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살던 곳이 ‘요양원’ 된다”… 돌봄 필요하면 의료진이 찾아와
실버주택-요양원 중간개념 도입… 원룸형 요양원 대신 쾌적한 아파트
원스톱 의료-미용실 등 갖추고… 지역사회 개방, 살아있는 공간으로
입주자 10% 청년으로 구성해 활력… 시니어 입주민들이 주택운영 결정
지난달 31일(현지 시간)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에서 약 30km 떨어진 힐베르쉼시의 사회주택 ‘리브인’. 1층 공용 거실에서 만난 입주민들은 ‘원스톱 돌봄 서비스’를 자랑으로 여겼다. 약 150명의 입주민이 머무는 이 단지엔 돌봄서비스 기업 ‘아마리스’의 사무실이 마련돼 있었다. 의료진과 간호사 등 대여섯 명이 물리치료, 재활, 호스피스 등 다양한 돌봄을 제공한다. 리브인을 보유한 사회주택 재단 하비온의 페터르 부렌핀 책임자는 “시니어 입주민들이 원하는 돌봄을 ‘아마존’처럼 집으로 원하는 시간에 신속하게 보내준다”라고 말했다.
일부 돌봄 직원들은 실제 단지에 입주해 거주한다. 밤중에 긴급한 의료 요청이 오면 신속하게 달려갈 수 있다. 실버타운과 요양원의 이점을 누릴 수 있는 셈이다.
실제로 이날 찾은 리브인은 요양원이나 병원의 느낌은 찾아보기 어려웠다. 주변을 지나던 지역 주민들도 리브인 건물에 있는 식당이나 거실로 들어와 커피를 마시고 신문을 봤다. 건물 1층엔 네일숍, 미용실, 물리치료실 등이 들어서 있었다. 지역 사회에 활짝 열려 살아있는 공간인 셈이다.
● “침대만 가득한 요양원 싫어”
실제로 기존 요양원 이용자와 주변 지역 주민을 대상으로 수요 조사에 나섰더니 ‘요양원에서 죽음을 기다리며 살기 싫다’, ‘집 같은 곳에서 살고 싶다’는 답이 많이 나왔다. 무엇보다 요양원 이용자들이 “침대만 가득한 방이 싫다”고 호소하는 점에 주목했다.
네덜란드의 65세 이상 인구는 지난해 1월 기준 367만7228명으로 전체 인구의 20.5%를 차지한다. 자기 주도적 노년기를 원하는 영올드(Young Old·젊은 노인)가 늘어남에 따라 시니어 주택 패러다임의 전환이 시급하다고 본 것이다.
이에 하비온은 요양원의 색깔을 확 뺐다. 침대로 가득했던 비좁은 원룸형 요양원을 허물었다. 그 대신 침실을 따로 두고 부엌, 거실 등을 갖춘 쾌적한 아파트로 변신시켰다. 여기에 미용실 등 상업시설을 입점시키고 지역민들에게 공간을 개방해 활력을 불어넣었다.
살던 집 같은 공간을 만들자 지역 주민들도 돌봄이 필요한 고령이 되면 이 주택에 많이 입주한다. 외딴 요양원으로 들어가지 않고 정든 자기 동네에서 주민들과 더불어 여생을 보낼 수 있기 때문이다. 약 2년 전 입주한 엘런 드보르킨 씨(76)는 “돌봄 서비스를 편하게 집에서 받을 수 있고, 근처에 딸이 살고 있어 가족들을 자주 볼 수 있으니 입주를 결심했다”고 말했다.
● 입주자 약 10%는 18-25세 청년
리브인은 역동성을 높이려 노인들의 입주 기준도 차별화했다. 과거 요양원은 정부의 권고에 따라 저소득층 노인을 우선적으로 받아들였다. 하지만 리브인은 고소득자도 입주해 입주자의 소득 수준이 다양하다. 세입자 가운데 유주택자가 약 40%에 이른다.
인구 고령화로 돌봄 수요는 급증하는데 정작 저출산 탓에 운영 인력은 부족한 상황에서 돌봄 인력을 효율적으로 활용하는 방안도 고민했다. 이곳은 돌봄 수요를 따져보고 입주 여부를 결정한다. 중환자만 받는 게 아니다. 입주자 가운데 돌봄 수요의 수준이 높은 그룹, 중간인 그룹, 낮은 그룹을 각각 30% 유지하기 위해 다양하게 뽑는다. 부렌핀 책임자는 “너무 중환자만 많으면 요양원이 돼 버리고, 건강한 사람만 많아도 시니어 돌봄의 의미를 잃는다”고 설명했다.
리브인 입주자의 10%가량을 18∼25세 청년으로 구성한 점도 눈에 띈다. 노인들은 청년들과 교류하며 새로운 아이디어를 얻고, 청년들은 비교적 저렴한 월 550유로(약 89만 원)의 월세를 내는 경제적 혜택을 누릴 수 있다. 음악가로 세계 곳곳을 돌아다니다 은퇴해 이곳에 정착한 아넬리스 판테르 씨(76)는 “청년들이 오가는 것을 보기만 해도 생기가 생긴다”고 했다. 청년 입주자 마리케 씨는 “항상 여러 활동이 진행돼 유쾌하다”며 “입주민들이 친밀하게 느껴져 4년째 살고 있다”고 말했다.
시니어 입주민들이 스스로 주택 단지를 운영하며 공간의 활력이 더욱 배가되고 있다. 기존 요양원에서처럼 주어지는 서비스만 받지 않고 입주민들이 스스로 일상을 만들어 나간다. 입주민 단체는 매달 1∼2유로(약 1600∼3200원)의 회비를 걷어 요리 강습, 콘서트 등 각종 활동을 한다. 1층에 마련된 식당은 물론이고 콘서트 홀, 네덜란드어로 ‘행복한 시니어’란 뜻을 담은 ‘해피 아워 펍’이 그 무대가 된다.
부렌핀 책임자는 “요즘 은퇴자들은 과거와 달리 자기 주도적으로 살길 원한다”며 “우리는 건물만 제공하고 주택 운영은 세입자들이 알아서 결정한다”고 설명했다.
힐버숨(네덜란드)=조은아 특파원 achi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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