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때녀'는 대박 났는데, 여자야구 예능은 왜 실패했을까
[황혜정 기자]
|
▲ MBC <마녀들> 방송화면 갈무리 |
ⓒ MBC |
'여자야구'를 검색하다 보면, 가끔 위와 같은 글이 보인다. 스포츠 예능이 대세가 된데다 한국에서 가장 인기 많은 프로 스포츠가 야구인 만큼 '여자야구'를 소재로 한 예능도 나왔으면 하는 바람인 것이다.
여자야구 '예능'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여성 스포츠 예능의 대표작이 된 SBS <골때리는 그녀들>(아래 <골때녀>)보다 1년 전인 2020년 12월, MBC는 <마녀들>이라는 여자야구 예능을 제작했다. 10부작으로 방영된 시즌 1에 이어 2021년 6월 시즌 2가 제작됐지만, 3부작에 그쳤다. 최고 시청률은 1.6%로 <골때녀>의 최고 시청률 13.9%(2021년 12월 22일 방송분)에 비하면 한참 모자라다.
야구가 예능 프로그램으로 성공하기 어려운 스포츠일까? 아니다. 이미 2009년 KBS <천하무적 야구단>이 1년 넘게 방영됐고, JTBC <최강야구>는 2022년 방송 직후부터 뜨거운 인기를 구가하며 현 시점 대한민국 최고 인기 예능 중 하나로 자리매김했다.
그러면 왜 똑같이 야구를 소재로 한 예능이었던 <마녀들>은 큰 반향을 불러일으키지 못하고 쓸쓸히 퇴장했을까. 필자는 <골때녀>와 최근 화제 속에 종영한 tvN 예능 <달려라 불꽃소녀>에서 그 이유를 찾았다.
|
▲ SBS <골 때리는 그녀들> 시즌1 방송화면 |
ⓒ SBS |
반면 <마녀들>은 성인 야구 규격을 그대로 썼다. 축구와 풋살이 엄연히 다른 종목이지만, 야구는 그렇지 않다고 반문할 수 있다. 그러나 야구도 어린 학생들을 위한 '리틀야구'와 '주니어 야구' 규격이 따로 있다. <마녀들>의 주요 출연진이 모두 공을 처음 잡는 연예인인 만큼 프로야구 선수들과 같은 규격에서 공을 던지게 하는 것보단 '리틀~주니어' 규격 또는 이보다 더 좁은 거리의 구장을 세트장으로 만들어 촬영했다면 한층 재밌는 장면이 다수 등장하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이는 '여성'이라서 작은 규격에서 경기를 해야 한다는 말은 아니다. 출연자의 실력에 따른 문제다. '천하무적 야구단'은 연예인이 출연자였지만, 남자 사회인 야구를 해왔던 연예인들이 나와 이미 야구에 대한 기본 지식 및 실력이 있는 상태였다. '최강야구'는 말할 필요도 없이, 전직 프로야구 선수들로 구성됐기 때문에 성인 규격에서 경기를 해도 박진감을 잃지 않았다.
|
▲ tvN 예능 <달려라 불꽃소녀> 방송화면 |
ⓒ tvN |
또한 '서사가 있는' 출연진이 등장했다. 단순 축구 유소녀가 아니라 현 국가대표 골키퍼 조현우의 딸(조하린), 전 축구 국가대표 정조국의 딸(정윤하), 전 축구 국가대표 이호의 딸(이지음)을 비롯해 출연진 모두 국가대표 스포츠 DNA를 갖고 있는 집안의 아이들이었다. 어릴 때부터 자연스럽게 축구를 접한 이들은 남학생들을 상대로 겁없이 그라운드를 누비며 대등한 경기력을 선보였고, 쾌감을 선사했다.
<골때녀>의 붐으로 인해 제작된 JTBC 예능 <마녀체력 농구부>가 실패한 원인도 여기에 있다. 여성 농구부라는 소재로 참신함을 불러왔지만, 그게 전부였다. 농구와 무관한 연예인 출연진은 기본적인 룰도 몰랐고, 슛조차 제대로 하지 못해 초등학교 여자 농구부를 상대로 제대로 된 경기를 펼치지 못했다. 대등한 경기력을 보여주지 못하며 쓸쓸한 시청률로 조기 종영했다.
