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명 살린 ‘이재명 판례’, 검찰엔 패착 된 ‘변경 공소장’[판결돋보기]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공직선거법 위반 사건 항소심에서 1심과 달리 무죄를 선고받았다. 1심 재판부가 문제 삼았던 ‘골프 발언’과 ‘백현동 발언’이 모두 유죄에서 무죄로 뒤집혔다. 여기에는 5년 전 이 대표의 손을 들어줬던 이른바 ‘이재명 판례’와, 이번 항소심에서 한 차례 변경하고도 불명확하다는 평가를 받은 검찰의 공소장이 영향을 준 것으로 나타났다.
‘백현동 발언=의견 표명’ 근거 된 ‘이재명 판례’는 무엇?
서울고법 형사6-2부(재판장 최은정)가 지난 26일 항소심 선고에서 이 대표의 “백현동 부지 용도 변경은 국토교통부의 요구에 따라 어쩔 수 없이 했다”는 발언을 무죄로 판단한 것은 2020년 7월 이 대표의 다른 사건에 대한 대법원 전원합의체 판결에 따른 것이었다.
이 대표는 친형을 강제로 입원시키고 선거 과정 중에 거짓말한 혐의(선거법상 허위사실공표죄) 등으로 2018년 기소됐는데, 1심은 무죄를 받았지만 항소심에서는 당선 무효형인 벌금 300만원이 나왔다. 그리고 대법원은 전원합의체 선고를 통해 판결을 다시 뒤집었다. 대법원은 “자유로운 의사 표현과 활발한 토론이 보장되지 않고서는 민주주의가 존재할 수 없다”며 ‘표현의 자유’를 우선시했다. 그러면서 ‘토론회’에서 나온 발언은 토론 주제와 무관하게 일방적으로 허위 발언을 한 것이 아닌 한 처벌할 수 없다고 했다. 문제가 되는 표현이 허위사실을 말한 것인지, 단순히 의견을 밝힌 것인지 불분명할 때는 “원칙적으로 의견이나 추상적 판단을 표명한 것으로 파악해야 한다”고도 했다. 많은 답변이 즉흥적으로 나오는 토론회 특성을 고려하면 불리한 사정이 없는 한 그저 의견을 밝힌 것으로 봐야 한다는 것이다.
1심 인정 안 한 ‘이재명 판례’, 항소심은 왜 적용했나
이 대표 측은 1심부터 대법원의 ‘이재명 판례’를 무죄 근거로 강조했다. 그러나 1심 재판부는 이를 적용하지 않았다. 백현동 발언이 나온 ‘국정감사’와 ‘토론회’는 즉흥성 측면에서 같은 선상에 둘 수 없다고 봤기 때문이다. 국정감사에서 이 대표는 사전 질의를 받았고, 패널과 공문을 준비해오기도 했다.
항소심 재판부는 국정감사와 토론회의 유사성은 직접적으로 따지지 않았다. 다만 백현동 발언이 의원 질문에 대한 답변 도중에 나온 것이라고 밝혔다. “‘어쩔 수 없이’ (용도를) 변경한 것” 같은 표현은 특정 사실을 설명했다기보다 ‘타의에 의한 용도 변경이었다’는 의견을 압축적으로 말하다 나왔다는 게 재판부 설명이다. 이 같은 발언이 ‘허위사실’인지 ‘의견 표명’인지 불분명하다면 ‘이재명 판례’ 등을 참고해 “주관적 표현”으로 봐야 한다고 판단한 것이다.
‘골프’ 언급도 없는 ‘골프 발언’?
항소심 재판부는 재판과정에서 김문기 전 성남도시개발공사1처장과 관련해 검찰에 “이 대표의 허위발언이 무엇인지 특정해달라”며 공소사실을 재정리하라고 주문했다. 검찰은 ①성남시장 때 김 전 처장을 몰랐다 ②김 전 처장과 골프를 치지 않았다 ③경기지사가 된 후에야 김 전 처장을 알았다 등으로 분류해 공소장을 변경했다.
1심에서 유죄였던 ‘골프 발언’이 무죄로 바뀐 데에는 검찰의 부족한 공소장 정리도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 검찰은 2021년 12월27일 KBS 방송 <더 라이브>에 출연한 이 대표의 발언 중 일부가 ‘골프를 치지 않았다’는 거짓말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이 대표는 이 방송에서 ‘골프’라는 단어를 전혀 언급하지 않았다. ‘해외 출장’ ‘표창장’ 같은 말이 나오긴 하지만, 재판부는 이것이 “김 전 처장과 골프를 치지 않았다”는 의미로 해석될 만한 근거가 없다고 봤다.
공소사실 3개에 모두 들어간 ‘기억이 없어요’
하나의 발언이 세 가지 공소사실에 중복해서 나오기도 했다. “저는 실제로 기억이 없어요, 그 사람”이란 발언은 공소사실②에 적혔다. 그런데 공소사실③에도 이 대표가 다른 질문에 답하면서 “전화로만 통화해서 얼굴도 모르고. 그런데 저는 실제로 기억이 없어요, 그 사람”이라고 한 내용이 명시됐다. 똑같은 발언이 다른 공소사실에 모두 적힌 것이다. 재판부는 공소사실①로 기소한 “그 사람을 제가 시장 때 만났던 기억은 없는 거예요, 제 기억에”와도 내용상 같다고 지적했다.
재판부는 재판과정에서 공소사실①과 ③을 별개로 볼 수 있냐고 의문을 제기하기도 했다. 재판부는 판결문에서도 “동일한 발언을 두고 서로 다른 세 가지 의미의 거짓말을 한 것으로 해석할 수는 없다”고 판시했다. 그간 이 대표 측은 검찰 공소장을 두고 “특정 발언이 어떻게 거짓말인지 논증해야 하는데 논리적으로 비약하고 있다”고 주장해왔다. 검찰 스스로 공소사실 정리를 제대로 못해 무죄를 자초한 것 아니냐는 분석이 나오는 대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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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나연 기자 nyc@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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