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병은 "성시경 채널 촬영 후 하정우와 낮술, 인생 추억 돼" [인터뷰]
연기 열정과 동료애로 빛나는 '인간 박병은'
박병은은 빠르게 달리는 법보다, 오래 버티는 법을 먼저 익힌 배우다. 지난 2000년 MBC 드라마 '신 귀공자'로 데뷔해 2015년 영화 '암살'로 이름을 알리기까지 긴 시간이 걸렸다. 그러나 무명시절에도 연기를 그만둘 생각은 하지 않았다. 그저 자신만의 호흡을 유지하며 성실하게 필모그래피를 쌓아올렸다. 그래서 박병은의 연기는 흔들리지 않는다. 선역이든 악역이든, 인간사에 통달한 듯 캐릭터를 능히 표현해내는 그의 연기에선 단단한 중심이 느껴진다.
최근 인터뷰를 위해 본지와 직접 만난 박병은은 유쾌하고 따뜻했다. 연기나 동료들, 취미 생활에 대해 말할 때면 유독 눈빛이 반짝였다. 오랜 기간 준비하고 기다려온 사람만이 가질 수 있는 여유와 깊이도 있었다. 화면 밖의 그는 화려함보다는 사람 냄새가 물씬 풍겼다. 진심을 다해 내뱉는 말들 속에서, 짧게나마 그의 인생 서사가 비쳐 보였다.
흠모했던 설경구와 드라마로 만나다
박병은은 과거 설경구가 롤모델이었다. 놀라운 연기에 실존인물인가 의심이 들 정도였다고. "예전에 오디션 볼 때 늘 '박하사탕' 대사나 '실미도' 대사를 했던 기억이 나요. 스크린에서만 봤던 설경구라는 대배우와 한 작품에서 만나는 건 영광이죠. 대학 다닐 때 영화관에서 선배의 연기를 보며 '현존하는 사람일까' 생각까지 했었는데, 그만큼 제겐 큰 분이에요. '박하사탕'에서 충격을 많이 받았어요. '어떻게 저런 연기를 하지' 싶어 흠모했던 거 같아요. 17~18년 정도 오디션을 보다가 사석에서 한 번 뵀는데 덜덜 떨면서 사진 좀 찍어달라고 했어요. 저녁 먹고 대화하면서 배우로서의 표본 같은 분을 '형'이라 부르게 된 것도 뿌듯하고 기분 좋았죠."
디즈니플러스 시리즈 '하이퍼나이프'에서 설경구, 박은빈과 호흡을 맞춘 박병은은 이례적으로 캐스팅 제안을 받기 전에 먼저 출연 의사를 밝히며 남다른 열의를 보였다. "설경구 선배가 이 작품을 한다고 들었는데, 같은 소속사니 대본이 있잖아요. 제가 경구 형에게 관심이 많으니까 '하이퍼나이프' 대본을 봤죠. 읽다 보니 한현호가 눈에 띄었어요. 제가 했던 역들과는 다른 무덤덤하면서 신념있는 조용한 인물이었거든요. 캐스팅이 끝났는지 매니저에게 알아봐달라고 했는데 아직 안됐다고 해서 정중히 연락해보자고 했어요. 감독님이 흔쾌히 맞아줬어요. '왜 (대본을 내게는) 안 줬냐'고 하니까 '신 수가 많지 않아서 선뜻 드리기 죄송했다' 하더라고요. 저는 대본 자체가 좋았고 설경구 선배랑 작품을 너무 하고 싶어서 참여하게 됐죠."
그는 두 배우와 연기하며 여러 번 놀랐다고 털어놨다. "배우로서 되게 좋은 연기학원에 갔다 온 느낌도 들어요. 박은빈 배우는 전작을 보며 궁금했는데 이번에 처음 만났어요. 사석에서도 본 적이 없었는데 현장에서 보고 놀랐죠. 감정을 쏟는 것이나 에너지가 엄청나더라고요. 남자 배우들도 힘들어서 지칠 법한데 항상 웃으며 스태프들을 대하고, 좋은 연기가 나왔을 때 희열을 느끼는 표정도 보였고요. '자기 연기를 사랑하는구나' 싶었어요. 비를 하루 종일 맞아도 다 들어주고 최선을 다해 임하더라고요."
