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 넘은 반항... 범죄자랑 결혼하는 10대 여성 청소년들
[김상목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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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올파의 딸들> 스틸 |
ⓒ 필름다빈 |
북아프리카의 작은 국가 튀니지. '올파'라는 중년 여성이 화면에 얼굴을 비친다. 그에겐 첫째 '고프란', 둘째 '라흐마', 셋째 '에야', 넷째 '타이시르', 네 명의 딸이 있었다. 올파는 홀로 딸을 키우며 억척같이 일했다. 하지만 지금 그의 곁에는 에야와 타이시르, 셋째와 넷째 딸만이 함께 하고 있다. 위의 둘은 결혼이라도 한 걸까? 독립해서 각자의 삶을 살아가고 있을까? 그 궁금증에 답하는 게 영화 <올파의 딸들>의 기본 줄거리가 된다.
감독이 등장해 올파와 그녀의 딸들과 대화를 나눈다. 그들은 지금부터 올파의 기구한 가족사를 배경으로 영화 제작에 들어가려 한다. 올파는 <타이타닉>에서 침몰 후 살아남은 주인공이 과거를 회상하며 관객에게 이야기를 들려주는 구성이냐며 자신이 '로즈' 역할이냐며 웃는다. 하지만 감독의 답변은 좀 다르다. 올파와 두 딸이 직접 출연해 그들만이 할 수 있는 내용을 재현한다는 것이다. 부재한 두 딸의 자리, 올파가 감당하기 힘든 부분은 배우가 소화할 계획이다. 예상과 다른 역할에 모녀들은 서로 쳐다보며 놀란다.
배우와 실제 인물들이 합을 맞추기 시작한다. 그들에게 일어난 사건을 회고하며 엄마와 딸들은 가족 역할을 담당할 배우들과 대화를 나누며 가까워진다. 배우의 연기를 보면서 올파는 이땐 이랬고 저땐 저랬다며 고증을 검수한다. 올파의 험난했던 삶이 시간순으로 부활한다. 감독과 배우들은 같은 여성으로서 공감과 위로를 전한다. 악역(?)을 떠맡은 남자 배우들은 배역 소화가 힘들다며 난항을 표하기도 한다.
언니 역할을 맡은 배우와 올파의 딸들은 금방 친해져 자매들만의 비밀을 공유하기 시작한다. 올파도 처음 듣는 내용이 차례로 공개된다. 엄마로서 당혹스럽고, 자신이 딸들에게 부지불식간에 던진 잔인한 폭언과 상처를 깨닫고 충격에 빠지기도 한다. 세상 누구보다 밀접하게 지내온 모녀 사이에도 생각은 다르고 기억도 제각각이다. 그런 가운데 자식들을 부양하고자 집을 비울 수밖에 없고, 본인이 겪었던 수난 탓에 정절을 딸에게 강요하던 올파의 패착이 부메랑으로 날아들기 시작한다.
첫째 고프란과 둘째 라흐마는 어느 날 차례로 가출해 사라진다. 두 딸은 리비아로 밀입국해 이슬람 극단주의자 조직에 가담한다. 올파는 딸들을 구출하고자 애쓰지만, 연락조차 할 길이 없다. 몇 년 후 그들의 소식이 전해졌을 때 테러와의 전쟁 와중에 그들이 체포됐다는 것, 조직의 우두머리와 결혼해 외손녀를 낳았다는 사실을 비로소 알게 된다. 하지만 엄중하게 감시되는 가운데 구금된 딸들을 만날 기약은 언제일지 알 수 없다. 어쩌다 올파와 딸들이 이런 기구한 사연의 주인공이 됐는지 영화는 증언과 재연을 오가며 관객에게 진실을 전하고 질문을 던진다.
이슬람 극단주의 테러단체에 제 발로 걸어간 청소년들
'다에쉬(IS)'의 창궐은 세상을 놀라게 했다. 21세기에 중세 신정국가 수립을 표방한 세력이 중동을 휩쓸며 실체 국가에 가까운 확장을 거듭했기 때문이다. 그들의 발길 닿는 곳마다 학살과 야만이 횡행함도 충격을 불러왔다.
