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달 표면 달릴 국산 무인 차량은 왜 태백 폐광에 들어갔을까?

이정호 기자 2025. 3. 31. 1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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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질자원연구원 등 개발한 장비 시연 장면 공개
차체에 장착한 대형 드릴 돌려 월면 토양 퍼내
초고온 가열해 물과 산소 등 추출할 계획
2020년대 후반 월면행…우주강국과 경쟁 예고
한국지질자원연구원 등 국내 과학계가 개발한 달 자원 채굴용 무인 차량. 땅을 파기 위한 드릴을 장착했다. 지질자원연구원 제공

지난 28일 서울에서 자동차로 3시간여를 달려 도착한 강원 태백시 소재 옛 함태광업의 폐갱도. 높이 약 3m에 이르는 터널 입구로 들어서자 나선형 계단이 나타났다. 계단을 타고 내부로 10여m 걸어 내려갔더니 울퉁불퉁한 바닥과 벽면, 녹슨 철제 레일, 그리고 낡은 열차가 눈에 들어왔다.

이곳은 한국전쟁 직후인 1954년부터 무려 1800만t의 석탄이 생산된 대형 광산이다. 1980년대까지 인구가 10만명대에 이르던 태백시를 떠받친 중심지였지만, 지금은 일하는 광부가 한명도 없다. 석탄이 에너지 소비의 핵심에서 밀리면서 1993년 광산이 문을 닫았고, 2006년부터는 관광객들을 위한 체험관으로 운영되고 있다.

한국 산업화 시대의 기억이 켜켜이 쌓인 이곳이 최근 또다시 북적이기 시작했다. 올해 국내 연구기관, 대학, 기업 등이 개발한 달 탐사 장비의 성능을 확인하는 종합 시연 시설이 차려졌기 때문이다. 폐갱도에 달 탐사 장비 시연장이 들어선 것은 세계 최초로, 이곳에서 실시되는 시연 장면이 공개된 것도 이날이 처음이다.

폐쇄된 갱도가 달 탐사 장비의 성능을 확인하는 장소로 변신한 데에는 이유가 있다. 갱도 안은 지형이 거칠다. 지상보다 방사선량은 적다. 땅 밑으로 일정 깊이 이상 들어가면 온도도 거의 변하지 않는다. 달과 유사한 환경을 조성하기에 알맞다.

이번 시연에서 가장 눈길을 끈 장비는 한국지질자원연구원을 중심으로 국내 과학계가 개발한 ‘자원 채굴용 무인차량’이었다. 길이 1.5m, 폭 0.9m, 높이 0.7m로 덩치가 리어카만 한 이 무인차량의 가장 큰 특징은 땅을 파기 위한 드릴이 장착됐다는 점이다. 고개를 숙여 차량 밑바닥을 살피자 굵기 약 5㎝, 길이 약 1m짜리 금속 드릴이 차량 중심부에 수직으로 꽂혀 있었다.

자원 채굴용 무인 탐사차량 아래에 장착된 드릴이 고속 회전하고 있다. 월면을 뚫어 지하에 묻힌 자원을 캐낼 때 사용한다. 지질자원연구원 제공
자원 채굴용 무인차량 아래에 장착된 드릴. 높이가 약 1m에 이른다. 작동 버튼을 누르면 고속 회전하며 땅을 판다. 지질자원연구원 제공

드릴은 시연 관계자가 원격 장치의 버튼을 누르자 날카로운 모터 소음을 내며 고속 회전했다. 드릴로 파낸 토양은 차체에 딸린 작은 삽으로 최대 1㎏까지 차량에 적재할 수 있다. 달에서 무인차량에 장착된 드릴을 돌려 채굴을 하는 일은 최신 탐사 기법이다. 2020년대 들어 미국과 중국이 시행하고 있다.

자원 채굴용 무인차량이 드릴을 돌릴 장소는 ‘자원 탐사 센서 탑재 무인차량’이 안내해 준다. 이날 시연에 등장한 센서 탑재 무인차량 덩치는 채굴용 무인차량과 비슷했는데, 드릴 대신 ‘레이저 유도 파쇄 분광기’라는 감지 장치를 달고 있었다. 이 장치는 50종 이상의 원소를 월면에서 실시간으로 찾아낸다.

한국지질자원연구원 등 국내 과학계가 개발한 ‘자원 탐사 센서 탑재 무인차량’. 달 표면에서 원소 50종을 찾아낼 수 있다. 지질자원연구원 제공

이날 시연 관계자는 분광기를 켜기 전 주변에 “무인차량 앞에 계신 분들은 준비된 보안경을 착용하십시오”라고 외쳤다. 눈에 레이저가 들어가지 않도록 선글라스를 쓰도록 주의를 준 것이다. 분광기가 작동되자 ‘탁탁탁’하는 소음와 함께 무인차량 1m 앞 지면에 가스레인지 점화장치에서 볼 법한 불꽃이 연속해 발생했다.

지질자원연구원은 미국 항공우주국(NASA), 외국 기업과 협력해 2020년대 후반 이 차량들을 달에 보낼 예정이다. 상업 운영 목표 시점은 2030년대다.

‘달 표토층 자원 추출기’ 모습. 토양을 고온으로 가열해 물과 산소 등을 뽑아낸다. 이정호 기자

달에서 토양을 채굴하려는 데에는 이유가 있다. 물과 산소가 함유돼 있어서다. 월면 상주기지를 운영하기 위한 필수재다. 이 때문에 이날 시연에서 함께 선보인 ‘달 표토층 자원 추출기’가 중요한 역할을 한다. 자원 추출기는 높이 약 2m 몸체에 지붕이 올라가 있는 형태였다. 태양 전지판이 날개처럼 양옆에 붙어 있고, 가운데에는 무인차량이 채굴한 달 토양을 받아 1000도 넘게 가열하는 탱크가 달려 있었다. 달 토양을 고온으로 구우면 물과 산소가 빠져나온다.

국내에서 달 자원 채취를 위한 기술 개발을 주도하는 김경자 지질자원연구원 우주자원개발센터장은 “달 토양 가열은 ‘헬륨3’ 존재를 확인하기 위해서도 필요하다”고 말했다. 헬륨3는 핵융합 발전의 연료로, 달에 100만t 묻혀 있다. 인류가 1만년 동안 쓸 에너지를 품고 있다. 세계 각국은 달 개발의 최종 목적으로 헬륨3 채굴과 지구 운송을 상정하고 있는데, 이 경쟁에 한국도 뛰어들겠다는 뜻이다.

이평구 지질자원연구원장은 “과거 핵심 에너지원이던 석탄을 생산하던 탄광에서 미래 에너지원이 될 핵융합 기술을 준비한다는 데 의의가 있다”고 했다. 지질자원연구원과 태백시는 실험과 산업 시설을 함께 갖춘 우주자원 실증단지를 올해부터 2029년까지 조성할 예정이다.

이정호 기자 run@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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