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유태 기자의 책에 대한 책] "매춘부 찍은 사진가, 그는 사진계의 아웃사이더였다"

김유태 기자(ink@mk.co.kr) 2025. 3. 21. 16: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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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은 한 사람의 삶이 통과해야 할 수많은 의미의 생성과 소멸 과정을 고스란히 거울처럼 반영한다."

이 아름다운 문장으로 열리는 이 책은 사진집에 관한 에세이다.

사진작가인 저자 박태희는 인류의 사진사(史)에서 지극히 미학적이었던 사진집 14권을 골라 소개한다.

"오키프의 사진에는 현실의 하찮은 일들을 무시해버리는 사람들이 흔히 갖고 있는 그런 생기가 어려 있다." 20년간 한 인물을 찍는 건 "하나의 장대한 대하소설"이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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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설적인 사진집 14권을 통해 사유하는 사진의 본질

"사진은 한 사람의 삶이 통과해야 할 수많은 의미의 생성과 소멸 과정을 고스란히 거울처럼 반영한다."

이 아름다운 문장으로 열리는 이 책은 사진집에 관한 에세이다.

사진작가인 저자 박태희는 인류의 사진사(史)에서 지극히 미학적이었던 사진집 14권을 골라 소개한다. 잔잔하고 차분한, 그러나 사유의 핵심을 찌르는 문장이 페이지마다 서렸다.

전설적인 사진작가 벨로크의 1912년 사진집이 먼저 소개된다. 벨로크는 사진계의 '아웃사이더'였다고 한다. 왜 그럴까. 그의 주된 피사체는 세상의 가장자리에 위치한 인물 군상, (속된 말로) '창녀들'이었다. 창녀를 찍는 사진작가였던 것이다. 그의 카메라는 세상의 끝을 향했다.

벨로크의 사진집 속 창녀들은 알몸을 드러내거나 속옷 차림이다. 그러나 모델들의 포즈는 전혀 외설적으로 느껴지지 않는다. 천박한 성애의 감정은커녕 도리어 바라볼수록 서글퍼지는 사진들이다. 외설적인 세계를 담은 사진작가로는 일본 아라키 노부요시가 유명한데, 벨로크의 창녀 사진은 아라키와 달리 바라보기가 미안해질 정도로 쓸쓸하다.

앨프리드 스티글리츠의 1978년 사진집 '조지아 오키프'도 이 책에 자세히 소개된다. 오키프는 유명 미술작가, 스티글리츠는 오키프의 연인이었다. 이 사진집에 실린 오키프의 사진 81장은 스티글리츠가 20년간 찍은 것이다.

오키프의 사진들을 한 장씩 넘기며 저자 박태희는 이렇게 말한다. "오키프의 사진에는 현실의 하찮은 일들을 무시해버리는 사람들이 흔히 갖고 있는 그런 생기가 어려 있다." 20년간 한 인물을 찍는 건 "하나의 장대한 대하소설"이기도 했다.

모든 사진은 말이 없다. 하지만 때로 진실은 언어 없이 전해진다.

불교에서도 '언어와 생각으로는 진리를 설명할 수 없다(언어도단·言語道斷)'고 하지 않았던가.

그러나 또 말수 적은 모든 사진이 만인에게 평등하게 아름다운 건 아니다. 진실은 침묵의 정원에 거한다. 저자의 말은 그래서 울림이 크다.

"강렬한 인상을 남기는 사진책을 만나는 경우는 살면서 잊지 못한 사람을 만나는 딱 고만큼의 확률로 찾아들었다."

누구나 사진작가인 시대다. 사진 한 장이 갖는 위상은 과거에 비해 낮아졌다. 변치 않는 사실은 한순간의 찰나를 박제한 사진 속에 촬영자의 호흡이 담긴다는 점이다.

사진을 본다는 건 먼 세상을 동시에 호흡하는 일이기도 하다.

피사체의 눈빛을 바라보는 유명 사진작가들의 눈빛이 이 책을 한 페이지씩 넘기는 독자의 동공에 겹쳐진다. 다 읽고 나면 환시의 잔상이 어른거린다. 그것은 내가 알지 못했던, 알 수도 없던 타자의 얼굴이다. 그건 모든 '나' 자신의 은폐된 얼굴이기도 하다.

[김유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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