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던 경성]‘과학조선’의 개척자들⑫찌르레기가 이어준 원홍구·병오 부자의 인연
1934년11월24일 경성 휘문고보 대강당에서 조선박물전람회가 열렸다. 우리 땅에서 자라는 식물 280종, 동물 600여종, 광물 52종 표본을 한자리에 모은 전시였다. 조선박물연구회와 조선일보가 공동주최한 이 행사는 단순한 자연과학 전시회는 아니었다. 이 전시회 출품작엔 전부 조선말로 이름을 붙였다.
이튿날 조선일보 사설 ‘조선박물전람회’는 이렇게 썼다. ‘삼천리 광대한 지역 수만 종의 동식물에 조선말로 이름을 가진 것이 심히 적다. 우리가 창경원 동물원내에 애들을 데리고 가도 물을 때에 대답할 말이 적다’면서 ‘이런 의미로 보면 금번 전람회는 민족적 공헌을 하고 있는 것’이라고 썼다.
◇조선박물전람회 조류 전시 주도
1933년 설립된 조선박물연구회는 동물부와 식물부로 이뤄졌는데, 원홍구(1888~1970)는 동물부 핵심 인사였다. 이들은 조선의 동물을 체계적으로 연구하고 우리 말 이름으로 통일하는 것이었다. 조선박물전람회에 출품된 학을 비롯한 조류 40종은 원홍구가 주도했다.
‘이번 전람회에서는 그동안 반세기 동안 연구하여 정돈된 동물중에도 가장 특색있고 기이한 그리고 또 세계 동물학계의 자랑인 진품만 근 육백종을 진열하는데 내용을 가르면 곤충류 사백여종, 어류 사십여종, 포유류 이십여종, 조류 사십여종, 파충류 이십여종인데….’(금수곤충육백여종 진화 譜系 찾아 진열, 조선일보 1934년11월22일)
신문에는 원홍구가 송도고보에 마련한 학 표본 사진이 함께 실렸다. 원홍구는 당시 조선 조류학의 개척자였다.
◇송도고보 교사로 조류 연구 입문
평안북도 삭주 출신인 원홍구는 1910년 수원농림학교를 졸업한 후 조선총독부 관비유학생으로 선발돼 1912년 가고시마고등농림학교로 유학을 떠났다. 학교 유일의 조선인이었다. 농학과 선과생으로 3년간 수학한 뒤 1915년 수료하면서 아열대 및 열대 식물 표본 2000여종을 가지고 귀국했다. 수원농림학교 연구생으로 1년간 일하면서 우리나라 식물 채집과 정리가 제대로 안돼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이후 평북 구성군청 서기로 3년 일하다 1919년 송도고보 박물교사로 옮겼다. 좌옹 윤치호가 세운 송도고보는 중등학교 중 드물게 이화학실과 박물실을 갖추고 과학 교육을 중시한 학교였다. 박물실엔 동식물 표본을 다량 갖췄고 학생들은 각자 현미경으로 관찰할 수있었다.
원홍구는 1926년부터 연구대상을 새로 돌린 것으로 보인다. 그해 송도고보 교장으로 온 스나이더의 권유와 도움이 있었기 때문이다. 스나이더는 미국 스미소니언연구소로부터 연구비를 지원받을 수있도록 주선했다. 원홍구는 자전거와 오토바이로 사냥개를 데리고 다니며 엽총으로 연구용 새를 잡았다.
◇남북한 과학계 중추인물 길러내
송도고보에서 가르친 제자 중에는 훗날 남북한 과학계의 중추적 인물로 성장한 이들이 많다. 한국 최초의 물리학 박사 최규남을 비롯, 김병하(생물학) 장기려(의학)는 남한에서, 정준택(공학)은 북한에서 활약했다. 김병하는 원홍구를 ‘잊을 수 없는 스승’으로 추억하는 글을 월간지 조광에 남겼다.
‘지금 제가 동물학 방면으로 진출하여 곤충학부를 전문으로 연구하게 된 것은 이 분의 지도가 많았을 뿐아니라 선생은 조류학 방면에 있어 조선산 조류를 세밀히 조사 연구하야 일본 학계는 물론 전 세계적으로 고명하신 선생입니다…그분은 지금도 쉬지 않으시고 연구하시고 계실뿐더러 가끔 저에게 편지로써 늘 쉬지 말고 독서와 연구를 권하고 계십니다. 내가 이만큼 되어짐이 선생의 지도가 많았음을 생각할 때 그분은 죽어도 잊을 수없습니다.’(박물연구가 원홍구 선생, 조광 제2권1호 1936,1)
◇금눈쇠올빼미 등 신종 조류 3종 발견
원홍구의 조류 연구는 1931년 평남 안주농업학교로 옮기면서 본격화된다. 그해 일본 ‘동물학잡지’에 논문을 발표한 것을 시작으로 1932년 수원고등농림학교 ‘창립25주년 기념논문집’에 논문을 싣는 등 10년간 오로지 조류연구에만 힘썼다.