2023년 11월 말, 한 매체에서 '여자야구 예능' 론칭 소식을 단독 보도했다. 굵직한 출연진 이름도 함께 보도됐다. 곧 프로그램이 나올 것만 같았다. 그러나 해당 예능은 현재까지 방영되지 못했다.
오보였을까. 실제로 준비 과정에 있었던 것은 사실이다. 필자는 당시 출연진으로 거론되던 몇몇 선수 및 관계자와 긴밀하게 소통하며 예능 준비 과정을 지켜봤다. 출연진들은 단체 유니폼도 맞췄고, 한국여자야구연맹과 긴밀히 소통하며 프로그램 방향성도 확고하게 설정해 놓은 상태였다. 그러나 여러 이유로 제작이 끝내 무산되며 방영되지 못했다.
여자야구 예능은 언제라도 등장할 수 있는 소재다. 야구붐이 몰아치는 오늘날 여자야구 예능만큼 메리트 있는 포맷은 없다.
여자야구 예능을 위한 제언
여자야구 예능 제작에 관심있는 제작자가 있다면 감히 제언을 해보고자 한다. 첫째, 규격을 주니어 규격 이하로 줄여라. 리틀 규격이면 더 좋다. 물론, 야구 경험이 전무한 이들이 출연진으로 나온다는 전제다.
실제로 한국여자야구연맹은 지난 2023년 11월 말 '제 1회 프로야구선수협회장기 마구마구 전국여자야구대회'를 기존 성인 구장이 아닌 주니어 야구 구장에서 치렀다.
해당 경기에 출전했던 선수들은 입을 모아 "경기 진행 속도가 빨라져 더 재밌었다. 베이스간 거리가 짧아져 아슬아슬하게 아웃 되거나 세이프 돼 경기 박진감도 높았다"며 호평했다.
|
▲ 천안주니어여자야구단 선수들 단체 사진 |
ⓒ 황혜정 |
'천안주니어'가 실력이 아직 많이 부족하다면, 사회인 여자야구팀 중 약팀들을 상대로 자신보다 나이가 한참 많은 언니들을 이겨내는 과정을 보여주면 된다. 보여줄 수 있는 그림은 많다고 본다.
스포츠의 핵심은 '속도'와 '정확도' 그리고 '서사'다. 더 이상 '열심히 하는 모습'만으로 감동을 짜내는 시대는 지났다. 감동도 재미가 있고 흥미진진해야 마음이 동한다. 남자 프로처럼 빠른 속도를 낼 수 없다면, 규격을 줄이면 된다. '속도'와 '정확도'를 한번에 잡을 수 있다.
'서사'를 그려내기 위해서는 주축이 되는 팀의 구성부터 신경써야 한다. 단순히 유명한 연예인이 나온다고 인기를 끌지 못한다. 또 출연진의 실력을 객관적으로 파악해 이들과 비슷한 실력을 가진 팀을 상대팀으로 섭외해 경쟁이 가능한 구도를 만들어야 한다.
<골때녀>의 성공으로 사회인 여성 풋살팀이 기하급수적으로 늘었다. 필자는 그 누구보다 '여자야구 예능'이 다시 등장해 대성공을 거두길 바라는 사람이다. 가시적인 방송의 파급력만큼 큰 영향은 없다.
덧붙이는 글 | 필자는 전 스포츠서울 야구팀 기자입니다.
Copyright © 오마이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바둑판위 뒤엉켜 겨루는 승부의 세계, 딱 하나 아쉬운 건...
- 광안대교 나오는 한국식 SF, 로봇이 된 남자의 고군분투
- 범죄가 신의 뜻이라는 목사...음모론 판치는 세상 향한 경고
- 또 이러네! 티빙 야구 중계 장애 발생...공개 사과 요구합니다
- 편의점 넘어 세계 무대로... '편스토랑' 이연복의 남다른 애정
- 동급생 죽인 13살 소년, 이게 다 인스타그램 때문이다
- 푸틴의 요리사로 그룹 회장까지... 승승장구 하던 남자의 추락
- '집단 폭행' 당한 팔레스타인 감독이 전하려던 말
- 조훈현-이창호의 사제 대결, 이병헌 연기에 반했다
- 여왕에 맞서는 '백설공주', 왜 이렇게 매력이 없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