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선집중] 광장의 말 기록하는 활동가 ‘말빛’ “세상 바꾸는 건 민중.. 그들의 말에는 빛이 있다”
- 광장에 울려 퍼지는 다양한 삶의 서사, 광장 밝히는 응원봉 닮아
- 탄핵 집회 외에도 여러 집회 참석, 현안에 대한 중요한 발언이나 소외된 목소리 우선 소개
- 촛불 혁명 이후 먹고 사는 문제, 차별, 소수자 문제 해결되지 못해.. 무력감으로 이어져
- 비상계엄으로 각성한 시민, 탄핵 이후 세상에 대한 청사진 필요성에 공감
- 역사 연구 사료집 형태 구상했지만.. 최대한 많은 사람들에게 기록 보여드리는 것 목표
■ 방송 : MBC 라디오 표준FM 95.9MHz <김종배의 시선집중>(07:05~08:30)
■ 진행 : 김종배 시사평론가
■ 대담 : 이지완 씨
☏ 진행자 > 12.3 내란 사태 이후 지금까지 K-POP, 응원봉 은박담요들이 매일 밤 광장을 밝히고 있죠. 또 하나 우리가 주목해야 할 것이 광장을 채우는 다양한 시민들의 목소리인데요. 바로 이 광장의 목소리를 SNS로 알리는 분이 있습니다. 주인공이 바로 이지완 씨인데요. 전화로 만나보겠습니다. 나와 계시죠?
☏ 이지완 > 안녕하세요.
☏ 진행자 > 간단하게 자기소개 부탁드릴게요.
☏ 이지완 > 저는 말빛이라는 이름으로 활동하고 있는 이지완이라고 합니다. 저는 30대 초의 평범한 직장인이고요. 지금은 비상계엄 이후에 광장과 거리에서 나오고 있는 발언들을 모으고 기록하는 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 진행자 > 직장인이세요?
☏ 이지완 > 네.
☏ 진행자 > 매일 광장에 나가시는 거잖아요.
☏ 이지완 > 지금은 휴직 상태입니다.
☏ 진행자 > 휴직 상태라 그러시구나. 알겠습니다. 말빛이라는 단어는 어떻게 생각해 내신 걸까요?
☏ 이지완 > 이번 내란 국면에서 주목을 받았던 게 형형색색으로 빛나는 응원봉이었잖아요.
☏ 진행자 > 그렇죠.
☏ 이지완 > 저는 발언대에서 울려 퍼진 다양한 삶의 서사가 각자 다른 빛으로 빛나는 응원봉을 닮았다고 생각을 했어요. 그래서 저마다 다 다른 응원봉이 다 같은 목적 하에서 같이 어우러지고 빛나게 되었잖아요. 그것처럼 다 동떨어진 것처럼 보였던 삶의 이야기들이 모두 연결되어 있다는 게 이번 국면에서 드러난 것 같고 그래서 말에도 빛이 있다는 의미로 말빛이라는 이름을 쓰게 되었습니다.
☏ 진행자 > 말 그대로 빛처럼 빛나는 말, 이런 뜻이네요. 말벌이라는 단어도 있다면서요. 말벌, 이건 무슨 뜻이에요?
☏ 이지완 > 말벌 아저씨라는 유행어에서 파생된 별명이라고 알고 있거든요. 말벌이 있는 곳이면 다 달려가는 양봉업 종사자 분이 인터넷에서 화제가 된 적이 있어요. 그분처럼 투쟁이 있는 곳 연대가 필요한 곳이면 어디든 다 달려간다라고 해서 말벌시민, 말벌동지라고 부르는 별명이 생겼습니다.
☏ 진행자 > 광장에서 목소리 내는 시민들을 말벌이라고 부르시는 거네요.
☏ 이지완 > 네.
☏ 진행자 > 저는 땡벌이 익숙해서.
☏ 이지완 > (웃음)
☏ 진행자 > 죄송합니다. 쓸데없는 얘기해서. 하루 일과가 집회 참여로 시작을 해서 기록하는 걸로 끝난다고 들었는데요. 소개를 해주세요. 어떤 식으로 활동하고 계시는 거예요?
☏ 이지완 > 저는 처음에는 주로 탄핵 집회를 위주로 참석을 했는데요. 탄핵 집회에서 다양한 투쟁 사업장들에 대한 이야기를 듣게 되었어요. 그래서 2월부터는 정리해고에 맞서서 투쟁하는 세종호텔 노동자들의 집회라든가 하청노동자 관련해서 싸우는 거제·통영·고성 조선하청지회 노동자들 집회, 그리고 부당전보와 해임에 맞서서 싸우는 지혜복 선생님과 연대하는 집회, 그리고 동덕여대 집회, 그리고 다양한 집회에 참석을 하고 있습니다.
☏ 진행자 > 그럼 어떤 식으로 기록하고 공유하시는 거예요?