특히 수원고등농림학교 ‘창립25주년 기념논문집’엔 우리말 명칭으로 된 최초의 조선산 조류 45과 245종 목록이 실렸다. 원홍구는 금눈쇠올빼미, 제비도요, 제비물떼새 등 3종을 새로 발견해 발표했다. 1929~1941년 발표한 논문이 16편이다. 그는 라디오 방송에도 출연, 새 이야기를 들려준 인기강사였다.
◇북한 조류연구의 아버지
원홍구는 평남 덕천농업학교 교장으로 재직하던 중 해방을 맞았다. 1946년10월 김일성종합대학 생물학부 부교수로 초빙됐다. 그는 총독부 산하 중등학교 교장을 지낸 경력 때문에 강의에서 배제된 적도 있었지만 송도고보 제자로 국가계획위원장과 부수상까지 오른 정준택이 도와준 덕분에 강의를 이어갈 수있었다.
1947년 7월 원홍구는 생물학 학사를 수여받았는데, 우리 석사에 해당한다. 1952년 과학원 설립 때 후보원사가 됐다. ‘조선 조류의 분포와 그 경제적 의의’ ‘조선 조류의 검색표’ 등의 연구로 1961년 생물학 박사 학위를 받았고, 생물학 교수가 됐다.
북한 지역 조류, 포유동물 조사 및 보호에 기여했고, 너화, 따오기, 노랑부리 백로 등을 천연기념물로 지정했다. 300여종, 7000여점의 방대한 조류표본을 만들었고, ‘조선조류지 1~3’(1963~1965)에 23목 58과 187속 440여종의 조류를 소개했다. 말년에 북한과학원 생물학연구소장으로 일하다 1970년 타계해 애국열사릉에 안장됐다.
◇조류학자 아들 원병오와의 만남
막내아들 원병오는 어릴 때부터 아버지를 따라다니며 새를 좋아했다. 원산농업대학을 졸업하고 아버지의 뒤를 이으려 했다. 하지만 6.25로 가족이 나뉘었다. 중공군 참전으로 전세가 급박해지자 원홍구의 아들 삼형제는 남쪽으로 피란을 떠났다. 원병오는 경희대교수로 아버지처럼 조류 연구에 투신했다.
원병오는 1963년 철새의 이동경로를 파악하기 위해 북방쇠찌르레기에 알루미늄 가락지를 끼워 날려보냈다. 국내에선 이 가락지가 생산되지 않아 ‘농림성 JAPAN C7655’이 찍힌 일본 가락지를 썼다. 2년 뒤 평양 만수대에서 이 가락지를 단 새가 발견됐다.
북한 생물학연구소장이던 원홍구는 일본에는 서식하지 않는 것으로 알려진 북방쇠찌르레기가 일본산 가락지를 달고 날아온 게 이상해 도쿄에 있는 국제조류보호회의 아시아지부에 편지로 문의했다. 이 과정에서 이 가락지를 단 이가 막내아들 원병오인 사실을 알게됐다. 6.25때 헤어진지 16년만에 새를 통해 소식을 확인한 것이다.
◇김연수의 ‘원더보이’모델
원홍구 부자는 해외 조류학자들을 통해 안부를 확인하고 편지도 교환했다. 부자 상봉은 이뤄지지 못했다. 1970년 10월 원홍구가 세상을 떠났기 때문이다.원병오는 2002년 방북 승인을 받아 아버지 묘소를 참배하고 고향인 개성을 둘러봤다. 부자의 사연은 러시아, 일본, 북한 언론에 소개됐고 일본과 북한에선 책과 영화로도 만들어졌다.
국내에서도 소설가 오영수가 아들의 이야기를 담은 단편 소설 ‘새’(1971)를 발표했고, 김연수가 장편 ‘원더보이’(2012)에 부자의 일화를 각색해 썼다. 원병오는 ‘새들이 사는 세상은 아름답다: 원병오박사의 새이야기’(2002)에서 아버지와의 일화를 소개했다. 분단이 낳은 이산의 아픔은 되새길수록 가슴아리다.
◇참고자료
김병하, 박물연구가 원홍구 선생, 조광 제2권1호 1936,1
원병오, 새들이 사는 세상은 아름답다, 다움, 2002
김근배, 이은경, 선유정 편저, 대한민국 과학자의 탄생, 세로북스, 2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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