설경구는 연기 외적으로도 완벽한 자기 관리로 박병은을 감탄하게 만들었다. "선배는 연기는 두말할 것 없고요. 촬영장 밖에서의 모습이 너무 존경스러워요. 아침 촬영이 있으면 새벽 네시 반에 일어나서 줄넘기하고 두 시간가량 운동하고 현장에 오시죠. 보통 아침 첫 촬영 땐 붓기도 있는데 형은 그런 게 싫다더라고요. 20년 넘게 그렇게 해오셨대요. 충격과 자극을 많이 받았죠. 연기를 할 땐 어떤 가르침을 주려고 하지는 않으세요. 프로가 모인 무대에서 서로 지적하는 건 예의가 아닌 거 같다는 말에 저 역시 깊게 공감했죠."
인간 박병은의 매력을 뽐내는 요즘
박병은은 최근 각종 유튜브나 예능에 출연하며 웃음을 선사하고 있다. 냉철하고 진중한 외모 속에 감춰진 구수하고 엉뚱한 매력이 호감 포인트 중 하나다. "주변 반응이 달라요. 예전엔 작품 나오면 10명이 알아봤다면, 요즘은 100명이 알아보죠. 유튜브의 힘이 이렇게 센가 싶더라고요. 시공간을 초월해서 볼 수 있는 거라 외국에 있는 분들도 좋아해주고 초등학생 친구들까지 저를 아는 게 신기해요. '로비'는 극장에 가야 볼 수 있는데 유튜브는 그냥 집에서 볼 수 있잖아요. 가끔 댓글 보고도 놀라요. '병은 오빠가 중학교 때 선배였는데 그때부터 눈이 은은하게 돌아있었다'고 써있더라고요. 하하."
그는 유튜브 예능 속에서 보여지는 모습이 실제 박병은 그대로라고 했다. "작품 촬영과 다르게 예능은 레디 액션도 없고 편한 사람들이 모여서 술 한잔하는 느낌이었어요. 그냥 제 모습이 나왔는데 좋게 봐줘서 다행이에요. 힘들지는 않았어요. 하지만 업으로 삼으면 힘들겠죠. 성시경 유튜브 촬영 가서 재밌었어요. 좀 일찍 끝나서 오후 3시 반 정도였는데, 하정우 감독이랑 나와서 계속 걸었어요. 약간 알딸딸한 상태로 경리단길 안쪽에 허름한 시장에 가서 연포탕을 시켜서 소주를 마셨죠. 그다음 생선찜 집에 가서 또 마시고, 이런저런 얘기를 많이 했어요."
특별히 그날의 기억이 좋았던 이유는 또 있다. "사실 남자들끼리 속 터놓고 얘기하기 힘들거든요. 그날 주파수가 완벽히 맞았어요. 날씨도 첫 봄 날씨 같았죠. '걷기 좋은 날이다' '봄인가 봐요' 하는 대화를 나눴던 기억이 나요. 아, 그리고 연포탕 집 사장님이 저희 둘 다 못 알아봐서 너무 편했어요. 하하. (하정우가) 감독으로서 현장에 있을 때는 모든 걸 결정해야 한다는 중압감이 있으니까, 그런 부담을 느끼는 걸 전 직접 봤잖아요. 그날 술 마시며 눈을 보고 얘기하는데 참 좋더라고요. 대학 선후배라 25년 넘게 알고 지냈는데도 서로 몰랐던 걸 그날 알게 됐죠. 정우가 영화를 대하는 태도나 본인이 살아온 얘기도 들려줬고, 서로 힘든 얘기도 나눴어요. 인생에서 남을만한 시간이었어요."
유수경 기자 uu84@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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