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부턴, 안 괜찮아"…BNK 정상으로 이끈 박혜진의 한마디
(서울=연합뉴스) 최송아 기자 = "팀 분위기가 가라앉았길래 당시엔 '괜찮다'고 했는데, 선수들이 어려서인지 정말 괜찮은 줄 알더라고요. 그 순간엔 조금 힘들고 불편하더라도, 이기고 싶은 마음에 '이제부턴 안 괜찮다'고 말을 꺼냈죠."
여자프로농구 부산 BNK의 2024-2025시즌 주장을 맡은 베테랑 박혜진은 정규리그 1위를 달리다가 2위로 밀려난 그때를 또렷이 기억한다.
박혜진과 김소니아 등을 영입해 탄탄한 전력을 구축하고 선두를 달리던 BNK는 막바지 주전 선수들의 부상을 비롯한 악재 속에 아산 우리은행에 밀려 2위로 정규리그를 마쳤다.
여자프로농구의 '왕조'로 불리는 우리은행의 주축으로 활약하다가 이젠 BNK의 리더로 첫 시즌을 보내던 박혜진이 "처음으로 라커룸에서 펑펑 울었다"고 했을 정도로 고비가 된 시점이었다.
부산 '고향 선배'인 박정은 BNK 감독이 우승을 꿈꾸며 공을 들여 영입해 주장까지 맡긴 박혜진의 진가는 이때부터 발휘됐다.
27일 서울 종로구 연합뉴스 사옥에서 만난 박혜진은 "선수들에게 짧은 기간, 며칠만 아무 생각하지 말고 팀과 농구만 생각하자고, 쓸데없는 대화도 줄이고 집중하자고 했다"면서 "그런 말을 하면 마음이 불편하지만 어쩔 수 없었다"고 당시 상황을 전했다.
웃음을 거두고 조금은 '덜 친절한' 언니가 된 박혜진의 리더십은 BNK를 한층 농구에 몰입하게 만들었다.
플레이오프(PO)에서 용인 삼성생명의 끈질긴 추격을 3승 2패로 뿌리치고 챔프전에 오른 BNK는 우리은행을 3연승으로 제압하며 창단 첫 우승 샴페인을 터뜨렸다.
챔프전에서 '슛이 약한 선수'라는 평가를 보기 좋게 깨뜨리며 최우수선수(MVP)에 오른 BNK의 주전 포인트가드 안혜지는 박혜진이 분위기를 다잡을 때 "오히려 좋았다"고 했다.
"그런 분위기를 원했어도 제가 잡을 수는 없었는데, 혜진 언니가 해줘서 좋았다. 같은 말이라도 제가 하는 것과 언니가 하는 것이 무게감이 다르더라"는 것이다.
2019년 창단한 BNK는 젊은 기대주들이 있었지만, 고비에서 무너지는 게 더 익숙한 팀이었다. 그러나 올해엔 달랐다.
처음 챔프전에 오른 2022-2023시즌엔 우리은행에 3연패로 돌아섰지만, 2년이 흘러선 정반대의 결과를 냈다.
안혜지는 "혜진 언니가 온 뒤로 팀 전체적으로 농구에 대한 집중도가 높아졌다. 비디오 분석을 한다든가, 미팅할 때도 그렇다"면서 "웨이트 트레이닝장에 가면 곧장 돌아 나가고 싶을 정도로 분위기가 꽉 잡혀 있다. 처음엔 '헉'했지만, 집중할 수 있어서 좋다"고 귀띔했다.
이어 그는 "지난 시즌까진 '개인'의 느낌, 지더라도 혼자 졌다는 느낌을 많이 받았는데, '팀'이라는 느낌이 커졌다"면서 "이전엔 또래 선수들과 주로 있다 보니 실감하지 못했는데, 혜진 언니를 보며 '이런 게 고참, 주장, 선배구나'라고 느낀다"고 했다.
20일 챔피언결정 3차전 52-54에서 마지막 역전 결승 3점포를 터뜨리며 BNK의 우승 드라마를 완성한 박혜진은 여자프로농구 현역 선수 최다인 통산 9번째 우승을 달성했다.
그는 "우승은 하면 할수록 좋다. 팀을 옮기고 잘해야 한다는 부담감이 컸는데, 첫 시즌 우승이라는 결과를 이루다 보니 고생한 보상을 받은 것 같아서 또 다른 기쁨이 크게 느껴졌다"면서 "농구는 혼자 하는 게 아니라는 깨달음을 얻은 시즌"이라며 웃었다.
이어 "아직도 답장을 다 하지 못할 정도로 많은 축하 메시지를 받았다"면서 "건강이 좋지 않은 팬분이 우리 팀과 저의 경기를 보며 힘을 얻고 용기를 얻어 치료를 시작하신다고 한 것이 특히 기억에 남는다"고 밝혔다.
1990년생으로 선수로는 어느덧 황혼기에 접어들지만, 박혜진은 '마지막'을 정의하지는 않는다.
그는 "먼 훗날을 내다보지 않고, 매 시즌이 마지막이라는 생각으로 뛰어왔다. 이번 시즌도 오늘 당장 그만두더라도 후회와 미련을 남기지 않겠다는 마음으로 치렀다"면서 "앞으로도 제 스타일대로, 후회가 남지 않도록 매일 할 생각"이라고 강조했다.
"다치지 않는 것을 목표로 제 딴엔 신경을 많이 썼는데, 이번 시즌에도 부상이 있었다"면서 아쉬움도 드러낸 박혜진은 "다음 시즌에는 정말 부상 없이 하고 싶은데, 절에 가서 기도라도 해야 할까 싶다"며 건강을 바랐다.
songa@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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