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의 조롱 “이제 한국 축구는 우리 라이벌이 아니다”

서호정 축구칼럼니스트 2025. 4. 5. 1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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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구 국가대표팀 가치 평가에서 일본이 한국보다 2배 앞서
프로축구 수준 격차도 뚜렷…핵심 차이점은 양국 축구 행정력

(시사저널=서호정 축구칼럼니스트)

한일 관계에서 축구는 한국이 우월감과 자존심을 말할 수 있는 몇 안 되는 분야였다. 해방 이후 첫 스포츠 교류가 1954년 FIFA(국제축구연맹) 스위스월드컵 아시아지역 예선으로 치른 축구 한일전이었다. 일본 선수들이 한국 땅을 밟는 것을 허용할 수 없다는 이승만 대통령의 강경한 태도로 인해 1·2차전을 모두 일본 적진에서 치른 한국은 1차전 5대1 대승, 2차전 2대2 무승부로 첫 월드컵 본선 진출에 성공했다.

기질적 특성과 일본을 상대로 지지 않겠다는 투쟁심이 더해져 긴 시간 동안 한일전에서 우위를 점했던 한국 축구는 1990년대 들어 달라진 상황을 맞는다. 유럽의 시스템과 남미의 우수 선수를 적극적으로 받아들인 일본 축구가 무섭게 성장한 것이다. 이때부터 양국은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는 본격 경쟁의 시대로 돌입했다.

하지만 최근 들어 일본 쪽으로 무게가 점점 기우는 분위기다. 최근 두 차례 월드컵 모두 일본이 한국보다 더 나은 성적을 기록했다. 2018년 러시아월드컵에서 일본은 16강에 올라 벨기에를 상대로 접전을 펼친 끝에 2대3으로 분패했다. 반면 한국은 조별리그 2패 후 디펜딩 챔피언 독일을 꺾는 카잔의 기적에 환호했을 뿐 16강 진출에 실패했다. 2022년 카타르월드컵에서는 양국이 나란히 16강에 올랐지만 평가는 일본이 한 수 위였다. 일본은 조별리그에서 독일·스페인을 격파했고 16강에서도 크로아티아와 승부차기까지 가는 접전 끝에 패하며 최종 9위를 기록했다. 한국은 조별리그에서 포르투갈을 꺾으며 극적으로 16강에 진출했지만 16강에서 브라질에 1대4로 완패했다. 최종 16위였다.

3월25일 수원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 2026 북중미월드컵 아시아지역 3차 예선 B조 8차전 대한민국과 요르단의 경기에서 한국 선수들이 경기가 뜻대로 풀리지 않자 아쉬워하고 있다. ⓒ연합뉴스

세계 10대 리그 선수, 일본은 69명인데 한국은 16명

2026년 북중미월드컵으로 향하는 과정에서도 일본은 한국보다 앞서 나가고 있다. 일본은 3월20일 홈에서 바레인을 꺾고 월드컵 아시아지역 3차 예선 조별리그 7차전을 마친 시점에 본선행을 확정했다. 공동 개최국(미국·캐나다·멕시코)을 제외하고 세계 최초로 본선 진출에 성공한 국가가 됐다. 반면 한국은 홈에서 치른 3월 두 경기에서 졸전 끝에 모두 비기며 6월에 본선행을 기약해야 하는 상태다.

이런 성과 외에도 여러 평가에서 일본은 한국을 앞서 나가고 있다. 이적 전문 사이트인 '트랜스퍼마크트'가 발표한 각국 대표팀 스쿼드 가치 평가에서 한국은 아시아축구연맹(AFC) 전체 2위를 기록했다. 1위는 단연 일본이다. 물론 양국은 이란·우즈베키스탄 등 다른 아시아 국가보다는 월등하다. 스쿼드를 금액으로 환산한 이 평가에선 유럽파를 비롯한 해외파가 많을수록 유리한 구조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문제는 1위 일본과 2위 한국의 격차가 2배 이상 벌어지기 시작했다는 점이다. 일본은 2억8290만 유로(약 4475억원), 한국은 1억2210만 유로(약 1931억원)다. 우리 대표팀의 가치는 지난 연말보다 3000만 유로 가까이 추락한 반면 일본은 소폭 상승했다. 스쿼드 가치에서 한국은 손흥민 등 일부 선수의 노쇠화가 영향을 미친 반면 일본은 그런 변수가 거의 없었다는 얘기다. 

이는 양국 스쿼드의 세부적인 질적 차이로 연결된다. 손흥민·김민재·이강인으로 대표되는 특정 선수의 파워랭킹에선 한국이 일본에 밀리지 않는다. 오히려 아시아 톱5로만 따지면 김민재가 1위, 손흥민이 3위다. 그러나 전체적인 분포도에서 일본에 밀리는 것이 문제다. 일본은 잉글랜드·스페인·이탈리아·독일·프랑스 등 5대 빅리그에서 뛰는 선수가 15명이다. 그 아래를 받치는 포르투갈·네덜란드·벨기에·튀르키예·스코틀랜드에서 뛰는 선수까지 합치면 무려 69명이다. 같은 기준에서 한국은 5대 리그 소속이 9명이고, 랭킹 10위권 국가에서 뛰는 유럽파는 16명이다. 국가대표팀에 동원할 수 있는 선수풀의 차이가 명백한 것이다.

