뚫리면 3시간만에 천왕봉 간다…지리산 '화마 봉쇄작전' 돌입
경남 산청군 대형 산불이 8일째 이어진 가운데 전날(27일) 밤사이 지리산국립공원 내 화마(火魔)가 영향을 미친 범위가 두배로 늘어난 80㏊인 것으로 28일 산림 당국은 추정했다. 축구장(0.714㏊) 112개 면적이다.
불길은 지리산 최고봉인 천왕봉(1915m) 4.5㎞ 앞까지 접근했다. 산림 당국은 지상에 방화선(防火線)을 구축하고 외곽에서 물을 뿌리는 동시에 공중에서 물 폭탄을 퍼붓는 ‘산불 봉쇄 작전’을 펼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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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상·공중전으로 ‘火魔 고립’…“뚫리면 천왕봉까지 3시간”
28일 산림 당국에 따르면 산림청 등은 전날부터 경남 산청군 지리산 천왕봉에서 남쪽으로 4.5㎞ 지점에 폭 200m, 길이 2㎞의 방화선을 물을 뿌려 구축했다. 시천면 구곡산(961m) 기슭에서 타오른 불길이 지리산 천왕봉 쪽으로 북진하면서다. 이틀 전, 구곡산 불길은 이 산 정상 너머 지리산국립공원 경계를 넘었다. 산림청 관계자는 “여기(방화선)가 뚫리면, 경사가 심해 불길이 3시간 안에 천왕봉까지 갈 수 있다”고 했다.
전날부터 산림 당국은 방화선 아래(남쪽) 불길이 있는 지역의 좌측(시천면 관음사 방면) 우측(삼장면 덕산사 방면) 외곽을 따라 중심부인 산 쪽을 향해 계속 물을 뿌리고 있다. 담수용량 8t짜리 살수차 10대와 방제차 9대, 국립공원 산불진화차 2대, 산림청 고성능 산불진화차(벤츠 유니목) 4대를 동원해서다. 이처럼 외곽에 물을 계속 뿌려, 나무와 풀 등 불쏘시개를 적셔 추가 확산을 막겠다는 것이다.
동시에 공중에서는 미군 대형 헬기인 치누크(CH-47)를 포함한 헬기 36대가 방화선 부근을 중심으로 산불 지역에 물을 퍼붓고 있다. 또 산불 확산 지연제 14t을 방화선 바로 위쪽(천왕봉 방면)에 집중 투하 중이다. 헬기가 뜨지 못하는 야간에 산불이 북진하지 못하도록 막는 작업이다. 지상과 공중에서 동시에 불길을 고립, 진화하는 작전이다.
강풍에 ‘좀비 불씨’ 날릴까…산불특전사, 밤샘 악전고투
전날 오후 9시쯤 불이 난 지리산 쪽에는 순간풍속 17~20m 강풍이 불었다. 불길이 천왕봉 쪽으로 향할 우려가 컸다. 산림 당국이 ‘산불 특전사’로 불리는 산림청 소속 산불 진화 전문 인력인 공중진화대·산불재난특수진화대를 투입, 새벽까지 진화 작업을 벌였던 이유다.
산림청 관계자는 “천왕봉까지 얼마 남지 않았고, 강풍이 심해, 대원들을 투입하지 않았으면 불길이 확산할 수 있었다”며 “(지리산 자락의) 덕산사, 관음사까지 불이 내려온 상황이었다”고 설명했다. 이어 “전날 연무로 시야 확보가 안 돼 헬기가 5대만 떴다”며 “헬기에서 물을 뿌려도, 산죽(山竹·산에 있는 대나무) 뿌리 부분 등에 불씨가 남아 있어, 지상에서도 진화 작전을 펼쳐야 한다”고 했다.
지리산국립공원과 구곡산 기슭에는 낙엽 더미와 암석 아래, 산죽 뿌리에 숨은 불씨가 바람과 만나 계속 재발화, 산림 당국이 진화에 애를 먹고 있다. 불길을 잡아도 되살아나길 반복해 ‘좀비 불씨’라고 불릴 정도다. 이날 산림 당국이 진화 작업으로 진화율이 소폭 상승했다. 이날 오후 2시 기준 산청 산불 진화율은 92%로, 7시간 전(86%)보다 6%p 상승했다. 전체 화선(火線) 71㎞ 중 남은 불의 길이는 6㎞다. 남은 화선은 산청 지리산 자락에 집중돼 있다.
“제발 비가 왔으면”…기우제 앞당긴 지리산 주민들
비 소식이 없자 지리산 자락에 위치한 한 마을에선 당초보다 앞당겨 기우제를 올리기도 했다. 경남 함양군 마천면 백무동 도촌마을에서다. 화마 위협을 받는 천왕봉은 산청 시천면과 함양 마천면에 걸쳐 있다. 이곳 마을 주민은 이날 오전 11시쯤 마천면 천왕할매공원에서 돼지머리·과일·떡·밥 등으로 제사상을 차리고 ‘한신계곡 기우제’를 열었다.
함양군·군의회·소방·학교 관계자와 주민 등 약 100명이 이번 기우제에 참석해 ‘산불 재난 극복과 주민 안녕’을 빌었다. 옛날부터 백무동 주민들은 큰 일이 있을 때마다 간절한 마음으로 천왕할매신상에서 소원을 비는 전통 의식을 이어왔다고 한다. 박혜숙(68) 도촌마을회 이장은 “매년 4월 10~20일 사이 하던 행사였다. 그런데 지금 산청 산불로 위기 상황이어서 급히 앞당겼다”며 “얼릉 비가 내려 불이 꺼지길 바란다”고 했다.
기우제가 있기 전날 산청에 비가 내리긴 했다. 하지만 산불 현장에는 극히 적은 비만 내려서 불길을 잡기엔 한계가 있었다. 전날 밤과 이날 새벽 사이 산불 현장에 내린 비의 양은 0.4㎜다.
한편, 산청에서 하동군 옥종면으로 옮겨 붙은 산불은 거의 다 잡혔다. 산림 당국은 전날 밤부터 산림청과 소방당국 등 지상 진화 인력을 총동원, 사투를 벌인 끝에 큰 불을 껐다. 이곳은 민가와 과수원 시설 등이 있어 불길이 번질 경우 인명·시설피해가 클 것으로 우려된 곳이다. 산림 당국은 현재 잔불 감시 체제로 전환해 불씨가 다시 살아나지 않도록 정리하고 있다.
산청=안대훈 기자 an.daehu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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