경악할 일은 끝없이 이어졌다. 유럽 사회에서 겉돌던 북아프리카와 중동 이민자 2세와 3세 사이에서 자발적으로 가담하는 경우가 속속 출현한 것이다. 아무리 유럽에서 하층민에 머문다 해도 내전에 고통받는 중동 현지와는 비교할 수 없는 조건인데 왜 서구 사회에서 태어나 자란 청소년들이 겁도 없이 죽음과 폭력의 한복판으로 뛰어든 걸까?
더 놀라운 건 여성 인권 유린으로 악명이 자자한 다에쉬 조직에 젊은 여성들이 대거 결합한다는 소식이었다. 강제 결혼과 성폭력이 일상인 이슬람 극단주의자 조직에 왜 이들은 불나방처럼 끌리는 걸까? 의문은 점점 커져만 갔다.
부모들은 애간장을 태우며 자식이 무사히 돌아오기만 기다려야 했다. 극소수 구출된 이들은 자신의 경거망동을 후회하기도 했지만, 일부는 여전히 확신범으로 구금된 상태다. 서방 국가 국적을 가진 이들의 경우 본국에서 송환받기를 거부해 논란이 되기도 했다. 이런 '외로운 늑대'가 21세기 테러 조직의 주요 인력 수급 창구가 되는 현상은 심도 깊은 고찰과 연구의 대상이 돼 국내에도 적지 않은 관련 서적이 출간된 상태다.
<올파의 딸들> 또한 그런 연장선상에 서 있는 작업 중 하나로 분류될 테다. 그러나 이미 서구에선 상당한 숫자의 관련 창작 영상물이 등장한 상황에서 사실상 IS 패망 이후 뒤늦게 등장한 이 영화에는 조금 더 특별한 뭔가가 있게 마련이다. 그저 국제분쟁 심층 시사 뉴스와는 차별화한 세밀한 여성 생애사가 본 작품의 도전적인 형식 실험을 통해 관객의 뇌리를 파고든다. 이 영화가 도달한 세밀한 분석을 통해 비로소 세상을 떠들썩하게 했던 10대 청소년들, 특히 여성들의 극단주의 동조가 일정하게 설명될 수 있었다.
영화가 전달하는 내용은 처음엔 충격 그 자체다. 하지만 찬찬히 돌아보면 그들이 처해 있던 삶의 조건에서 언제든 독버섯처럼 피어오를 성질의 것이었다. 모든 결과에는 필연적인 이유가 있게 마련이었다. 미래를 기약할 수 있고 공동체가 건전하게 작동한다면 누가 위험천만한 극단주의자 조직에 가담할까? 그러나 현실이 막막하고 장래를 기약할 수 없다면, 내일이 없는 삶을 근근이 버텨야만 한다면 일탈의 유혹은 금방 깃든다. 올파와 그녀의 딸들이 직면한 튀니지에서의 삶은 그 전형적인 예시와 다름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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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올파의 딸들> 스틸 |
ⓒ 필름다빈 |
결혼생활은 행복과는 거리가 멀었다. 가부장의 권위를 내세우지 못한 남편은 반대급부인 양 가족 부양에 책임지지도 않았다. 허드렛일을 마다하지 않고 자식을 건사해야 했다. 그 와중에 한 번도 겪지 못했던 첫사랑에 빠져들지만, 운명의 상대는 그녀와 딸들에게 또 다른 상처를 남겼다. 올파는 독재와 혁명으로 뒤숭숭한 튀니지를 떠나 외국에서 청소부로 일해 가족을 부양하지만, 딸들과 자주 만나지 못한 데다 사춘기에 접어든 자녀들의 방황에 적시에 개입하지도 못한다. 가난이 죄다.
