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란의 밤을 몰아낼 아침을 예비하는 것은
2024년 12월 3일 윤석열의 내란 이후 한국 사회는 헌정이 무너져 있습니다. 한국작가회의는 내란 이후 혼란스럽고 경악스러운 역사의 현장에서 경험한 사실들을 낱낱이 기록하고 '광장의 작가들' 연재를 통해 민주 시민들과 공유하고자 합니다. <기자말>
[이병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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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금은 대체 어떤 세계인가> 표지 |
ⓒ 창비 |
그녀는 그 질문이 우리가 어떤 조건하에서는, 예를 들어 가난, 투옥, 빈곤, 동성애혐오적·트랜스혐오적·인종차별적 폭력과 여성에 대한 폭력을 포함하는 사회적·성적 폭력이 존재하는 조건하에서는, 삶이 살 만하지 않다는 것을 정확히 알고 있기 때문에 비롯된 것이라 말한다.
살 만한 삶에 대해 요구하는 것은 주어진 생명이 살아갈 힘을 갖도록, 지속적으로 살아나갈 힘이 있도록, 그리고 그 생명을 바랄 수 있는 힘을 가지도록 요구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이러한 정당한 권리에 대한 요구는 지난해 12월 3일 이후 지속되고 있는 내란의 밤으로 인해 그 양태를 달리하게 되었다.
그리하여 우리는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이 세계에서 우리의 삶에 의미를 가져다주는 것이 무엇인지 다시금 묻지 않을 수 없게 되었으며 그 연장선에서 살 만한 삶에 대해 요구하기 위해 광장에 나와 목소리를 높이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
권력자의 부당한 비상계엄 선포로 시작된 이 내란 사태는 단지 윤석열 개인의 문제로 치부할 수 없을 정도로 한국 사회의 고질적인 병폐를 드러내는 징후라 할 수 있다. 이는 제왕적 대통령제를 비롯하여 세력화된 극우 집단의 폭력성과 검찰 권력의 실체를 낱낱이 폭로하는 한편 대화와 타협이 부재한 권력층의 정치적 대립과 부조리한 사회 구조의 불합리를 만천하에 가시화하는 계기가 되었다.
놀랍게도 2016년과 2017년에 걸친 겨울, 촛불혁명이 보여준 불의에 대한 저항이 그 어떤 성과를 내지 못했다는 것을 방증한 이번 내란 사태로 인해 우리는 우리의 삶이 여전히 위태로운 지반 위에 놓여 있음을 깨달을 수 있었다.
광장의 민주주의에 귀를 기울이는 일
그런 점에서 내란 수괴 윤석열의 탄핵 및 구속이나 친위 쿠데타 동조자들의 반헌법적 행위에 대한 수사와 처벌에만 주목하여 사태를 해결하고자 한다면 이러한 상황을 야기한 문제를 발본색원하지 못한 미봉책에 그칠 위험이 다분한 것도 사실이다.
반헌법적 행위가 억제되지 못한 근본적 이유에 대해 지속적으로 성찰하여 제도적 안전장치의 마련하고 나아가 그것이 그 어떠한 권력으로부터의 위력 행사에도 영향받지 않고 제대로 기능할 수 있도록 방침을 올바로 세우는 것이 필요하다.
이를 위해서라도 광장의 민주주의를 이끈 소수자들의 목소리에 귀 기울일 필요가 있다. 그동안 사회적 약자로 여겨져 온 여성, 성소수자, 장애인, 농민 등이 광장에서 외치는 숱한 차별과 억압에의 경험은 한국 사회가 그동안 간과해 왔던 부조리한 사회 구조를 근본부터 다시 설정할 수 있도록 하는 계기가 될 것이 분명하다.
과거 촛불혁명의 한복판에서도 외쳤으나 제도권 정치 안으로 소급되지 못했던 그들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다시 한번 이를 현실 정치의 힘으로 전환할 때 비로소 살 만한 삶을 위한 올바른 공동체의 양태가 구현될 것이기 때문이다.
'무엇이 삶을 살 만하도록 만드는가'라는 물음에 대해 버틀러는 우리가 살고 있는 삶이 결코 배타적으로 우리만의 것이 아니며, 단지 나만을 위한 것이 아니라 여러 삶들, 즉 보다 일반적인 삶의 과정들을 위해 살 만한 삶을 만드는 조건들이 보장되어야 한다는 사실을 절절하게 보여준다고 하였다.
'나'의 삶은 온전히 나 자신의 소유가 아니라는 점을 유의해야 한다. 그것은 단수이자 대체할 수 없는 특정한 누군가의 삶이기도 하지만 인간과 동물을 비롯한 다른 존재의 삶을 비롯한 다양한 생명 체계 및 네트워크를 공유하고 있다.
다시 말해 '나'는 타자들과의 동행 없이는 존재할 수 없다는 것을 이해해야 한다. 서로의 목소리를 나누고 이를 받아들이는 한편 타자의 삶이 배제되지 않는 공동체를 형성할 때 우리는 오늘날의 비극적 상황이 반복하는 일을 막을 수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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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4년 12월 3일 윤석열 대통령이 긴급성명을 통해 비상계엄을 선포한 가운데 4일 새벽 계엄군이 헬기를 타고 국회에 도착하고 있다. |
ⓒ 연합뉴스 |
갈등과 대립으로 분열된 광장이 헌법재판소의 탄핵 인용/기각 판결 이후에 봉합되리라는 기대조차 품을 수 없을 만큼 극심한 양상을 띠고 있다는 점도 사태 이후 지속되는 공포로 다가온다. 그러나 이것도 하나의 삶임을, 계산 불가능한 삶에 내재된 가치의 또 다른 가능성임을 생각해 본다.
한 번 더 버틀러를 인용하여 말하자면, 이러한 시기 가장 중요한 것은 감응과 행동 간의 관계를 활성화하는 행동일 것이다. 저 불합리한 권력의 횡포와 부조리한 사회 구조의 폭압을 향한 증오와 분노를 공동체의 가능성과 혁명의 약속으로 바꾸어낼 수 있는 우리의 행동이 지속되어야 한다. 혁명의 가능성을 지속시키는 것은 오직 각자의 작은 노력의 행동들이 모여 누적된 힘일 테니 말이다.
여전히 현재진행형인 내란의 밤을 몰아낼 아침을 예비하는 것은 응원봉에 깃든 빛의 재현과 차별적 현실을 경험한 이들의 불안으로부터 비롯된다고 믿는다. 살 만한 삶을 만들기 위한 조건은 저 빛의 풍요 속으로 불안한 존재의 삶을 가시화하는 데에 있는지도 모르겠다.
우리의 삶에 의미를 가져다주는 것은 부당한 권력이나 신자유주의적 자본주의 체제에 순응하며 그에 복무하는 데에서 구할 수 있는 것이 아닐 것이다. 너와 나의 내면에 자리한 존재의 의미와 가치를 사유하고 이를 구체적 삶의 현장에서 실현함으로써 우리라는 공동체를 공론장에 형성하고자 하는 행동의 실천, 그 연대의 행위로부터 삶의 조건은 마련될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덧붙이는 글 | 이병국 : 2013년 <동아일보> 신춘문예로 시, 2017년 중앙신인문학상으로 평론 등단. 시집 <이곳의 안녕> <내일은 어디쯤인가요>, 평론집 <포기하지 않는 마음> 등이 있음. 2019년 내일의한국작가상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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