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기의 시대를 스크린에 띄운 '스트리밍'
아이즈 ize 정수진(칼럼니스트)
우직한 뚝심의 사랑을 선보였던 '황용식'이 사람들의 관심에 목말라 하는 광기의 '사이버렉카'가 되었다. 영화 '스트리밍'은 주연배우 강하늘이 그간 본 적 없는 얼굴을 선보였다는 사실만으로 주목할 필요가 있다. 영화는 그렇지 않아도 낯선 그의 얼굴을 스크린라이프 기법(PC, 휴대폰 등 디지털 기기의 스크린을 통해 영화 스토리가 전개되는 방식)으로 최대한 자세히 들여다보고, 원테이크 신들로 쫄깃한 긴장을 키운다.
'스트리밍'은 구독자 수 1위의 범죄 채널 스트리머 '우상(강하늘)'이 풀리지 않던 연쇄살인 사건의 단서를 발견하고 범인을 추적하는 과정을 실시간으로 방송하며 벌어지는 스릴러다. 먼저 영화는 우상이 활약하는 스트리밍 플랫폼인 왜그(WAG)의 특징을 설명하며 눈길을 끈다. 콘텐츠를 방송하는 스트리머를 '관찰대상', 방송을 시청하는 구독자들을 '관찰자'라 부르는 '왜그'의 독특한 방식은 수익 배분 구조에 있다. 스트리머와 플랫폼이 콘텐츠 수익을 5 대 5로 나눈다. 단 'Winner take it all'이란 승자독식 주로를 택해 주간 순위 1위에 오른 스트리머는 수수료를 나누지 않고 모든 수익을 가져간다. 이곳의 스트리머들이 눈에 불을 켜고 보다 자극적인 방송을 할 수밖에 없는 이유다.
자극적인 방송이 판을 치는 그곳에서 우상은 높은 화제성으로 1위를 차지하는 인물. 최근엔 '옷자락 살인마'라고 명명한 연쇄살인사건의 범인을 직접 잡겠다고 나서며 화제몰이 중이다. 이를 위해 우상은 살인마의 입장이 되어 보겠다며 미모의 여성 스트리머 마틸다(하서윤)와 '합방'을 했는데, 오히려 마틸다에게 주도권을 빼앗기고 세간의 조롱을 받으며 '나락'으로 떨어지게 된다. 정상의 위치를 지키는 것도 스트레스 받지만, 정상에서 추락해 발버둥치는 현실은 더욱 가혹하다. 이런 모습은 우리가 그간 보아온 인기 유튜버나 스트리머들에게 종종 보였던 양상인지라 더욱 몰입이 된다.
나락에 빠지는 듯한 우상의 재기 조짐은 공교롭게도 자신의 화제성을 빼앗아간 마틸다의 실종에서 시작된다. 관찰자들의 요구로 마틸다를 찾아 나선 우상은 마틸다의 집에서 그가 납치당하는 영상을 보게 되고, 마틸다를 납치한 범인이 자신의 방송을 지켜보는 관찰자 중 하나임을 알게 된다. 이제 그는 밖으로 나선 카메라와 함께 실제로 범인을 쫓는 추격전을 벌인다.
영화 내내 스트리머가 화면을 정면으로 바라보며 극장의 관객을 '관찰자 여러분'이라 부르기에, 지켜보는 관객도 우상의 채널을 보며 함께 실시간으로 댓글을 달고 호흡하는 듯한 느낌을 준다. 빠르게 올라가는 댓글창, 순간순간 터지는 후원 메시지, 중간중간 방송의 틈에 보이는 깨알 같은 중간광고까지. 2018년작 '서치' 이후로 스크린라이프 기법이 여러 차례 선보이며 더 이상 참신하지 않음에도, 이런 유의 이야기에서 스크린라이프 기법을 활용함으로써 몰입도가 제법 높은 것은 부인할 수 없다. 인터넷 방송 특유의 디테일들이 소소한 웃음을 터트리게 만들기도 한다.
그러나 압권은 역시 러닝타임 내내 화면을 압도하는 우상, 강하늘의 연기. 자칫 단조로울 수 있는 화면을 붙잡고 '하드캐리'하는 강하늘의 존재감이 '스트리밍'의 가장 큰 장점이다. 비릿한 조소를 띈 얼굴을 전면에 내세운 공식 포스터부터 파격적이었는데, 착 달라붙는 쓰리 피스 수트와 손 닿으면 기름기가 뚝뚝 묻어날 것 같은 헤어스타일과 문신 등 과한 스타일링과 허세에 사로잡힌 목소리로 남발하는 과한 멘트를 보고 있으면 '강하늘 맞아?' 하는 놀라움이 점점 커질 것이다. 그간 강하늘이 본격 '비호감'이나 '빌런'의 포지션을 맡은 적 없는 데다 '미담 제조기' 등 연기 외적으로 쌓은 호감의 이미지가 지배적인지라 '갭차이'가 크게 느껴지기 때문이기도 하다.
강하늘의 연기를 쫓다 보면 이 영화가 던지고자 하는 메시지도 곱씹게 된다. 영화는 조금 투박할지언정 정제되지 않은 자극적인 말들이 넘실거리는 인터넷 방송이 방송으로 소비되는 것에만 그치지 않는 무서움을 생생히 전달한다. 확인되지 않은 뉴스들이 진짜로 오인돼 퍼져 나가는 상황을 제재하지 못하는 사회와 무분별하게 1인 미디어를 소비하며 범죄를 묵인하는 것을 넘어 조장하는 듯한 불특정 다수의 인터넷 방송 여론에 대해 생각해 보게 된다. 물론 재미있자고 보는 인터넷 방송에서 경종을 때려 맞고 싶진 않겠지. 그러나 그 폐해로 곳곳에서 파국이 일어나고 심지어 아까운 인명들이 스러지는 지금의 현실을 생각하면 늦었지만 이제라도 영화가 담은 씁쓸한 메시지에 주목해야 하지 않을까. 지난 2월 스러진 배우의 뒷이야기를 끊임없이 파헤치는 자극적인 뉴스가 1인 미디어를 통해 확산되는 요즘은 더더욱 그렇다.
'스트리밍'은 네이버북스 미스터리 공모전 최우수상 수상작 '휴거 1992'와 드라마로도 만들어진 '저스티스'를 쓴 조장호 감독의 연출 데뷔작이다. 러닝타임 91분, 청소년 관람불가 등급이며, 3월 21일 개봉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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