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만 원도 넘게 쓰는데 '기준 미달'이라는 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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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영지 기자]
아주 오랫동안 우리는 TV를 '바보상자'라 불렀다. 21세기 현대 사회는 TV의 기능을 한 다양한 콘텐츠들이 등장했으니 이제 그에 걸맞은 새로운 닉네임을 붙여줘야 할 것 같다. 새로운 닉네임은 이렇게 지어보았다. 바로 비교상자.
대중이 접하는 채널들이 다양화되면서 일반인부터 연예인까지 앞 다투어 자신들의 일상과 생활 팁, 각종 오락 예능 등을 쏟아내고 있다. 그중 인기 연예인들의 사생활 노출은 항상 화제에 오르기 일쑤다. 그들은 집, 인테리어, 건강 비결, 다이어트 비결, 육아템을 넘어, 이제는 자기 자녀의 사교육비까지 과감하게 오픈하고 있다.
사람 사는 모습은 다들 엇비슷해서 공감과 정보를 얻기도 하지만 수십억 아파트에 억 소리 나는 인테리어 같은 것을 볼 때면 딴 나라 얘긴 것 같기도 하다. 최근엔 자녀 사교육에 대한 내용들이 단연 화제가 되었는데 이를 시청한 나는 공감도 아닌, 딴 나라 얘기도 아닌, 왠지 모를 복잡다단한 심정이 들었다. 나 또한 신도시에서 중1, 중3 자녀를 키우는 학부모라서다.
연예인들의 사교육비
배우 김성은은 초등학교 1학년과 5살 두 자녀의 학원비로 한 달에 총 324만 원을 지출한다는 내용의 유튜브 콘텐츠를 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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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배우 김성은의 사교육 비용 유튜브 영상 화면 갈무리 |
ⓒ 유튜브 영상 화면 갈무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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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배우 한가인의 라이딩 관련 유튜브 영상 화면 갈무리 |
ⓒ 유튜브 영상 화면 갈무리 |
대한민국에서 아이를 학원에 보내지 않고 키우는 부모는 잔다르크만큼 용감한 부모라고 생각한다. 내 주변엔 학원을 보내지 않는 부모는 단 한 명도 없다. 선행이 기반되지 않으면 따라갈 수 없는 학교 수업, 부모의 정보력이 아이의 학력이 된다는 것은 거의 상식이 되어버렸다.
그런 사례들을 실제로 보고 듣게 되면서 마음이 불안해지기도 한다. 안 그래도 금수저니 흙수저니 하는 불공정한 경쟁에 놓여있는 아이들인데, 학업 성취와 재능마저 부모의 무능 탓으로 보고 자책을 해야 한다니(물론 알아서 잘하는 아이들도 있겠지만, 우리 집엔 없다).
두 명의 아이들이 커갈수록 나의 가족 계획이 옳았는가에 대한 의문이 든다. 하나만 낳아서 원하는 것을 다 해주는 것이 더 낫지 않았을까? 그도 그럴 것이 아이들이 클수록 요구하는 것도 점점 많아지고 들어가는 교육비도 만만치 않기 때문이다.
현재 우리 아이들이 다니는 학원을 살펴보면 중3 첫째는 영어, 수학, 농구, 논술을 하고, 둘째는 영어, 수학을 다니고 있다. 아주 기본적인 것만 하는데도 두 명이 어림잡아 100만 원이 훌쩍 넘는다.
최근엔 중1 둘째 딸아이가 기타를 배우고 싶다고 해서 알아보는 중이고, 첫째도 예비 고등학생이라 앞으로 과학, 국어 등 과목들이 추가될 수도 있다(선배맘에게 듣자 하니 수학도 수학 한 과목으로 책정되는 것이 아니라, 굉장히 세분화해서 가격이 매겨진다고 한다).
사교육 콘텐츠에서 보고 싶은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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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배우 이현이가 '사교육1번지'로 알려진 대치동 대치맘들을 찾아 인터뷰했다. 유튜브 영상 갈무리 |
ⓒ 유튜브 영상 갈무리 |
하지만 생각해 보면 그렇지 않은 경우도 많지 않을까? 학원 없이 자기 주도로 공부하는 아이들, 개성을 존중한 맞춤 교육, 창의적인 교육법 등... 그런데 어쩐 일인지 이 같은 모습은 화제가 되지도 않거니와 미디어에서도 자주 보이지 않는다.
연예인 자녀의 사교육 영상이 자주 노출될수록 그들이 대한민국 평균이고 내가 그 기준치에 따라가지 못한다는 마음이 들 수밖에 없다. 그에 따른 상대적 박탈감이 커지는 것도 당연하다. 어쩌면 나의 쿨하지 못함은 여기서부터 비롯된 것이 아닐까?
사교육이 자체가 나쁜 것은 아니다. 다만 유명인들의 '사교육은 당연하고 우리는 이만큼 지출한다, 이렇게 까지 하고 있다'라는 영상만큼, 다른 다양한 선택지가 있음을 알려주는 본보기도 많았으면 하는 바람이다.
덧붙여 저출산 국가에서 넘쳐나는 연예인들의 사교육 관련 영상이 과연 어떤 영향을 미칠지에 대해서도 생각해 보는 건 어떨지. 얼마 전 오은영 선생님이 유튜브에서 말해 화제가 된, '저출산의 원인'에 대해 이야기한 영상이 오버랩됐다.
그녀에 따르면 젊은 세대들에겐 양육에 대한 두려움이 안 그래도 굉장히 많은데, 미디어를 통해 '내가 자녀를 낳아서 이 과정을 다 해야 해? 이거 너무 두렵다'라는 생각을 많이 한다고 했다. 많은 미디어 콘텐츠들이 사실 자녀를 키우는데 도움을 주고 연대감을 키우기 위한 목적을 가지고 있지만, 실제로 양육의 어려움들을 보여줌으로써 간접 학습의 효과가 있다는 것이다.
연예인들의 자녀 사교육 콘텐츠는, 의도치 않았지만 이런 부정적인 결과로 이어질 수도 있다. 어쩌면 이를 통해 우리는 돈이 없으면 애를 낳는 것이 공포스러운 현실이란 것을 지나치게 선행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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