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때녀'는 대박 났는데, 여자야구 예능은 왜 실패했을까

황혜정 2025. 3. 29. 09: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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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구하는 그녀들] 잘 되는 프로에는 이유가 있다, 스포츠 예능 성공 방정식 3가지

[황혜정 기자]

 MBC <마녀들> 방송화면 갈무리
ⓒ MBC
"여자야구 예능도 나오면 재밌을 텐데."

'여자야구'를 검색하다 보면, 가끔 위와 같은 글이 보인다. 스포츠 예능이 대세가 된데다 한국에서 가장 인기 많은 프로 스포츠가 야구인 만큼 '여자야구'를 소재로 한 예능도 나왔으면 하는 바람인 것이다.

여자야구 '예능'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여성 스포츠 예능의 대표작이 된 SBS <골때리는 그녀들>(아래 <골때녀>)보다 1년 전인 2020년 12월, MBC는 <마녀들>이라는 여자야구 예능을 제작했다. 10부작으로 방영된 시즌 1에 이어 2021년 6월 시즌 2가 제작됐지만, 3부작에 그쳤다. 최고 시청률은 1.6%로 <골때녀>의 최고 시청률 13.9%(2021년 12월 22일 방송분)에 비하면 한참 모자라다.

야구가 예능 프로그램으로 성공하기 어려운 스포츠일까? 아니다. 이미 2009년 KBS <천하무적 야구단>이 1년 넘게 방영됐고, JTBC <최강야구>는 2022년 방송 직후부터 뜨거운 인기를 구가하며 현 시점 대한민국 최고 인기 예능 중 하나로 자리매김했다.

그러면 왜 똑같이 야구를 소재로 한 예능이었던 <마녀들>은 큰 반향을 불러일으키지 못하고 쓸쓸히 퇴장했을까. 필자는 <골때녀>와 최근 화제 속에 종영한 tvN 예능 <달려라 불꽃소녀>에서 그 이유를 찾았다.

①성인 규격보다는 자체 규격·규칙
 SBS <골 때리는 그녀들> 시즌1 방송화면
ⓒ SBS
<골때녀>는 방송 초반 '풋살장' 정식 규격보다 더 작은 구장에서 경기를 치렀다. 대부분 공을 처음 차는 출연자들을 배려한 것이다. 좁은 공간에서 경기를 하니 몸싸움도 치열해지고, 슈팅도 다수 나왔다. 출연자가 풋살 초보들이었지만 보는 재미가 있었던 이유다. 또 갈수록 출연진의 실력이 높아지자, 규격을 점차 늘려나갔다. 규정도 방송을 위해 임의적으로 바꿨다.

반면 <마녀들>은 성인 야구 규격을 그대로 썼다. 축구와 풋살이 엄연히 다른 종목이지만, 야구는 그렇지 않다고 반문할 수 있다. 그러나 야구도 어린 학생들을 위한 '리틀야구'와 '주니어 야구' 규격이 따로 있다. <마녀들>의 주요 출연진이 모두 공을 처음 잡는 연예인인 만큼 프로야구 선수들과 같은 규격에서 공을 던지게 하는 것보단 '리틀~주니어' 규격 또는 이보다 더 좁은 거리의 구장을 세트장으로 만들어 촬영했다면 한층 재밌는 장면이 다수 등장하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이는 '여성'이라서 작은 규격에서 경기를 해야 한다는 말은 아니다. 출연자의 실력에 따른 문제다. '천하무적 야구단'은 연예인이 출연자였지만, 남자 사회인 야구를 해왔던 연예인들이 나와 이미 야구에 대한 기본 지식 및 실력이 있는 상태였다. '최강야구'는 말할 필요도 없이, 전직 프로야구 선수들로 구성됐기 때문에 성인 규격에서 경기를 해도 박진감을 잃지 않았다.

②'대등한' 경기력과 '서사 있는' 출연진
  tvN 예능 <달려라 불꽃소녀> 방송화면
ⓒ tvN
최근 종영한 <달려라 불꽃소녀>는 여러 면에서 인상적이었다. 유소녀를 전면에 등장시켜 대회 우승을 향해 달려가는 '성장' 여정을 그렸는데, 축구 유소년들에 전혀 밀리지 않는 경기력과 투지로 보는 이의 손에 땀을 쥐게 했다.

또한 '서사가 있는' 출연진이 등장했다. 단순 축구 유소녀가 아니라 현 국가대표 골키퍼 조현우의 딸(조하린), 전 축구 국가대표 정조국의 딸(정윤하), 전 축구 국가대표 이호의 딸(이지음)을 비롯해 출연진 모두 국가대표 스포츠 DNA를 갖고 있는 집안의 아이들이었다. 어릴 때부터 자연스럽게 축구를 접한 이들은 남학생들을 상대로 겁없이 그라운드를 누비며 대등한 경기력을 선보였고, 쾌감을 선사했다.

