀의 도움을 받아 다 함께 먹을 국을 끓인다. 오늘의 저녁 메뉴는 4모둠이 만드는 파개장이었다. 모두가 채식주의자이지 않고, 건강상의 이유로 채식만을 할 수 없는 경우가 있지만, 일주일 정도 공용 음식을 비건으로 준비해 먹는 일에는 무리가 없다.
오전에, 잠시 바다가 보이지 않던 길에서, 먹고 싶은 음식을 이야기하며 기고자는 평소에 찾지도 않는 라면을 꼽았다. 액젓을 사용하지 않은 파개장은 라면에 대한 헛된 그리움을 즉시 해소하는 맛이었다. 파개장을 요리한 사람 중 한 명은 기고자의 침낭 이웃으로, 기고자의 옆의 앞에서, 설거지가 '그릇을 아끼는 느낌'이라서 좋다고 이야기하고 있다.
과연 그렇다. 그릇을 씻을 때 손으로 오는 감각이 '그릇을 아끼는 느낌'을 준다. 이때까지 계속 써 온 쓴 그릇을 오늘 또 썼다는 것을 새삼 깨닫게 되는 때가 있다. 이렇듯 존재를 소중히 여겨 아끼는 것이 녹색이며, 몸으로 직접 느끼는 것이 기고자에게 순례가 가지는 의미다. 언제 어디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 알려 주는 매체가 썩 많다. 인터넷에 검색하는 것도 손쉬운 방법이다. 하지만 구태여 시간이 흐른 장소나마 찾는 것은 그곳에서 몸에 익는 감각이 있는 때문이라고 기고자는 생각한다.
사무실 책상에 앉아서도, 산을 깎아 바다를 매립한다는 개발 계획을 이해하려면 황당하다. 그런데 현장에 찾아가 그 산과 바다를 눈으로 볼 때의 충격은 또 한참 다르다. 나라는 인간과 자연이 어떠한 관계인지 몸으로 감각할 때 확대되는 세계가 있다. 눈앞의 이것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우리는 더 잘 알 수 있다. 이곳에 사람들이 존재했다는 사실을. 무참한 사건이. 그렇게 존재를 중히 대하는 마음으로, 녹색으로 순례하며, 역사를 돌아보고 몸으로 기억하여 우리가 나아갈 길을 내다보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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