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닝 아부’로 힘차게…트럼프의 아침방송 사랑[트럼피디아]〈20〉

이지윤 기자 2025. 4. 20. 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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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AP 뉴시스
미국에선 한동안 관심에서 멀어졌던 아침 생방송 시사 토크쇼가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복귀와 함께 다시 주목받고 있다. 백악관 참모들과 주요 부처 장관들은 연일 방송에 출연해 트럼프 대통령을 한 목소리로 옹호하고 있기 때문이다. TV 시청 인구가 줄어든 시대에 이들이 굳이 아침 생방송을 선택한 이유가 무엇일지 살펴봤다.

● 아침 시사프로 ‘본방사수’하는 트럼프

트럼프 대통령은 아침마다 시사방송을 챙겨보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트루스소셜에 실시간 시청 후기를 남기기도 한다.

정치전문매체 액시오스는 집권 1기 때 트럼프 대통령의 3개월(2018년 11월~2019년 2월) 분량의 일간 일정을 입수해 “매일 오전 8시부터 11시까지를 ‘대통령의 시간’(Executive Time)이라고 명명하고 이 시간에 TV와 신문을 보고 참모들과 대화를 한다”고 보도했다.

늦잠을 자는 것은 아니라고 한다. 사업가 시절부터 수면 시간이 길지 않았고, 보통 6시 이전에 일어난다고 한다. 최근에도 이른 아침에 트루스소셜을 통해 중요한 공지를 발표하곤 했다. 일본 협상단과의 회담에 직접 참석하겠다는 발표도 오전 6시 18분에 했다.

아침 시사방송은 트럼프 대통령을 비롯한 ‘TV 세대’ 정치인의 삶의 일부다. 1950년대 TV 보급과 맞물려 등장한 이래 주요한 메시지 확산 창구로 자리매김했다. 지금보다 뉴스 사이클의 속도가 느리던 과거에는 일요일 아침에만 시사방송을 했다. 이때 강조한 이슈가 다가오는 주의 헤드라인이 됐다. 일요 시사방송이 한 주의 이슈를 주도한 것이다.

1947년 NBC 방송이 ‘밋 더 프레스’를 시작하며 일요 시사방송 장르를 개척했고, 이어 1954년 CBS 방송의 ‘페이스 더 네이션’이 출범했다. ABC 방송(1960년), CNN 방송(1993년), 폭스뉴스(1996년) 등도 뒤따랐다. 초창기에는 생방송과 녹화방송이 혼용되기도 했지만, 백악관 및 정부의 핵심 참모와 1:1 인터뷰, 전문가 패널 토론 같은 등의 포맷은 처음부터 쭉 이어져 왔다.

그러나 2010년대 소셜미디어 등장으로 뉴스가 주말에도 쉼 없이 쏟아졌다. 그러면서 일요 시사방송의 입지는 좁아졌다. 폴리티코는 2014년 기사에서 버락 오마바 행정부가 이를 역으로 이용해 “까다로운 질문에 즉석에서 답해야 하는 일요 시사방송 출연에 소극적으로 임하고 있다”고 지적하기도 했다.

● 아침 방송은 뉴스 사이클의 출발점

트럼프 대통령이 2017년 백악관에 입성하며 아침 시사방송은 제2의 전성기를 맞았다. 참모들을 TV에 대거 내보냈다. 그러나 지나친 아부 경쟁과 참모들의 발언과 백악관 공식 입장이 엇박자를 내는 일이 자주 발생하며 “전파 낭비”라는 비판이 제기되기도 했다.

2기 들어서는 ‘충성파’ 내각이 철저하게 사전 조율한 메시지를 내고 있다. 등장 횟수도 크게 늘렸다. 평일이든 일요일이든 요일을 가리지 않고 출연하고 있다. 방송 업계는 시청률 상승이라는 반사이익을 보고 있다. 폭스뉴스는 올 1분기(1~3월) 시청률이 1996년 개국 이래 최고치를 기록했다.

아침 시사방송은 백악관 미디어 전략의 핵심 요소가 된 것으로 보인다. 참모가 아침 생방송에 출연해 한 발언이 그날의 뉴스가 되도록 공격적인 소셜미디어 여론전까지 펼치며 전력을 다하고 있다.

특히 위기 징조가 감지되면 더욱 자주 출연하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이 8일 워싱턴에서 열린 전국공화당의회위원회(NRCC) 만찬에서 연설하는 모습을 독일 프랑크푸르트 증권거래소의 직원이 지켜보고 있다. 프랑크푸르트=AP 뉴시스
트럼프 대통령의 충격적인 상호관세로 미 증시가 폭락하고, 전 세계가 불안에 떨던 이달 초에도 그랬다.

8일 스콧 베선트 재무장관(CNBC), 케빈 해싯 백악관 국가경제위원회(NEC) 위원장(폭스뉴스), 스티븐 미런 백악관 경제자문위원회(CEA) 위원장(블룸버그TV) 등 경제 참모들은 일제히 아침 시사방송에 출연해 “상호관세 일시 중단은 없지만, 무역 상대국들과 협상을 개시했다”고 일관된 메시지를 내놨다. 시장을 달래기 위한 취지로 풀이된다. (트럼프 대통령은 다음 날 상호관세 90일 유예를 깜짝 발표했다.)

