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남석의 개미생활] `점(.)` 하나에 무너지는 투자자 `신뢰탑`

김남석 2025. 4. 17. 13: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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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이주] 주식시장 관련 소식이 매일 쏟아지지만 뉴스에서 '개미'의 목소리를 찾기 쉽지 않습니다. 기사를 쓰는 기자도 개인 투자자고, 매일 손실과 이익 사이에서 울고 웃습니다. 일반 투자자보다 많은 현장을 가고 사람을 만나지만 미처 전하지 못했던 바를 철저하게 '개인'의 시각으로 풀어보겠습니다.

"공시가 잘못돼 있었네요. 담당 부서에서 바로 정정공시 준비한다고 합니다."

최근 기사 작성을 위해 공시를 읽다가 말도 안 되는 수치를 발견하고 해당 기업에 문의하자 돌아온 답변이다.

최근 한 달간 직접 발견한 공시 오류만 두 건이었다. 하나증권은 올해 배당금액을 공시하면서 총액을 올해가 아닌 지난해 금액으로 적었고, 한화자산운용은 16억원인 임직원 급여를 1.6억원으로 적었다.

물론 공시도 사람이 직접 하는 것이니 오류가 있을 수 있다. 기사를 쓰고 나서 다시 볼 때야 오타가 보이는 것처럼, 공시하고 나서야 이상한 점이 발견될 수 있다. 또 틀린 내용이 별 것 아니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하지만 그 기업에 투자하거나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대부분 공시를 본다. 지난해 실적과 현금흐름은 어땠는지, 배당은 얼마나 했는지 등을 확인한다.

그 대상이 금융회사라면 더 유심히 보게 된다. 내가 투자한 돈을 어떻게 활용해서 돈을 벌었는지, 회사 계정의 투자실적이 좋았는지 나빴는지를 공시에서 확인할 수 있다.

최근 금융회사들이 무더기로 실적 공시를 수정했다. 한국투자증권은 무려 5년치 사업보고서를 수정했다. 2019년부터 2023년까지 내부 외환거래 이익과 손실을 잘못 산정해 영업수익도 잘못 산출됐다고 정정 공시했다. 신한투자증권도 외환거래 문제로 실적을 수정했다.

오류가 있을 수 있지만, 5년간 이를 몰랐던 기업도 문제고 해당 공시에 적정의견을 낸 회계사도 문제다. 이 오류는 단순히 공시를 읽는 사람 입장에서는 발견할 수조차 없는 문제다. 하지만 공시를 위해 실제 서류를 검토하고, 실사한 기업과 회계사라면 당연히 알 수 있는 사안이다.

그런데 5년간 방치됐다. 그동안 투자자들은 잘못된 실적을 보고 투자한 셈이 됐다. 하나를 틀리니 다른 것들에도 의심이 생긴다.

대상이 투자자든 아니든, 해당 기업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알 수 있도록 현행법과 시행령, 한국거래소와 금융투자협회 규정 등을 통해 공시가 의무화돼 있다. 어떤 사건이 발생하면 기업은 공시를 해야 한다.

그런데 요즘 '불성실 공시법인'이 늘어나고 있다. 금융당국은 불경기를 가장 큰 이유로 꼽았다. 기업이 어떤 결정을 했지만, 현실적인 문제로 이를 시행하기 어려워 결정을 철회하거나 수정하느라 공시내용을 수정했다는 것이다.

하지만 최근 불성실공시법인 지정 예고 조치를 받은 한화에어로스페이스를 보면 불성실 공시는 불경기 탓만이 아니다. 주주와의 '소통부족'이 더 큰 문제다.

투자를 위해 유상증자를 실시한다더니 한 달도 되지 않아 그 금액을 줄이고 부족한 재원은 오너가에서 채우기로 했다. 유상증자 신고에 대한 정정을 요구받은 뒤 급하게 총 투자금액도 수정했다.

최근 합병을 결정한 동원산업과 동원F&B도 마찬가지다. 동원F&B 주주들은 이번 합병으로 자신이 투자한 기업이 상장폐지 된다는 사실을 이사회 당일에야 알 수 있었다. 반대매수청구권이 있지만, 주주 모두가 만족할 만한 수준은 아니었다.

이 과정에서 주주가 알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이사회를 한 뒤에 공시를 했고 그 공시마저 틀린 내용도 있었다. 투자자 입장에서는 기업이 어떤 결정을 왜 했는지 알 수 있는 방법이 공시밖에 없다.

공시는 기업의 언어라고 한다. 그 언어가 틀리면, 투자자는 현실을 왜곡된 채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 공시는 '의무'이기 이전에 '책임'이다. 숫자를 잘못 쓰는 건 단순한 실수일 수 있지만, 반복되면 그것은 신뢰의 문제다. 공시가 틀렸다면 내 투자도 틀릴 수밖에 없다.김남석기자 kns@d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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