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원시민이 만든 작은 기적 ‘새벽빛장애인학교’

조영달 기자 2025. 3. 23. 15:59
자동요약 기사 제목과 주요 문장을 기반으로 자동요약한 결과입니다.
전체 맥락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본문 보기를 권장합니다.

"갑자기 노래가 생각나네요. 꽃밭에는 꽃들이 모여 살고요."

교단 앞에 선 신승우 새벽빛장애인학교장이 먼저 노래를 부르자 학생들이 "우리들은 새벽빛에 모여 살아요"라고 한목소리로 이어 불렀다.

이곳은 수원에 있는 학교 형태의 장애인 평생교육시설 '새벽빛장애인학교'.

수원시자원봉사센터와 수원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이 시민 모금 프로젝트를 위해 팔을 걷었다.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2007년 문 연 새벽빛장애인학교
학생 늘어 공간 부족 문제 직면
이전 계약도 지역 반대로 거절
시민 모금으로 새 공간 마련
새롭게 단장한 수원 새벽빛장애인학교에서 학생들이 새 학기 수강 신청을 위해 게시판을 보고 있다. 수원시 제공
“갑자기 노래가 생각나네요. 꽃밭에는 꽃들이 모여 살고요.”

교단 앞에 선 신승우 새벽빛장애인학교장이 먼저 노래를 부르자 학생들이 “우리들은 새벽빛에 모여 살아요”라고 한목소리로 이어 불렀다. 교실 안에 이내 환한 웃음꽃밭이 펼쳐졌다. 이곳은 수원에 있는 학교 형태의 장애인 평생교육시설 ‘새벽빛장애인학교’. 장애인들이 모여 함께 공부하는 배움터다.

270여 ㎡ 규모의 공간은 교실과 상담실, 사무실 등으로 꾸며져 있었다. 벽면 한쪽 ‘명예의 전당’에는 1200여 명이 넘는 후원자의 이름이 빼곡하다. 글을 읽고 쓰는 것부터 영어와 한자를 배우고, 교실 벽면에는 전신거울로 돼 무용 연극 등도 가르친다. 한쪽에는 기타, 소고, 장구, 요가 매트 등 교구도 놓여있다. 좁고 불편한 공간에서 운영되던 학교는 한 달 전 후원자들의 도움을 받아 이곳으로 옮겨왔다.

새롭게 단장한 수원 새벽빛장애인학교 벽면 한쪽 ‘명예의 전당’에는 1200여 명이 넘는 후원자의 이름이 빼곡히 적혀 있다. 수원시 제공

● 늘어나는 학생에 공간 부족

학교는 2007년 권선구 오목천동의 한 건물을 임대해 문을 열었다. 장애와 차별 문제를 고민하고 실천하는 사람들이 모여 장애인 평생교육과 사회참여를 도왔다. 30여 명이던 학생이 70명으로 늘면서 지난해부터 공간 부족 문제를 맞닥뜨렸다. 교실이 하나뿐이라 수업을 동시에 진행하지도 못했다. 대기할 곳이 마땅치 않아 인근 편의점을 전전하며 앞 수업이 끝나기를 기다렸다. 화장실도 부족했고, 휠체어를 탄 학생이 지나다니기 어려울 정도로 복도도 비좁았다.

학생들을 위한 보다 넓은 공간이 필요했다. 하지만 차가운 현실과 편견을 직면했다. 적당한 크기의 공간은 돈이 부족했고, 어렵사리 이전 계약을 약속하고도 ‘장애인학교라 주민들이 반대한다’는 이유로 거절당하는 일도 있었다. 딱한 소식을 전해 들은 수원의 한 병원이 손을 내밀었다. 새로운 공간을 찾아다닌 지 1년 만이다. 기쁨도 잠시, 몸이 불편한 학생들이 이용할 수 있는 화장실, 미닫이문, 점자블록 등을 꾸미는 데 드는 비용이 문제였다.

수원 새벽빛장애인학교 학생들이 새롭게 단장한 로비에서 휠체어를 타고 다음 수업을 기다리고 있다. 수원시 제공

● 폐지 줍는 할머니도 동참

수원시자원봉사센터와 수원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이 시민 모금 프로젝트를 위해 팔을 걷었다. 본격적인 모금 활동은 지난해 8월부터였다. ‘단 한 번, 만원의 기부’라는 슬로건으로 포스터가 곳곳에 붙었다. 반응은 그야말로 뜨거웠다. 민간 단체들이 후원에 나섰고, 수원에서 활동하는 봉사단과 개인 봉사자 참여도 줄을 이었다.

유복단 할머니(73)는 꼬깃꼬깃한 지폐와 동전을 모아 124만 원을 기부했다. 폐지를 팔아 적게는 2000원, 많게는 1만 원씩 5개월 동안 모은 소중한 돈이었다. 고단한 삶을 살며 자신도 60세 넘어 야학에서 한글을 배웠다고 한다. 유 할머니는 “야학 다닐 때가 가장 행복했다”며 “배우지 못하고 어려운 사람들을 위해 소중하게 쓸 수 있어 기쁘다”고 말했다.

수원 새벽빛장애인학교 학생들이 새롭게 단장한 교실에서 휠체어를 타고 수업을 받고 있다. 수원시 제공

3개월여 만인 지난해 11월 목표액 7300만 원을 모았다. 72개 단체·기업이 참여했고, 기부 인원만 1225명이었다. 830명은 단체에 소속되지 않은 개인 참여자였다. 수원 시민 1000명 중 한 명이 모금에 동참한 셈이다. 신 교장은 “지역 문제를 지역이 해결하는 성공적인 사례로 기억될 것”이라며 “수원 시민이 한줄기 맑은 시냇물 같은 희망을 만들어 냈다”고 말했다. 이재준 수원시장도 “수원 시민의 따뜻한 마음이 큰 힘을 만들 수 있다는 것을 증명해 냈다”고 밝혔다.

조영달 기자 dalsarang@donga.com

Copyright © 동아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