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입양’ 피해자 김유리씨 “피해자들은 국가의 사과를 어제도, 오늘도 내일도 기다린다”
“피해자들은 국가의 사과를 어제도, 오늘도 기다렸고 내일도 기다리고 있어요.”
인터뷰를 하는 중에도 김유리씨(53)의 뺨에는 계속 눈물이 흘렀다. 김씨는 “아직도 옛 생각을 하면 치가 떨리고 눈물이 난다”고 말했다. 김씨는 1980년대 프랑스로 입양된 해외입양인으로 지난 25일 진실화해위에서 피해자로 인정받았다.
김씨는 지난 26일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진실화해위)의 ‘해외입양 과정 인권침해 사건’에 관한 진실규명 결과 발표 기자회견에서 눈물을 흘리며 무릎을 꿇고 “우리는 국가의 피해자들이다” “강화된 권고를 다시 만들어달라”고 호소했다. 경향신문은 이날 회견 직후 김씨를 서울 중구의 한 카페에서 다시 만났다.
김씨는 11살이던 1983년 부모님의 이혼 등으로 고아원에 맡겨졌고 이듬해 동생과 함께 프랑스로 건너갔다. 김씨는 프랑스 한 시골 마을에 사는 부부에게 입양됐는데 양부는 김씨를 성적으로 학대했다. 김씨는 “입양 전 적합한 양부모를 찾는 것도 하지 않았고, 입양 후에 사후 관리도 전혀 없었다”고 말했다. 그는 “당시 당한 폭력을 생각하면 치가 떨린다. 결혼과 출산도 지금까지 모두 포기했다”고 말하며 입술을 깨물었다.
김씨는 프랑스에서 친부모가 자신을 버렸다는 설움, 정체성의 혼란, 인종차별 등을 견디며 살아왔다. 김씨는 “당시 같이 입양된 친동생이 학교에서 따돌림당한 후 ‘난 한국 사람 안 할래, 프랑스 사람 할 거다’라고 말한 것이 아직도 기억이 난다”고 말했다. 그는 “대학생이 된 후에도 한국인이라는 이유로 아르바이트 일자리를 50개나 거절당해서 최저임금도 받지 않고 일해 생활비를 벌었다”며 “그런데도 나보고 ‘유학 다녀와서 좋겠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어 상처를 받았다”고 말했다.
김씨는 2022년부터 법무부·보건복지부 등에 정보 공개 청구를 해 자신의 입양 과정을 살펴봤는데 그 과정에서 발급된 모든 문서가 조작됐다고 주장했다. 김씨의 친부모는 입양 절차에 필요한 동의서를 작성한 적이 없고, 서울가정법원은 김씨가 고아원에 들어가기 전 날짜로 “고아로 발견됐다”는 서류를 발급했다는 것이다.
김씨는 2022년 진실화해위가 만들어졌다는 소식을 듣고 “피해를 인정받고 배상 문제도 해결될 것”이라고 기대하며 사건 조사를 신청했다. 김씨는 “한국이 드디어 어두운 역사를 밝혀내고, 피해자들에게 사과도 보상도 하는 날이 왔나 싶어 반가운 마음이었다”고 말했다.
김씨는 지난 25일 진실화해위가 해외입양 사건과 관련해 국가에 권고한 내용을 보고 크게 실망했다. 피해자들의 피해를 복구하라는 내용이 없었기 때문이다. 김씨는 “이 사건은 ‘국가가 책임을 방기했다’는 것을 넘어 국가가 허락해준 인신매매 범죄다”라고 말했다.
김씨의 법률대리인을 맡은 최정규 변호사(법무법인 원곡)는 “진실화해위 권고 내용에는 국가가 사과하라고만 했지, 피해자의 피해 복구를 하라고 직접적으로 권고한 내용이 없다”며 “결국 피해자들은 국가에게 배상을 받기위해 소송으로 내몰리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김씨는 “유엔에서는 국가로부터 폭력을 당한 자들은 소송 없이도 보상금을 받아야 한다고 정하고 있는데, 모든 피해자가 국가로부터 사과를 받기는커녕 소송을 해야 하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지난 25일 진실화해위 102차 위원회에서 1차 신청인의 절반은 “서류가 미비하다”는 이유로 피해자로 인정받지 못했다.
김씨는 입양된 지 38년만에 친부모를 찾았고, 서울에 터를 잡았지만 여전히 ‘이방인’으로 살고 있다. 김씨는 국내 국적을 취득할 수 있지만 해외동포 비자(F-5)로 국내 거주 중이다. “국가가 아동을 상대로 어떻게 이런 범죄를 저지를 수 있나요? 아동 매매를 해놓고 사과도 없는 한국의 국민으로 사는 것이 부끄러워서 주민등록을 아직 신청하지 않았습니다.”
https://www.khan.co.kr/article/202503261507001
배시은 기자 sieunb@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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