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시바도 금품 스캔들… 7월 선거까지 ‘식물총리’ 전락하나 [세계는 지금]

유태영 2025. 4. 5. 14: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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日 이시바 내각 지지율 위기
내각·여당 합계지지율 40%대↓
초선의원 15명에 100만원 상품권
“사비로 구입… 위법은 아냐” 해명
전임 기시다와 유사한 금품 파문
비주류 ‘청렴 정치인’ 이미지 깨져
내각 불신임엔 신중 목소리
여소야대서 野 단합 땐 퇴진 가능
야권 ‘현체제가 선거에 유리’ 셈법
대안 없는 자민당 일각선 “관행”
여론도 “그만둘 필요 없다” 60%
지난해 10월 중의원(하원) 선거에서 참패해 여소야대 정국을 이끌고 있는 이시바 시게루(石破茂) 일본 총리가 다시 정치적 위기에 빠졌다. 자민당 초선 의원 15명에게 10만엔(약 98만5000원) 상당 상품권을 뿌린 사실이 언론 보도로 알려지면서다.

여당 총재가 총리직을 맡는 일본에서는 여당 지지율과 내각 지지율 합이 50%를 밑돌면 정권을 내주게 된다는 ‘아오키의 법칙’이 통용된다. 상품권 파문으로 여론의 십자포화를 맞으면서 자민당과 이시바 내각 합계 지지율은 최근 일부 여론조사에서 40%대로 내려앉았다. 이에 따라 이시바 총리의 거취가 7월 열리는 참의원(상원) 선거에 미칠 영향이 주목된다.

◆이시바 “사비로 구입… 위법 아니다”

문제의 상품권 배포는 지난달 3일 총리 관저에서 열린 만찬 간담회를 앞두고 일어났다. 이날 낮 총리 비서가 참석자들에게 미리 선물을 돌렸는데, 백화점 포장지 안에 1000엔짜리 상품권이 100장씩 들어 있었던 것이다.

열흘 뒤인 13일 이 정보를 입수한 아사히신문이 취재에 나서자 당정이 발칵 뒤집혔다. “노 코멘트”, “아는 바 없다”. 모르쇠로 일관하던 의원들이 “그대로 사무실에 보관하고 있다”며 시인하기 시작했다. 총리실은 애초 “내부 모임에 부수된 세부사항은 (언급을) 삼가고 싶다”며 버텼으나 보도가 나가자 백기를 들었다. 이시바 총리는 상품권 파문 보도 3시간 뒤인 이날 밤 11시쯤 기자들과 만나 “회식 선물 대신 (선거를 치르느라 고생한) 가족들 격려 차원에서 쌈짓돈으로 준비한 것”이라며 “법에 저촉되는 것은 아니다”라고 했다.
그의 해명은 ‘공직 후보자의 정치활동에 관한 기부’를 금지한 정치자금규정법을 위반하지 않았다는 것, 또 관방기밀비(내각관방보상비)가 아닌 사비로 상품권을 구입했다는 쪽에 맞춰졌다. 법 위반도, 혈세 낭비도 아닌 만큼 확대 해석하지 말라는 의도였다.

그러나 학계뿐 아니라 자민당 간사장 출신 인사의 입에서조차 “총리 관저에서 의원들끼리 모임을 하는데 왜 정치활동이 아니냐”는 비판의 목소리가 나왔다. 문제의 간담회에서는 선거 대책이나 정책 논의의 자세 등에 관한 의견 교환도 있었던 것으로 드러났다. 법 위반 논란은 여전히 가라앉지 않고 있다.

총리 주변에선 억울하다는 반응도 나왔다. 한 측근은 “상품권 배포는 어느 정권이나 하던 관습이었다”고 하소연했다. 의원숙소 식당에서 한 손에 책을 들고 혼자 식사하는 장면이 종종 목격되고, 다른 사람들과 술자리를 갖는 일도 드문 이시바 총리에게 “그 정도(상품권 배포) 하지 않으면 우군을 만들 수 없다”고 조언한 참모도 있었다고 한다. 일각에선 모테기 도시미쓰(茂木敏充) 전 간사장 등 당내 비(非)이시바 세력이 총리를 궁지에 몰기 위해 상품권 배포 사실을 언론에 흘렸다는 얘기가 나온다.

◆“이시바, 너마저”… 지지율 뚝

여론은 싸늘하게 식어갔다. 격려 차원이라는 총리 해명을 곧이곧대로 받아들인다 해도 10만엔어치 상품권을 뿌린 것 자체가 물가고에 시달리는 국민 눈높이에 크게 어긋나는 일이다.

더욱이 전임자가 연임을 포기하고 물러난 결정적 이유가 바로 ‘정치와 돈’ 문제 때문이었다. 기시다 후미오(岸田文雄) 전 총리는 자민당 내 주요 파벌의 정치자금 모금 행사(파티) 모금액 일부가 장부에 기재되지 않은 채 의원들에게 전달돼 비자금 조성에 쓰였다는 이른바 ‘비자금 스캔들’을 끝내 극복하지 못했고, ‘여당 내 야당’으로 통하던 이시바 총리가 당내 비주류라는 약점을 딛고 후임으로 선출됐다. 그런 그마저 정치와 돈 문제에서 자유롭지 않다는 점이 이번 파문을 통해 드러난 것이다.
고노 유리(河野有理) 호세이대 법학부 교수는 아사히에 “과거 리쿠르트 사건(리쿠르트사가 정·관·재계 인사들에게 계열사 미공개 주식을 헐값에 양도해 로비를 벌인 일본 최대 정치 스캔들)을 계기로 정치개혁 논의가 불이 붙었을 당시 자민당 초선 의원들은 정치자금 수입·지출 내역을 공개하는 등 획기적 시도를 했다”며 “이시바는 그 일원이었다”고 지적했다. 지난해 자민당 총재 선거에서 이시바를 선택한 민심의 기대를 저버렸다는 얘기다. 총리 관저 내에서도 “청렴함으로 가져온 정권이라는 이미지가 사라져 꼼짝 못하게 되는 느낌”이라는 한탄이 나온다고 한다.

