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hy] ‘美 상호관세 0%’ 러시아, 관세 대상국만큼 피해 입는 이유

이은영 기자 2025. 4. 11. 11: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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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럼프 리스크로 원유 값 하락
대중 제재, 러시아에도 악영향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동맹국을 비롯해 전 세계 180개국을 상대로 대규모 관세 부과를 선언했지만, 러시아는 주요국 중 유일하게 이를 비껴갔다. 이 때문에 러시아가 수혜를 보게 됐다는 해석이 나왔지만, 실상은 ‘트럼프 리스크’ 때문에 유가가 떨어져 관세 부과 대상국 못지않은 경제적 피해를 입고 있다고 외신이 보도했다.

10일(현지시각) 뉴욕타임스(NYT)에 따르면 원유 가격은 트럼프 대통령이 관세를 발표한 4월 2일 이후 약 15% 급락했다. 이는 글로벌 경기 침체 우려가 급격히 확대된 데 따른 것으로, 석유 수요 전망이 위축되면서 유가가 떨어졌다. 트럼프 대통령은 관세를 90일간 유예하겠다고도 밝혔지만, 글로벌 경제 전망은 이미 타격을 입은 상태다.

10일(현지시각)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 /로이터연합뉴스

◇ 석유 수출로 먹고 사는데… 유가 하락 ‘비상’

원유는 러시아 경제와 전쟁의 생명줄과 같다. 트럼프 발(發) 유가 하락이 지속될 경우 러시아는 조만간 허리띠를 졸라맬 수밖에 없고, 그 여파는 군사 예산에도 미칠 수 있다고 NYT는 분석했다. 전문가들은 “이번 관세 조치가 장기적으로는 서방의 제재보다도 러시아의 전쟁 수행 능력을 약화시킬 수 있다”고 말했다.

보도에 따르면 러시아의 연방 예산 중 약 3분의 1은 석유 수출에서 나온다. 올해 러시아는 국방 및 안보 분야에 약 1360억달러(약 197조원)를 책정했는데, 이는 10년 전보다 세 배 가까이 증가한 액수다. 이런 상황에서 유가 하락으로 석유 수출액이 줄어 재정적 압박이 심화될 경우 삭감이 불가피할 것으로 전망된다.

엘비라 나비울리나 러시아 중앙은행 총재는 “트럼프 대통령의 정책이 러시아에 미치는 주요 영향은 유가 하락”이라고 경고한 바 있다. 드미트리 페스코프 크렘린궁 대변인도 “국제 시장은 현재 극도로 불안정하고 감정적으로 과열돼 있다”며 간접적으로 우려를 전했다.

러시아 루블화 강세도 석유 수출액을 끌어내리는 요인이 됐다. 트럼프 대통령이 우크라이나 휴전을 중재하려는 움직임을 보이자 루블화는 강세로 돌아섰는데, 국제 석유 시장에서 거래는 대부분 달러로 이뤄지는 만큼, 자국 통화 가치가 오르는 것은 수익성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

7일(현지시각)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의 항구에 컨테이너사 쌓여있다. /AP연합뉴스

미국과 중국의 무역 전쟁은 러시아에도 역풍으로 작용한다. 러시아는 서방 제재를 피해 중국과 인도로 저가 석유를 수출해 왔는데, 무역 전쟁 여파로 중국의 수요가 둔화한다면 러시아는 장기적인 수익성에 타격을 받을 수 있다. 미국 내 에너지 자급 및 미국산 원유 수입 확대를 유도하는 트럼프 행정부의 기조 역시, 러시아의 글로벌 에너지 시장 입지를 위협하는 요인이다.

◇ 재정 상황 악화일로… “관세 대상국 이상으로 피해”

올해 초부터 러시아는 전쟁 비용 증가로 인해 예산 적자가 국내총생산(GDP)의 1.3% 수준까지 확대된 상태다. 2월 말 기준 올해 예산의 약 20%를 이미 집행했는데, 특히 방위비와 안보비가 전체 예산의 40% 이상을 차지해, 재정 압박이 커지고 있다.

국제 금융시장 접근이 차단된 러시아 정부는 비상금인 국부펀드(National Wealth Fund)에 의존하고 있으나, 이 역시 전쟁 이후 급속히 액수가 줄어들고 있다. 고금리도 부담이다. 현재 러시아 기준금리는 물가 억제를 위해 21%에 이른다. 이 경우 국내 금융기관을 통한 국채 발행에 비용이 크게 든다.

장기적으로는 무역 전쟁이 미국 중심의 질서에서 탈피하는 흐름을 촉진하고, 러시아가 추진해온 ‘탈(脫)달러·탈서방 경제구조’에 일조할 수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브릭스(BRICS) 등 신흥국 협력을 통해 이 같은 대안을 꾸준히 추진해 왔다.

하지만 NYT는 “이런 구조적 전환은 수년이 걸리는 일이다. 러시아는 지금, 유가 하락이라는 현실적인 위협에 직면해 있다”고 했다. 전문가들은 NYT에 “글로벌 공급망 재편이 러시아에 잠재적 기회를 줄 수도 있지만, 단기적으로는 오히려 관세 대상국 이상으로 러시아가 경제적 피해를 입을 수 있다”고 분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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