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벌집 별장이 만인의 복합문화공간으로 바뀐 사연은 [김선미의 시크릿가든]

남양주=김선미 기자 2025. 4. 21. 08: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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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유스페이스 카페 중정. 아유스페이스 제공
경기 남양주시 북한강로의 복합문화공간 겸 카페 레스토랑 ‘아유 스페이스’는 1970년대부터 40여 년간 재벌집 별장이었다. “금남리 롯데 별장 가자”고 하면 웬만한 택시 기사는 다 알던 장소였다. 그곳이 2022년 12월 만인을 위한 복합문화공간으로 거듭났다. 30년 넘게 유럽에서 독립 예술 큐레이터로 활동하던 장미영 대표는 극소수만 향유하는 문화보다 대중과 함께 공유하는 경험의 가치를 높게 봤다. 일본 퓨전 한옥 같던 옛 재벌집 별장 건물들을 조병수 건축가에게 의뢰해 새단장하고 기존에 있던 나무들은 재배치해 정원을 정비했다.

서울에서 차로 한 시간 이내에 도달하는 이곳에서는 북한강이 바로 눈 앞에 펼쳐진다. 3500평 부지에 카페, 레스토랑, 한옥 갤러리, 야외 테라스가 자리 잡은 ‘핫플’이다. 지난해에는 한국문화공간건축학회(KICA) 문화공간 건축상도 받았다. 공모조차 하지 않았는데 이곳을 방문한 어느 건축학과 교수가 “건축과 정원, 그 속에서 이뤄지는 다양한 문화예술 프로그램이 깊은 인상을 남긴다”며 추천해 수상했다고 한다.

노출 콘크리트 건물과 한옥, 오래된 향나무가 어우러진 아유 스페이스. 아유 스페이스 제공
4일 아유 스페이서 만난 장 대표가 각 공간을 소개했다. “처음엔 과실수가 많은 밭이었어요. 벼락 맞은 500년 된 향나무와 200년 된 은행나무도 있었고요. 조 건축가가 ‘원래 있었던 듯 보일 듯 말 듯한 단층 건물을 짓고 싶다’기에 그렇게 하시라고 했어요. 먼 장래를 보면 그게 우리의 정체성이 될 것 같았거든요.”

노출 콘크리트로 지은 단층 카페 건물 내부에는 중정(中庭)을 두었다. 바닥에 작은 돌을 깔고 커다란 바위 세 개만 둔 뒤 몇몇 야생화만 심었다. 깽깽이풀, 동강할미꽃, 돌단풍…. 장 대표는 말한다. “한국의 시골에서 자라서 그럴까요. 이 정원에서 별과 달을 올려다보면 지친 마음이 달래져요.”

아유 스페이스 앞으로는 북한강이 흐른다. 아유 스페이스 제공

아유 스페이스 바로 앞으로 북한강이 흐른다. 강을 따라 메타세쿼이아와 벚나무가 도열해 있고, 언덕에는 자연스럽게 피어난 것처럼 심은 복수초와 할미꽃이 있다. ‘한 듯 안 한 듯 자연스럽게’, 요즘 말로 ‘꾸안꾸(꾸민 듯 안 꾸민 듯)’가 이곳의 조경 콘셉트다. 물과 돌을 보며 머리를 비울 수 있는 ‘물멍’, ‘돌멍’ 산책을 위해서란다.

원래 있던 대문도 위치를 바꿨다. 과거 별장 안채로 직행하는 방향에 있던 대문을 폐쇄하고 구불구불한 동선을 만들었다. 그에 따라 나무들을 재배치하니 공간과 분위기가 변신했다. 요즘 가구들을 재배치해 살던 집을 변신시켜주는 집 정리 서비스를 떠올리게 할 정도다. 이렇게 옛 별장 안채를 ‘재생 건축’한 레스토랑에서는 통창을 통해 북한강이 시원하게 바라보인다. 젊은 세대들이 찾아와 ‘물멍’ ‘돌멍’하면서 정통 이탈리아 밀라노식 리조토를 먹는다. 한옥 갤러리에서는 전통을 현대적으로 해석한 공예 전시가 열리고 있다.

통창을 통해 북한강과 정원을 감상할 수 있는 아유 스페이스 레스토랑. 아유 스페이스 제공
카페 실내에 흰 기둥을 세운 것은 장 대표가 살았던 북유럽의 자작나무를 형상화한 것이다. 강가를 유럽의 호숫가 분위기로 조성해 스몰 웨딩 등 파티를 할 수 있게 한 것, 손님이 떠날 때 럭셔리 보석 브랜드들처럼 생화를 붙인 감사 카드를 건네는 것도 건축주가 살아온 길을 드러낸다.
지금은 레스토랑으로 쓰이는 옛 재벌집 별장 안채로 향하는 길에서 장미영 아유 스페이스 대표. 남양주=김선미 기자 kimsunmi@donga.com

6월에는 이곳에서 ‘아웃도어 시네마’ 행사가 열린다. 야외 정원에서 하와이 한인 이민 역사를 다룬 이진영 감독의 독립영화 ‘하와이 연가’(2024년)를 상영할 예정이다. 꿈과 희망을 찾아 해외로 이주해 가족과 공동체, 고국에 대한 사랑을 멈추지 않은 건 영화 내용인 동시에 장 대표의 삶일 것이다. 그는 “앞으로 공간과 건축, 오페라 등 보다 풍부한 문화 향유의 기회를 이 복합문화공간의 야외 정원에서 제공하고 싶다”고 말한다.

남양주=김선미 기자 kimsunm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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