딸들은 엄마 속도 모르고 자주 충돌하기 시작한다. 10대 시절 통과의례처럼 거치게 마련이지만, 자신이 겪은 상처가 후유증으로 자리한 올파는 유연하게 대처하지 못하고 다른 형태의 억압으로 자식들을 대한다. 남자에 여러 번 위협을 당한 엄마는 딸들에게 엄숙한 품행을 강요하고, 민주화에 들뜬 딸들은 그런 올파와 간격이 벌어진다. 그러던 참에 극약 처방으로 일관하던 엄마의 통제를 향한 반항심은 돌이킬 수 없는 반환점을 지나치고 말았다.
과연 어디서부터 잘못된 걸까? 올파는 카메라 앞에서 지금껏 깨닫지 못했던 오류를 반성하며 회한에 빠진다. 자신의 엄마가 가부장제에 찌들어 본인에게 가했던 언행을 어느 틈에 고스란히 자신의 딸들에게 가해하고 있었다. 물론 의도한 바는 아니다.
'아랍의 봄'과 '재스민 혁명'의 이면, 변하지 않은 여성의 삶
2010년 연말 촉발한 튀니지 민주화 시위는 중동 전역으로 확산하며 '아랍의 봄'을 기대하게 했다. 그러나 벤 알리 장기독재를 끝장낸 튀니지엔 그동안 통제되던 이슬람 원리주의가 득세학 시작한다. 다행히 시리아나 이라크처럼 극단주의 세력의 준동에 이르진 않았지만, 종교 율법을 강요하며 세력을 확장하는 근본주의자의 활동이 횡행한다. 혁명 이후에도 민중의 삶은 그다지 개선되지 않았고, 오히려 사회가 불안해지자 그 피해는 고스란히 올파의 가족 같은 이들에게 전가된다.
1998-1999-2003-2005년, 차례로 태어난 올파의 딸들은 앞날을 예측하기 힘든 불안한 정국 & 독재자가 쫓겨난 후에도 개선되지 않은 빈곤에 내몰린다. 상대적으로 세속화된 튀니지 분위기에서 10대라면 한번 빠져들 법한 방황을 엄마는 엄하게 혼내기만 했다. 아직 10대인 딸들은 극단적 반항심리로 맞선다. 서구풍 고딕 패션과 염색한 머리를 꾸중 듣자, 정반대로 히잡을 뒤집어쓰고 미심쩍은 종교 집회에 참석해 이슬람 신비주의에 빠진다. 신을 들먹이지만, 사실은 그저 10대의 반항인 셈이다. 동생들도 언니를 따라 휩쓸리는 건 순식간이다.
세속주의를 표방하지만 부패하고 억압적인 독재정권에 맞선 저항이 종종 종교 근본주의로 경도되는 건 세계 어디에서나 쉽게 목격할 수 있는 지점이다. 이에 대한 해법은 억압과 통제가 아니라 자유로운 시민사회와 경제적 분배로 그런 독소가 깃들 틈을 없애는 것뿐이다. 하지만 중동의 극심한 빈부격차와 독재체제는 그런 해법을 구사하기 힘들게 만들었다.
올파조차 극단주의까진 아니라도 종교적 엄숙주의를 추종하던 적이 있었다. 서구적 여성해방이 아니라 신의 자식이란 중세로 회귀하는 셈이다. 그런 실책이 쌓여 올파와 딸들의 비극으로 귀결된 것이다. 혁명의 기대가 시든 자리에 변치 않은 구체제는 극단적 현실 도피로 여성을 떠민다. 영화는 그런 기구하지만, 전형적인 악순환의 고리를 다큐멘터리와 재연극을 종횡으로 결합해 풀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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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올파의 딸들> 포스터 |
ⓒ 필름다빈 |
올파의 딸들
Les filles d'Olfa
2024|튀니지/프랑스|다큐멘터리/드라마
2025.04.02. 개봉|107분|15세 관람가
감독 카우타르 벤 하니야
출연 올파 함루니, 에야 치카우이, 타이시르 치카우이,
헨드 사브리, 누르 카루이, 이흐락 마타르
수입/배급 필름다빈
2023 76회 칸영화제, 다큐멘터리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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