☏ 이지완 > 일단 집회에 참석해서요. 제 기록 원칙이 현장에서 발언을 수집을 하고 AI 같은 것에 의존하지 않고 직접 발언을 받아 적는 거거든요.
☏ 진행자 > 다 받아 적으세요? 그거를.
☏ 이지완 > 네, 간략하게 과정을 소개를 해드리면 일단 집회에 참가를 해서 발언자의 사진을 찍고 발언 내용을 녹음을 하고요. 집회가 끝난 다음에는 녹취를 하나하나 풀고 가능하면 발언 내용과 관련된 조사를 해요. 발언문을 게시할 때 그냥 발언문만 올리는 것보다 관련 사안에 대해서 제 나름대로 설명을 붙이거나 발언의 요지를 대략적으로 정리를 하면 더 많은 분들이 읽어주시더라고요. 그래서 그런 식으로 정리를 하고 있습니다.
☏ 진행자 > 시간 되게 오래 걸릴 것 같은데요.
☏ 이지완 > 집회 하나당 한 5시간 정도 걸리는 것 같아요.
☏ 진행자 > 매일 그 작업을 하고 계시는 거예요?
☏ 이지완 > 네.
☏ 진행자 > 그날의 기록으로 남길 발언들은 어떤 기준으로 고르시는 거예요?
☏ 이지완 > 그날의 기록으로 남길 발언은 예를 들면 어제 3월 20일 같은 경우에는 3월 27일 총파업을 예고한 양경수 위원장의 발언이랑 그리고 한 성소수자분의 발언을 먼저 게시를 했어요. 그런 식으로 급박하게 돌아가는 정세와 관련해서 중요한 발언, 그리고 또 광장 안에서도 소외된 목소리들이 있다고 생각하거든요. 그런 목소리를 우선적으로 기록을 하는 편입니다.
☏ 진행자 > 지금까지 기록하고 공유했던 발언 가운데 가장 기억에 남는 건 어떤 거예요? 예를 들어주신다면.
☏ 이지완 > 예를 들면 저 개인적으로 굉장히 가슴에 사무치는 발언이 있거든요. 얼마 전에 거제·통영·고성의 조선하청지회의 김형수 지회장이 하청노동자의 처우개선을 요구하면서 한화빌딩 앞에 있는 CCTV 철탑에 올라가셨거든요. 근데 올라가시기 직전에 다 올라가실 걸 모르는 상황에서 마지막으로 하신 발언이 있어요. 근데 그게 굉장히 기억에 남더라고요.
☏ 진행자 > 어떤 발언이었는데요?
☏ 이지완 > 발언 내용이 청계천에 관한 것이었거든요. ‘청계천 8가’를 부르시고 나서 발언하셨는데 한화빌딩 농성장 앞에서 바라본 청계천의 풍경, 전태일 열사 흉상부터 명동성당 앞에 있는 이름 모를 노숙인에 대해서까지 되게 세세하게 그 풍경을 말씀하셨어요. 제가 다음 날 새벽이 되고 나서 그 발언의 의미를 알게 된 거예요. 왜냐하면 지금 올라가 계신 그 철탑에서는 그 풍경이 훤히 다 내려다보이거든요. 사실 저는 이런 발언이 항상 차별받았던 하청노동자의 시각을 잘 보여준다고 생각하는 게 사실 지금이야 청계천이 데이트 명소지만 원래는 가난의 풍경을 상징하는 곳이잖아요. 그래서 지회장님한테는 청계천에 깊이 새겨져 있는 어떤 가난의 흔적, 혹은 저항의 역사, 이런 게 계속 눈에 밟힌 것 같고 그래서 그런 가난의 풍경까지 다 짊어지고 고공에 올라가신 거 아닌가라는 생각을 발언을 통해서 하게 됐습니다.
☏ 진행자 > 진짜 말씀하시니까 그렇네요. 청계천의 의미가 참 많이 바뀌었네요. 그 사이에.
☏ 이지완 > 네.
☏ 진행자 > 그렇네요. 그럼 아직 알리지 못한 빛나는 말도 있을까요?
☏ 이지완 > 제가 꼭 이번 기회로 알리고 싶은 말이 있는데요. 아직 발언의 형태로 광장에서 완전히 울려 퍼지지 못해서 널리 알리지는 못했는데 한 대학생 분이 3월 27일 민주노총 총파업에 맞춰서 거리로 나오겠다라는 그런 결의를 담아서 쓴 글이 있어요. 박세영 님이라고 중앙대 23학번이고 금속노조조합원이기도 한 분이 교수님께 보내는 메일 형식으로 글을 쓰셨는데 굉장히 인상 깊더라고요. 일부만 간단히 빨리 읽어드리면 ‘교수님 안녕하세요. 저는 민주시민의 한 사람이자 민주노총조합원의 한 사람으로서 3.27 국민 멈춤의 날에 동참하는 의미로 오늘 강의에 나가지 않을 예정입니다. 12월 3일 불법적으로 선포된 비상계엄 포고령 1호에는 대학 휴교령 조항이 없었습니다. 대학은 이제 더 이상 실천하는 지성의 전당이 아니기 때문에 정권의 탄압 대상이 아니게 되었습니다. 이로 인해 이 땅의 대학 학부생으로서 모욕감이 들었습니다. 현 세대의 대학생들은 깨어 있는 시민이었습니다. 그런 가치를 작금의 대학공동체 안에서 다시금 살리고 싶습니다. 사회과학도로서 민주주의를 지키려고 합니다.’ 교수님께 보내는 메일 형식으로 글을 쓰셨는데 이 글이 광장에서 많이 울려 퍼졌으면 좋겠습니다.