<골때녀>의 붐으로 인해 제작된 JTBC 예능 <마녀체력 농구부>가 실패한 원인도 여기에 있다. 여성 농구부라는 소재로 참신함을 불러왔지만, 그게 전부였다. 농구와 무관한 연예인 출연진은 기본적인 룰도 몰랐고, 슛조차 제대로 하지 못해 초등학교 여자 농구부를 상대로 제대로 된 경기를 펼치지 못했다. 대등한 경기력을 보여주지 못하며 쓸쓸한 시청률로 조기 종영했다.

2023년 11월 말, 한 매체에서 '여자야구 예능' 론칭 소식을 단독 보도했다. 굵직한 출연진 이름도 함께 보도됐다. 곧 프로그램이 나올 것만 같았다. 그러나 해당 예능은 현재까지 방영되지 못했다.

오보였을까. 실제로 준비 과정에 있었던 것은 사실이다. 필자는 당시 출연진으로 거론되던 몇몇 선수 및 관계자와 긴밀하게 소통하며 예능 준비 과정을 지켜봤다. 출연진들은 단체 유니폼도 맞췄고, 한국여자야구연맹과 긴밀히 소통하며 프로그램 방향성도 확고하게 설정해 놓은 상태였다. 그러나 여러 이유로 제작이 끝내 무산되며 방영되지 못했다.

여자야구 예능은 언제라도 등장할 수 있는 소재다. 야구붐이 몰아치는 오늘날 여자야구 예능만큼 메리트 있는 포맷은 없다.

여자야구 예능을 위한 제언

여자야구 예능 제작에 관심있는 제작자가 있다면 감히 제언을 해보고자 한다. 첫째, 규격을 주니어 규격 이하로 줄여라. 리틀 규격이면 더 좋다. 물론, 야구 경험이 전무한 이들이 출연진으로 나온다는 전제다.

실제로 한국여자야구연맹은 지난 2023년 11월 말 '제 1회 프로야구선수협회장기 마구마구 전국여자야구대회'를 기존 성인 구장이 아닌 주니어 야구 구장에서 치렀다.

해당 경기에 출전했던 선수들은 입을 모아 "경기 진행 속도가 빨라져 더 재밌었다. 베이스간 거리가 짧아져 아슬아슬하게 아웃 되거나 세이프 돼 경기 박진감도 높았다"며 호평했다.

이에 따라 한국여자야구연맹은 올해 이사회에서 여자야구 전국대회를 주니어 규격으로 치르는 안건을 상정하기도 했다. 비록 무산됐지만, 주니어 규격에서의 경기가 여자야구 활성화에 도움이 될 것이라는 판단 때문이었다.
 천안주니어여자야구단 선수들 단체 사진
ⓒ 황혜정
둘째, 서사가 있는 출연진을 섭외해 비슷한 실력의 상대와 경쟁하는 구도를 만들어라. 출연 시키기 좋은 팀이 하나 있다. 바로 대한민국 유일의 전국 유소녀 야구팀인 '천안주니어여자야구팀'이다. 초보 야구선수도 있지만, 현재 여자야구 국가대표로 뛰고 있는 고등학생 선수도 있다. 이들이 초~중학교 남학생으로 대다수 구성된 리틀야구단을 하나씩 격파하는 모습을 그려낸다면 감동 스토리가 될 것이다.

'천안주니어'가 실력이 아직 많이 부족하다면, 사회인 여자야구팀 중 약팀들을 상대로 자신보다 나이가 한참 많은 언니들을 이겨내는 과정을 보여주면 된다. 보여줄 수 있는 그림은 많다고 본다.

스포츠의 핵심은 '속도'와 '정확도' 그리고 '서사'다. 더 이상 '열심히 하는 모습'만으로 감동을 짜내는 시대는 지났다. 감동도 재미가 있고 흥미진진해야 마음이 동한다. 남자 프로처럼 빠른 속도를 낼 수 없다면, 규격을 줄이면 된다. '속도'와 '정확도'를 한번에 잡을 수 있다.

'서사'를 그려내기 위해서는 주축이 되는 팀의 구성부터 신경써야 한다. 단순히 유명한 연예인이 나온다고 인기를 끌지 못한다. 또 출연진의 실력을 객관적으로 파악해 이들과 비슷한 실력을 가진 팀을 상대팀으로 섭외해 경쟁이 가능한 구도를 만들어야 한다.

<골때녀>의 성공으로 사회인 여성 풋살팀이 기하급수적으로 늘었다. 필자는 그 누구보다 '여자야구 예능'이 다시 등장해 대성공을 거두길 바라는 사람이다. 가시적인 방송의 파급력만큼 큰 영향은 없다.

덧붙이는 글 | 필자는 전 스포츠서울 야구팀 기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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