상품권 사건이 알려지자 야당은 물론 여권 내에서도 비판이 쏟아졌다. 당 총재 선거 경쟁자였던 고이즈미 신지로(小泉進次?) 전 환경상은 “자민당은 국민 감각으로부터 동떨어져 있다는 관념을 만들어 버렸다”고 쏘아붙였고, 연립 여당 공명당의 사이토 데쓰오(?藤?夫) 대표는 “보도를 접했을 때 귀를 의심했다”고 했다.

특히 스캔들이 터진 시점이 하필이면 2025년도(2025년 4월∼2026년 3월) 예산안 심의 기간 중이었다. 국회에서 이시바 총리를 상대로 한 야당의 추궁이 거듭됐고 연일 전파를 탔다. 이시바 총리는 “세상의 감각과 괴리된 부분이 컸다”며 법적 책임 대신 도의적 책임을 인정하는 쪽으로 대응을 이어갔다.

일본 주요 언론사의 3월 여론조사에서 이시바 내각 지지율은 급전직하했다. 8곳 중 7곳에서 정권 출범 후 최저치를 찍었다. 2월에는 40% 이상 나온 곳이 4개사였는데 3월엔 단 한 곳도 없었다. 마이니치신문 조사에서 23%를 기록하는 등 20%대도 4곳이나 됐다.

특히 상품권 배포를 놓고 ‘문제다’라고 한 응답이 4곳에서 70%를 넘었다. 산케이신문과 니혼게이자이신문 조사에서는 “위법성이 없다”는 이시바 총리의 해명에 대해 10명 중 7명이 ‘납득할 수 없다’고 평가했다.

◆내각 불신임 추진에는 신중한 野

폭로 보도 며칠 뒤엔 상품권 배포가 자민당 관행이라는 증언이 나오기 시작했다. 기시다 전 총리도 2022년 12월 관저 간담회 직후 참석자들에게 10만엔어치 상품권을 나눠준 일이 있다고 여러 자민당 관계자가 밝혔다. 자민당 소속 오오카 도시타카(大岡敏孝) 중의원 내각위원장은 2012년 첫 당선 후 관저 회동에 맞춰 아베 신조(安倍晋三) 당시 총리 측으로부터 “상품권 같은 것을 받았다”고 했다. 1979년 처음 당선된 중진 의원 입에서도 “나도 그러한(상품권 배포) 장소에 있었던 적이 있다”는 말이 나왔다.

야권으로서는 대여 공세를 강화하면서 총리를 끌어내릴 수 있는 절호의 기회를 맞은 셈이다. 여소야대 체제에서 야당이 단합해 불신임안 처리에 나서면 이시바 내각은 무너질 수밖에 없다. 그럼에도 제1야당 입헌민주당의 노다 요시히코(野田佳彦) 대표는 “내각 불신임결의안 제출이나 퇴진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있지만 나는 쉽게 요구하지 않는다”고 거리를 뒀다. 제2야당 일본유신회 역시 상품권 문제는 철저히 추궁하겠다면서도 불신임안에 대해서는 신중한 접근법을 유지하고 있다.

야권의 이 같은 태도는 자민당이 ‘새로운 얼굴’을 내세우기보다는 이시바 체제를 유지한 채 7월28일 참의원 선거를 치러야 더 유리하다는 셈법에서 비롯된 것으로 보인다. 지난달 23일 치러진 시즈오카 시의원 선거에서 자민당 의석은 4석 줄었고 단 한 석도 없던 국민민주당은 2개 선거구에서 1위 당선자를 배출하는 등 상품권 사태는 이미 야당에 유리한 흐름을 만들어내고 있다. 연금개혁, 증세 문제 등을 둘러싼 정부·여당과의 협상 과정에서 야당이 주도권을 쥐겠다는 포석이라는 평가도 나온다.

아사히 조사에서 이시바 총리가 ‘그만둬야 한다’는 응답이 32%로 ‘그만둘 필요는 없다’(60%)보다 낮았던 데서 보듯 여론도 이시바 총리의 거취와 관련해서는 관망세를 유지 중이다.

아베파인 니시다 마사시 참의원 의원이 “지금 상황에서는 선거에서 싸울 수 없다. 다시 한 번 총재 선거를 해 새로운 리더를 선택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이긴 했지만, 자민당 내 다른 파벌에서도 눈에 띄는 ‘이시바 끌어내리기’ 움직임은 나타나지 않고 있다. 정당 지지율에서는 여전히 자민당이 굳건한 1위를 유지하고 있는 데다 당내에 마땅한 대안도 없기 때문이다. 결국 상품권 사태를 계기로 이시바 총리의 힘을 빼 ‘허수아비·좀비 총리’로 만드는 선에서 야당과 자민당 내 반(反)이시바파의 이해관계가 맞아떨어지고 있다는 분석이다.

도쿄=유태영 특파원 anarchyn@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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