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안84의 낭만에는 도대체 무슨 마력이 있는 걸까('대환장 기안장')
[엔터미디어=정덕현의 네모난 세상] 넷플릭스 예능 <대환장 기안장>이 글로벌 톱10 시리즈 부문(비영어)에서 6위에 올랐다. 여행 버라이어티쇼로서는 이례적인 성과다. <대환장 기안장>은 국내는 물론이고 홍콩, 싱가포르, 인도네시아, 필리핀 등 6개 국가에서 톱10에 올랐다.
알다시피 넷플릭스에서 잘 먹히는 글로벌 예능 트렌드는 <피지컬:100>, <흑백요리사> 같은 서바이벌이나 <솔로지옥> 같은 연애 리얼리티 정도다. 그만큼 글로벌 공감대를 갖기가 쉽지 않은 분야가 예능이다. 웃음과 재미에는 나라마다 다른 정서적 차이가 일종의 장벽으로 작용한다. 그런데 <대환장 기안장>은 여행 버라이어티다. 도대체 무엇이 이 장벽마저 넘어선 것일까.
물론 넷플릭스라는 글로벌 지향 OTT인지라 여기에 걸맞는 출연진으로서 방탄소년단의 진이 '기안장'의 팀원으로 들어있긴 하다. 하지만 <대환장 기안장>의 핵심적 재미는 제목에 이미 들어가 있듯이 기안84라는 독특한 사고와 행동을 보이는 인물에서 나온다. 기안장 자체가 기안84가 웹툰처럼 상상력을 발휘해 슥슥 그려낸 밑그림을 실제로 구현해낸 것이기도 하다.
<나 혼자 산다>나 <태어난 김에 세계일주>를 보며 기안84라는 인물이 그려나가는 독특한 세계를 봤던 분이라면, <대환장 기안장>에 대한 기대감이 생길 수밖에 없다. '태어난 김에' 산다는 모토를 가진 이 인물은 여행을 가도 아무렇게나 입고 먹고 자는 기행을 일종의 낭만으로 여긴다. 그래서 거의 준비를 하지 않는다. 예약 같은 건 아예 없고, 여행가방도 옷 몇 가지가 전부일 정도로 단출하다. 현지에서는 최대한 현지인과 어우러진다. 길바닥에 뒹굴더라도.
이 인물이 넷플릭스라는 거물(?)을 만나 제한 없이 상상하라고 하자 기막힌 민박집이 탄생했다. 울릉도 바다 위에 바지선을 띄워놓고 그 위에 지어진 이 민박집은 들어가려면 2층 꼭대기에 나 있는 문까지 클라이밍을 해야 한다. 2층에서 1층 주방으로 가려면 <거침없이 하이킥>에 나오는 봉을 타고 내려가야 하고, 식사 후에는 낑낑대며 봉을 올라야 겨우 2층으로 나온다. 잠자리는 테라스처럼 된 야외에 마련되어 별을 보며 자는 낭만을 얘기하지만 비라도 오면 쫄딱 젖어야 한다. 5성급 풀장(?)이 마련되어 있다고는 하지만, 그건 2층에서 워터슬라이드를 타면 퐁당 빠지는 바다 풀장이다.
게다가 기막힌 기안장만의 룰이 등장한다. 보통 '조식제공'이 호텔의 국룰이라면 기안장에서는 대신 석식을 제공한다. 그런데 <태어난 김에 세계일주> 인도편에서 체험했던 손으로 카레를 먹는 그 경험을 굳이 숙박객들이 해야 한다. 식판에 담긴 카레와 밥을 손으로 섞어 입에 넣고 먹는 모습은 기안84 스스로 표현한 것처럼 '무언가 금기를 넘는' 체험처럼 여겨진다.
<효리네 민박>을 만들었던 정효민 PD와 윤신혜 작가의 작품이지만 그때의 힐링 가득했던 풍경과는 정반대다. 아예 대놓고 기안84는 "힐링 그런 건 하지 말자"고 선을 그었다. 대신 군대 체험처럼 힘들었을 때 기억에 남는 그런 공간으로서 기안장을 구상했다. 너무 쉽게 손님들이 집에 들어가는 게 싫었다며 굳이 클라이밍까지 해야 들어가게 만든 문은 기안장의 생고생을 상징하는 통과제의가 되었다.
그런데 이 불편함은 어째서 기안84식의 낭만으로 받아들여지게 된 걸까. 먼저 투숙객들이 이 기막힌 숙소를 보며 괴로워하기보다는 반색하는 모습이다. 애초부터 기안84가 하니 당연히 그럴 거라는 걸 예상했던 이들은 "기안84가 하는 <효리네 민박>의 지옥 버전" 정도로 이 프로그램을 이해하고 있었다. 그러니 기안84의 색깔이 묻어나는(대충 먹고 자고 씻는) 숙소의 형태가 즐거운 체험이 된다.
실제로 불편함은 기존 여행 버라이어티들이 낭만화했던 편리함들을 뒤집어 진짜 여행의 묘미를 느끼게 해준다. 투숙객들이 서로 도와야 숙소에 들어갈 수 있는 이곳에서는 금세 친해지고 바다 위에 떠있는 숙소의 야외침상에서는 진짜로 별들이 지천으로 펼쳐진다. 물론 손님들의 불편함을 막상 대하니 죄책감을 느끼며 타협하려는 마음이 절로 드는 기안84의 모습도 고개가 끄덕여진다. 자신이 하는 방식을 타인들이 따라하게 됨으로써 느낄 수 있는 불편함이 있을 수 있어서다. 하지만 흔들리는 기안84를 오히려 다잡아주는 건 '그처럼 살아보고 싶다'며 프로그램에 자청한 진이다. 진은 타협하지 말고 계속 밀고 나가는 게 맞다고 기안84를 다독인다.
낭만에는 불편함이 따르기 마련이다. 하지만 TV 저편으로 보이는 낭만들이 애써 그 불편함을 지우려 할 때 기안84는 그걸 지울 수 없는 행동들을 보여준다. 맨바닥에 털썩 앉아 길거리 음식을 먹으며, 심지어 떨어진 음식도 호호 불어 입에 넣는 그 모습에서 찐 여행의 맛이 느껴지고 그런 고생 뒤에 겪게 되는 진짜 여행의 맛이 바로 낭만일 수 있다고 이 인물은 말하고 있다. 물론 이런 낭만을 자청하고픈 이들은 많지 않을 게다. 하지만 누군가의 그것을 보고 싶은 마음이 어찌 없으랴. 이 지점이 기안84의 낭만에 깃든 마력이 아닐까.
정덕현 칼럼니스트 thekian1@gmail.com
[사진=넷플릭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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