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家家호호] 제주 ‘DIY 우드 하우스’ | 전원생활
이 기사는 전원의 꿈 일구는 생활정보지 월간 ‘전원생활’ 3월호 기사입니다.
아무것도 모르던 20대 초반, 어렸던 두 사람이 패기 하나만 갖고 제주에 내려온 이후 10년이 흘렀다. 그사이 새로운 일을 배우고, 결혼도 했다.그리고 1년 전 드디어 직접 지은 내 집을 갖게 됐다. 한여름 내내 부부가 구슬땀을 쏟으며 해낸, 셀프 집 짓기 스토리를 소개한다.
젊은 부부가 전원주택이라니 흔하지 않은 결정이었다. 이 선택의 배경에는 10년째 제주생활을 함께하고 있는 반려견 호랑과 말코가 있다. 이들 모두 육지에서부터 함께 지낸 오랜 가족. 누구보다 소중한 반려견과 함께할 집을 찾다 보니 아파트나 오피스텔에 머물기 힘들어 계속 단독주택에서 생활해왔다. 그렇게 두 사람의 첫 집도 자연스레 단독주택이 됐다.
지금의 집터를 찾은 건 2023년 2월. 제주라면 어디든 좋았지만, 가능한 예산 안에서 적당한 크기의 대지를 찾던 중 부동산에서 이곳 구좌읍의 작은 대지를 소개받았다. 주변의 이웃집은 고작 1채. 나머지는 갈대와 고사리가 풍성하게 자라는 들판이었다. 정씨는 이곳을 보자마자 구매를 결정할 만큼 대지와 주변의 모든 것이 마음에 들었다고 한다.
보통 땅을 구매하고 2~3년 후에 집을 짓는 경우가 많지만, 당시 9평짜리 집에서 힘들게 지내던 부부는 망설일 시간이 없었다. 땅을 구매한 이후부터 설계, 전기나 수도 공사 등을 부지런히 준비한 끝에 같은 해 8월부터 본격적인 집 짓기에 돌입했다.
물론 오롯이 혼자 한 것은 아니다. 함께 일하는 친한 지인과 주변 사람들까지 이들의 기특한 선택에 기꺼이 손을 보탰다. 공사 기간은 8월부터 11월까지 약 3개월. 작업 대부분이 정씨를 포함해 2~3명만으로 진행된 것을 생각하면 굉장히 빠른 속도다. 다행히 공사가 연기될 만한 어려움도 거의 겪지 않았다. 그 결과 12월 사용승인을 받고, 이사를 시작해 새 집에서 따뜻하게 겨울을 보낼 수 있었다.
이런 노력은 영상으로도 남아 있다. 공사를 시작하면서 김씨가 남편의 노력을 기록으로 남기고 싶어 ‘인생은 DIY’라는 이름으로 유튜브 채널을 개설해 셀프 주택 건설기를 공개했기 때문이다. 편 수가 많지는 않지만, 터 잡기부터 가구 제작, 내부 마감까지 셀프 주택 건축의 모든 과정이 생생하게 담겼다. 이 영상 시리즈는 첫 번째 편의 조회 수가 16만 회(2025년 2월 17일 기준)를 기록할 만큼 많은 관심을 받았다.
“남편이 하는 일을 가까이에서 본 게 이번이 처음이었어요. 그래서 전날은 아무것도 없었는데, 다음 날 오면 골조가 세워져 있고, 가구가 만들어져 있는 걸 보면서 매번 놀랐어요. 이렇게 열심히 일하는 남편 모습이 새삼 다르게 보였고 더 잘 이해하게 됐어요.”
그렇다고 해도 집을 쉽게 지은 것은 아니다. 직업이 목수지만, 집 짓는 모든 과정을 꿰고 있는 것은 아니니 자신이 모르는 분야는 유튜브를 보며 공부도 하고 시행착오도 겪었다. 그 과정에서 많은 스트레스도 받았다. 정씨는 “그때를 생각하면 어떻게 집을 지었는지 모르겠어요. 원래 건축 현장에서는 분야에 따라 담당이 나뉘어 있지만 여기서는 제가 혼자서 다 해야 하니까 너무 신경 쓸 것도 많고 힘들더라고요”라고 말했다.
그럼 셀프 건축으로 아낀 비용은 얼마나 될까. 정씨에 따르면 다른 제주 주택과 비교하면 건축비를 30% 정도 줄였을 것으로 추산한다. 거의 자재비만 소요한 셈이라고. 공사 후반에는 예산이 부족해 포기한 것도 많았지만, 업체에 의뢰해 지은 것과 비교했을 때는 훨씬 많은 금액을 절약할 수 있었다.
