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그린 그림은 이게 아닌데”…시장 ‘반란’에 당황한 트럼프, 극복할 수 있을까 [노영우의 스톡 피시]
‘약달러와 고금리.’
물과 기름처럼 함께 섞이기 어려운 단어들이다. 글로벌 자금은 금리를 따라 움직인다. 물이 아래로 흐르듯 돈은 금리가 낮은 곳에서 높은 곳으로 흘러간다. 이 때문에 금리가 높은 국가의 통화는 강세를 보인다. 그런데 최근 글로벌 금융시장에서는 미국 금리는 올라가지만 달러는 약세를 보이는 현상이 뚜렷해지고 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정책이 만들어낸 비정상적인 흐름이다. 트럼프의 정책은 시장을 이길 수 있을까. 향후 금융시장 향배가 주목된다.
금리는 2월 중순 이후 반전됐다. 미국이 관세를 높이면 미국 경제가 침체를 겪을 것이라는 염려가 확산됐다. 경기 침체기에는 자금수요가 줄어 금리는 하락한다. 이런 분위기를 반영해 미국 국채 10년물 금리는 4월초에는 연 3.9%까지 떨어졌다. 이때까지 금리와 달러 값은 같은 방향으로 움직였다. 금리가 오를 땐 달러인덱스도 108을 넘어설 만큼 강세를 보였다가 금리가 떨어지면서 달러 값도 103선까지 하락했다.
과거와는 다른 시장 흐름이 형성된 이유로는 ‘트럼프의 큰 그림’이 노출되면서 시장이 발작 증세를 보였기 때문이다. 이를 촉발한 것이 스티브 미란 백악관 경제자문위원회(CEA)위원장이 작성한 ‘미란 보고서’다. 이 보고서는 미국이 무역적자와 재정적자의 ‘쌍둥이 적자’를 해소하기 위해 100년 만기 채권을 발행해 기존에 미국 채권을 갖고 있던 나라들의 채권을 대체해야 한다는 주장을 담고 있다.
미국 국채와 함께 미국 달러에 대한 신뢰도 떨어지면서 달러 값도 동반 하락했다. 채권시장에서 금리가 오르면 누구보다 미국이 가장 큰 타격을 받는다. 국채 값은 떨어지고 정부부채로 갚아야 하는 이자는 눈덩이처럼 불어나기 때문이다.
채권 시장 불안을 잠재우기 위해 트럼프는 중국을 제외한 나라들의 상호관세 부과 일정을 90일간 미뤘다. 그러면서 채권시장에서 금리 인상 추세는 주춤해졌다. 관세로 협박하고 영구채를 떠넘기려던 미국의 계획은 차질을 빚게 됐다.
트럼프의 ‘마러라고 합의’ 구상은 과거 미국의 파격적인 정책을 연상시킨다. 자본주의 시장경제의 모범국가로 불리는 미국이 극한 상황에 몰리면 언제든 시장 규칙을 깰 수 있음을 역사는 보여줬다. 리처드 닉슨 대통령은 1971년 8월 달러를 가져오면 언제든지 금으로 바꿔주겠다는 약속을 한순간에 깨버렸다. 미국은 그동안 전 세계를 상대로 달러를 금으로 바꿔주는 금본위제도를 시행하고 있었다. 하지만 미국은 갖고 있는 금보다 훨씬 많은 달러를 찍어냈고 이를 눈치 챈 각국은 달러를 금으로 바꾸기 시작했다. 그러자 미국은 일방적으로 더 이상 달러를 금으로 바꿔줄 수 없다고 선언했고 달러를 금으로 바꾸려던 나라들은 하루아침에 날벼락을 맞았다.
먼저 미국의 힘이 예전만큼 세지 않다. 중국은 경제력과 기술력 측면에서 미국에 근접하고 있다. 중국의 제조업이 미국 시장을 사실상 장악하고 있는 상황에서 미국의 관세폭탄을 투하하면 미국이 더 큰 피해를 입을 수도 있다.
금융시장에서 미국이 처한 위치는 더 위태롭다. 세계 각국이 보유하고 있는 미국 국채는 총 3조8106억 달러에 달한다. 상황이 안 좋아지면 언제든지 시장에 나올 수 있는 물량이다. 중국은 미국 국채를 시장에서 계속 팔고 있다. 중국은 미국과 적대적 관계가 지속되는 한 중국의 국채 매도는 계속 이어질 전망이다. 일본도 미국의 우방이라고 하지만 채권시장에서 미국 국채를 지난 1년간 613억 달러나 팔면서 이중적인 태도를 보이고 있다. 미국이 실물경제에서는 관세를 내세워 압박하고 있지만 금융시장에서는 ‘빚쟁이’ 상태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현실이다.
일부 국가는 희생양이 될 것이라는 염려도 제기된다. 한국도 희생양이 되지 않도록 만반의 준비를 해야 하는 이유다. 한국은 대미 무역흑자는 많고 외환보유고도 4000억 달러가 넘는다. 미국의 안보 우산도 제공받고 있다. 미국이 안보와 관세를 미끼로 한국에 장기채권 매수를 압박할 경우 협상력을 제대로 발휘하기는 어려운 환경이다. 어느 때보다 실리를 위한 대미 외교·경제 정책이 필요한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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