17일 민주당의 크리스 밴홀런 상원의원이 직접 엘살바도르를 방문해 트럼프 행정부의 실수로 엘살바도르의 교도소로 추방된 합법 체류자 킬마르 아브레고 가르시아를 만나자 다음날 아침 방송에서도 비슷한 풍경이 연출됐다. 스티븐 밀러 백악관 정책담당 부비서실장은 폭스뉴스에 출연했고, 백악관 ‘국경 차르’ 톰 호먼은 CNN에 이어 MSNBC까지 이날 아침에만 두 개의 방송에 나가 강경 이민 정책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왼쪽 위부터 시계방향으로 스콧 베선트 재무장관(CNBC), 케빈 해싯 백악관 국가경제위원회(NEC) 위원장(폭스뉴스), 스티븐 미런 백악관 경제자문위원회(CEA) 위원장(블룸버그TV)이 8일 아침 시사방송에 출연한 모습. ‘신속 대응 47’ X 캡처
방송이 끝나면 2차전이 시작된다. 아침 방송에서 띄운 메시지를 그날의 뉴스로 확산시키는 작업이 곧바로 시작된다. 대표적인 사례가 백악관에서 운영하는 X 공식 부계정 ‘신속 대응 47’이다. 방송 직후 1~2분짜리 영상과 핵심 워딩이 여기에 올라온다. 백악관이 강조하고 싶은 메시지를 소셜미디어에서 빠르게 퍼뜨리기 위한 전략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2기 내각을 꾸리며 후보들의 방송 출연 영상을 직접 검토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런 활용을 염두에 두고 언변을 중요하게 본 것으로 풀이된다.

● 위기 국면서 발견된 뜻밖의 순기능

트럼프 대통령은 매일 아침마다 TV를 통해 얼굴을 보는 폭스뉴스 앵커들과 사적으로도 친한 사이다. 폭스뉴스의 간판 숀 해니티, 2013년 CNBC에서 폭스뉴스로 이직한 유명 경제 앵커 마리아 바티로모 등이 대표적이다.

특히 9일 트럼프 대통령이 상호관세 90일 유예 발표를 고심하던 와중에 바티로모의 방송을 본 것으로 알려지며 둘의 친분이 크게 주목을 받았다. 바티로모는 평일 오전 6~9시 ‘모닝스 위드 마리아’를 진행한다. 9일 방송에는 미국 최대 은행 JP모건체이스의 제이미 다이먼 최고경영자(CEO)가 출연해 “관세 정책으로 침체가 올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이날 오후 1시 트럼프 대통령은 상호관세 유예를 발표했다. 바티로모는 월스트리트저널(WSJ)에 “이날 발표 이후 트럼프 대통령이 전화를 걸어 ‘제이미의 인터뷰를 봤다. 그가 요점을 잘 짚었다’고 말했다”라고 밝혔다.

지난달 6일 백악관에서 바티로모(오른쪽)가 트럼프 대통령과 인터뷰하는 모습. 사진 출처 바티로모 인스타그램
그는 지난달 트럼프 대통령과 단독 인터뷰를 하고, 트럼프 대통령이 “좌파 문화를 척결하겠다”라며 개혁을 예고한 수도 워싱턴의 문화·예술 공연장인 케네디센터의 이사로도 지명되는 등 대표적인 친트럼프 언론인으로 꼽힌다.

다만 다른 폭스뉴스 진행자들에 비해 관세 정책에 대해 비판적인 입장을 보여왔다. 같은 날 다이먼 CEO에 앞서 가진 베선트 장관과 인터뷰에서 “트럼프 대통령의 의제에 대해 모두가 굉장히 들떠 있었다. 규제 완화, 에너지 자원 개발, 감세 정책까지. 그런데 이제, 갑자기 ‘쾅’. 관세 조치로 모든 게 바뀌었다. 왜 이런 일을 하는 것이냐”고 묻기도 했다.

다이먼 CEO의 인터뷰는 트럼프 대통령이 상호관세 강행에서 협상으로 선회하는 데 영향을 미쳤다는 평가를 받는다. 트럼프 대통령이 신뢰하는 앵커의 방송에서, 한때 직접 재무장관으로 영입하려 했던 월가 거물이 우려를 드러내자 이를 주의 깊게 들은 것으로 보인다. 의외의 효과지만 예스맨 참모만 기용한 트럼프 대통령에게 시사방송이 얼마 남지 않은 직언의 통로가 되고 있다.

20화 요약: TV 시대의 유물로 여겨지던 아침 시사방송이 다시 힘을 발휘하고 있다. 트럼프 행정부가 하루 종일 뉴스 주도권을 쥐기 위한 메시지 창구로 이 방송들을 적극 활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트럼프 대통령이 매일 아침 직접 방송을 챙겨보는 만큼, 이 방송들은 아부로 가득한 그의 세계에서 뜻밖의 ‘직언 통로’로도 작동하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을 통해 미국 정치를 들여다보는 ‘트럼피디아’가 어느덧 20화를 맞았습니다. 어떤 분들이 읽고 계신지 궁금합니다. 연재에 대한 의견이나 궁금한 점, 건의 사항을 asap@donga.com으로 보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이지윤 기자 asap@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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