더욱이 작업을 대부분 직접 하다 보니 하자가 거의 없는 집이 된 것이 큰 이득이다. 내가 살 집을 짓는 만큼 꼼꼼하게 살펴보며 모든 과정을 관리한 덕분에 새집에서 흔히 겪는 하자 문제없이 1년을 살았다.
“도배를 마치고 집이 어느 정도 완성됐을 때 ‘드디어 다했구나’라는 생각이 들었고, 오히려 12월경에 사용승인을 받아 이사를 마치고 침대에 누웠을 때는 얼떨떨한 기분이더라고요. ‘정말 이제 아무것도 안 해도 된다고?’라는 묘한 기분이었어요.”
작은 마감 공사 하나까지 부부의 손이 닿지 않는 곳이 없으니 이런 기분을 느끼는 것이 어찌 보면 당연하다.
“직전에 어렵게 살았던 9평짜리 작은 집을 기억하기 위해서입니다. 보일러도 없는 옹색한 집에 살면서 고생을 많이 했거든요. 다만, 복층이 죽은 공간이 되지 않게 TV와 소파를 두어서 거실처럼 사용할 수 있게 가구를 배치했습니다.”
이곳 실내 인테리어의 핵심 소재는 라왕 합판이다. 무늬가 고급스럽고 견고한 데다 가격이 저렴해 최근 인기 있는 인테리어 자재다. 각종 가구, 문, 문틀, 계단까지 모두 라왕 합판으로 제작해 내부 통일감과 포근한 분위기, 자재비 절감이라는 세 마리 토끼를 잡았다. 또한 거실 벽과 천장 마감에도 이를 적절히 사용해 층고가 높은 편임에도 아늑한 느낌이 감돈다.
곳곳에 센스 있는 가구 배치도 눈여겨볼 만하다. 거실 한 편에는 호랑과 말코의 철제 케이지를, 윗면에는 두툼한 나무 선반을 배치했다. 덕분에 케이지의 형태가 크게 도드라지지 않고, 얼마 전 유행한 ‘미드센추리모던(1950년대 미국과 유럽에서 인기를 끌었던 디자인 스타일)’ 같은 분위기를 자아낸다.
세탁기와 건조기는 주방 옆에 전용 수납장을 만들어 그 안에 배치했다. 필요할 때만 문을 여닫아 사용하니 평소에는 깔끔하게 숨겨둘 수 있다. 세탁기 옆, 계단 밑의 좁은 공간에는 피트니스센터와 같은 세탁물 수거함을 만들어 둔 것도 알찬 공간 활용법이다. 애매하게 수납공간으로 남겨두기보다 기능을 부여해 계속 활용될 수 있게 한 셈이다.
정씨는 이 집을 비롯해 제주에서 10여 년간 주택 건축과 인테리어 공사를 꾸준히 수행해 관련 업계에서는 전문가로 평가받는다. 그런 그에게 제주에서 집 잘 짓는 법을 물었다. 그러자 정씨는 “일단 땅을 사기 전 각종 인프라 설비를 꼭 확인해야 합니다. 제주는 육지와 달라서 전기, 상하수도 설비가 없는 땅이 있거든요. 이런 땅을 매입한 경우 집을 지을 때 막대한 금액의 추가 공사비가 들 수 있어 꼭 미리 따져보고 구매해야 합니다”라고 설명했다.
유튜브에 영상이 공개된 이후로 이같은 질문을 하는 이들이 많아져 정씨는 최근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셀프 집 짓기’ 모임도 개설했다. 이곳에 가입한 이들은 정씨처럼 직접 집을 짓고 싶은 로망을 가진 사람이 많다고. 그래서 앞으로는 좀 더 많은 사람들에게 자신이 가진 노하우를 전하고 싶은 욕심도 생겼다.
이제 부부가 집에서 머문 지 갓 1년이 지났다. 적응하느라 정신없이 보냈던 한 해였다. 가끔은 이런 멋진 집에서 사는 게 실감이 안 날 때도 있었다. 그래서 올해부터는 좀 더 주변을 만끽하면서 보낼 생각이다.
“우리 집 옆이 알고 보니 큰 고사리밭이더라고요. 봄에 사람들이 차를 세우고 들어가서 뜯는 걸 몇 번이나 봤어요. 올해는 저희도 한번 뜯어보려고요.”
다가올 봄과 여름 그리고 가을과 겨울이 더욱 기대되는 이야기였다.
글 신시내 기자 | 사진 고승범(사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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