병역이라는 현실적 과제의 유무, 그로 인한 유럽 진출 의지의 차이가 이런 상황을 만들어냈다는 지적은 일견 타당하다. 하지만 한국은 여전히 일부 선수가 돈을 좇아 중동이나 중국으로 가려는 성향이 있다. 반면 일본은 당장 빅리그로 가지 못해도 변방 리그를 거쳐 중심으로 진입하겠다는 강한 도전정신을 보인다. 혼다 게이스케(네덜란드→러시아→이탈리아)가 만든 성공 사례를 따르는 선수가 많다.

미래세대에서도 비슷한 현상이 벌어진다. 특급 재능의 숫자는 한국이 밀리지 않지만, 일본은 10대 중후반부터 유럽행을 적극적으로 타진한다. 한국은 지난해 강원FC에서 맹활약한 2006년생 양민혁의 토트넘 입단(직후 QPR로 임대)이 화제였지만, 일본은 그보다 한 살 어린 2007년생 다카오카 렌토가 지난여름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로 승격한 사우샘프턴 입단을 확정했다. 만 18세가 되는 3월 사우샘프턴에 합류하는 다카오카는 2023년 열린 17세 이하 월드컵 조별리그에서 4골을 넣으며 큰 화제가 된 바 있다. 지난 3월 소집된 일본 20세 이하 대표팀 명단을 보면 다카오카 외에도 5명의 선수가 벨기에, 네덜란드, 스웨덴에서 뛰고 있다.

3월20일 일본의 가마다가 구보와 함께 바레인전에서 골을 넣은 뒤 환호하고 있다. ⓒREUTERS연합

구자철 "한국 축구, 이젠 일본 비교 대상 아냐" 

자연스럽게 연령별 대표팀에서 양국의 격차는 뚜렷해지고 있다. 한국은 최근 일본을 상대로 고전 중이다. 17세 이하 대표팀은 최근 일본에 4연패를 당했다. 스코어도 3골 차 패배 3번, 4골 차 패배 1번이다. 14세 이하 대표팀은 작년 11월 열린 교류전에서 1대6으로 완패했다. 성인으로 분류되는 20세 이하 대표팀부터는 경기 방식에 변화를 줘 지지 않는 상황을 최대한 만들지만, 기술의 승부인 저연령대에서는 차이가 심각하다. 

프로축구에서도 상황은 다르지 않다. 아시아 클럽대항전인 'AFC 챔피언스리그 엘리트'에서 한국은 광주FC만이 4위로 조별리그를 통과한 반면, 일본은 요코하마 F. 마리노스(1위), 가와사키 프론탈레(2위), 비셀 고베(5위)가 모두 16강에 올랐다. 광주와 함께 참가한 포항 스틸러스, 울산HD는 동남아와 중국세에도 밀리며 탈락했다. 

이런 차이는 결국 양국 축구를 이끄는 행정력 차이에서 비롯된다. 일본은 아시아를 넘어서는 경쟁력을 일찌감치 목표로 삼았다. 지난해 일본축구협회 수장으로 취임한 1977년생 미야모토 쓰네야스 회장은 "우리의 목표는 월드컵 우승"이라고 외쳤다. 이를 위해 일본은 축구 스타일을 기존의 패스와 기술 중심에서 강인한 1대1 능력으로 진화시켰다. 유럽파를 돕고, 연령별 대표팀의 지속적인 유럽 원정을 추진하기 위해 독일에 사무국을 마련하는 등 앞서가는 행정력을 발휘했다.

반면 한국은 원칙 파괴 등으로 논란의 연속인 정몽규 회장이 최근 4선에 성공한 상태다. 정 회장은 패러다임의 변화보다 자신이 기존에 추진해온 목표를 되풀이하는 답답한 행보만 거듭하고 있다. 국제대회 유치, 축구종합센터 건립 등이다. 한국 축구 전체가 인식 변화를 통해 탈피할 수 있는 모멘텀이 없다는 지적이 이어지지만 기대를 얻을 만큼 과감한 변화는 없다. 

최근 현역 선수 생활을 마감한 구자철은 행정가로의 전환을 준비하며 따끔한 한마디를 남겼다. "내가 처음 축구를 시작했을 때 한일 양국의 축구에 대한 체감은 지금과 달랐다. 지금은 너무 많이 벌어졌다. 이젠 일본의 비교 대상이 아니다. 그 책임과 시간은 누가 보상하나. 우리가 정신을 차리고, 변화를 받아들여야 한다. 변화를 두려워하면 다음 세대에 더 큰 고통을 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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