☏ 진행자 > 그러고 보니까 진짜로 포고령에 대학교 휴교 내용은 없었네요. 그러고 보니까. 그렇군요. 알겠습니다. 최근 광장의 모습이 이전과 달라졌다고 느끼세요, 어떻습니까?
☏ 이지완 > 저는 달라진 점이 많다고 생각해요. 박근혜 대통령 퇴진 국면과 비교를 해볼 수밖에 없을 것 같아요. 사실 그때와 다른 점은 당시에는 어떤 광장의 목소리를 퇴진과 탄핵에 집중시켜야 된다는 분위기가 굉장히 강했거든요.
☏ 진행자 > 네, 맞아요.
☏ 이지완 > 그리고 사실 먹고사는 실질적인 문제나 차별의 문제, 소수자의 문제는 그 이후에 퇴진 이후, 탄핵 이후에 논의하자는 분위기가 강했던 것 같고 촛불로의 단일화 그게 바로 그런 분위기를 상징적으로 보여준다고 생각을 해요. 사실 그런 실질적인 문제들, 먹고사는 문제나 차별의 문제가 제대로 해결되지 못했잖아요. 그걸로 인해서 많은 청년들이 무기력에 빠졌었다고 생각을 하고, 윤석열 대통령 집권 이후에 사실 굉장히 많은 문제들이 있었음에도 광장이 잠잠하긴 했잖아요. 그게 바로 그 무력감 때문이라고 생각을 하거든요. 이번에 비상계엄이 터지고 다 각성하게 됐잖아요. 그 무력감 뒤에서 계속 천천히 축적되고 있던 분노가 터져 나왔다고 생각을 하고 사실 촛불을 기억하는 시민들은 계속 그때처럼 다양한 의제들을 탄핵 이후로 미뤄두면 파면 이후에 군중들이 어떤 과실도 얻지 못하게 될 것이다라는 걸 깨닫게 된 것 같아요. 그래서 그런 다양한 의제들을 상징하는 게 응원봉인 것 같거든요. 다 저마다 다른 빛을 내잖아요. 그래서 탄핵만큼 중요한 게 파면 이후 세상에 대한 청사진이다라는 걸 다 모두가 알고 있고 그런 정서를 공유하고 있기 때문에 말벌 시민이 탄생한 거라고 생각을 합니다.
☏ 진행자 > 그렇군요. 아무튼 광장의 말들을 그날그날 기록을 해서 다시 공유를 하는데 공유하는 공간은 SNS인 거잖아요. 이거를 다시 모아서 영원히 보관하기 위해서 책으로 낸다든지 혹시 이런 계획도 갖고 계세요?
☏ 이지완 > 사실은 처음에는 역사 연구에 참고할 수 있는 사료집을 만드는 게 목표였어요. 제가 전공자였기도 해서, 근데 지금은 연구자 집단을 넘어서 최대한 많은 분들께 지금까지의 기록을 보여드리고 싶다는 목표를 가지고 있습니다. 구체적인 방법에 대해서는 아직 고민 중에 있습니다.
☏ 진행자 > 신체적으로 힘들지 않으세요?
☏ 이지완 > 힘들긴 한데 그래도 어떤 발언이 울려 퍼질 때마다 정말 세상을 바꾸는 거는 소수의 엘리트 정치인이나 학자들이나 이런 사람이 아니라 민중들이라는 걸 깨닫게 되는 순간들이 많거든요. 그래서 그런 희망을 얻을 때마다 저도 이겨내는 것 같습니다.
☏ 진행자 > 알겠습니다. 아마 많은 울림이 있을 거라고 저는 그렇게 믿습니다.
☏ 이지완 > 감사합니다.
☏ 진행자 > 고생 많이 하시고요. 오늘 인터뷰 이렇게 마무리해야 될 것 같습니다. 고맙습니다.
☏ 이지완 > 감사합니다.
☏ 진행자 > 광장의 말을 모아서 SNS로 알리고 있는 말빛 이지완 씨였습니다.
[내용 인용 시 MBC <김종배의 시선집중>과의 인터뷰 내용임을 밝혀주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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