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형 보험사 자본성증권 조달 '흥행'…중소형 보험사는 '시름'
한화생명·현대해상 등 신종자본증권·후순위채 발행 지속
중소형 보험사 수요예측 미달·철회 나타나…낮은 신용등급 '외면'
[더팩트 | 김태환 기자] 보험사들이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자본성증권 발행을 통한 자본조달을 확대하는 가운데 대형 보험사와 중소형 보험사의 희비가 엇갈리고 있다. 대형사들의 경우 수요예측에서 목표액보다 더 많은 자금이 몰리는 반면 중소형사들은 목표치가 미달하거나 아예 발행을 철회하는 사례도 등장하고 있어서다. 자본시장에서의 불확실성이 높아지면서 신용등급이 높은 보험사들에 대해 자금이 쏠리는 흐름이 지속될 것이란 전망이다.
20일 보험업계에 따르면 올해 2월까지 국내 보험사들의 자본성증권 발행 규모는 약 2조1000억원으로 집계됐다. 단 2개월 만에 지난 2023년 전체(2조9540억원)의 절반 이상의 자본성증권이 발행된 것이다.
한화생명의 경우 지난 17일 30년 만기 신종자본증권 수요예측에서 기존 목표액 3000억원의 2배가 넘는 7510억원의 주문을 확보했다. 한화생명은 투자자 수요를 확인하고 최대 6000억원까지 증액해 발행하는 것을 검토하고 있다.
수요 예측이 흥행에 성공한 것과 관련해 채권시장에서는 한화생명의 최근 신용등급 상승이 반영된 결과로 해석하고 있다. 이달 국내 3개 신용평가사(한국신용평가, NICE신용평가, 한국기업평가)는 한화생명 신용등급을 기존 AA+(긍정적)에서 AAA(안정적)으로 상향조정했다.
현대해상은 오는 20일 4000억원 규모 후순위채 발행을 위한 수요예측을 한다. 희망금리밴드는 3.60~4.30%로 제시했으며 수요예측 결과에 따라 최대 8000억원까지 증액한다는 방침이다. 현대해상의 후순위채 신용등급이 한국신용평가 기준 AA+임을 감안하면 자금이 크게 모집될 것이란 관측이다.
반면, 중소형 보험사들의 경우 수요예측에서 미달되거나 발행을 철회하는 사례가 나타나고 있다. ABL생명은 지난 18일 1000억원 규모의 후순위채 수요예측에서 730억원의 주문을 받아 미달이 발생했다.
또 지난 12일 흥국화재가 신종자본증권 발행을 위한 수요예측을 했지만, 2000억원 모집액 중 1010억원의 수요를 받아 목표액에 미달했다. 지난달 롯데손해보험의 경우 1000억원 후순위채 모집에서 720억원의 주문을 받아 미달된 이후 발행을 철회했다.
수요예측에서 목표액 미달이 나타난 중소형 보험사들은 상대적으로 신용등급이 낮다는 공통점이 있다. ABL생명의 후순위채 신용등급은 A이며, 흥국화재의 신종자본증권은 A-, 롯데손해보험은 A-이다. 보험사들의 자본성증권 발행이 늘어난만큼, 굳이 위험을 감수하면서 낮은 신용등급의 자본성증권에 투자할 필요가 없다는 설명이다.
보험업계 관계자는 "보험사들이 지난해에만 총 8조7000억원어치 자본성 증권을 발행했는데, 전년 대비 4배 이상 늘어난 규모"라며 "발행 물량이 급증하면서 투자자들은 신용등급이 높은 대형사의 채권을 선호하게 됐고, 상대적으로 신용등급이 낮은 중소형사의 채권은 투자 수요가 감소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또 다른 보험업계 관계자는 "최근 금융시장에서는 금리 변동성 증가와 경제 성장률 둔화 우려 등으로 인해 투자자들의 위험 회피 성향이 강화되고 있다"면서 "이로 인해 신용등급이 낮은 중소형 보험사의 채권에 대한 투자 심리가 위축되는 경향이 있다"고 말했다.
최근 금융당국이 보험업권 자본규제를 고도화하면서 자본성증권 발행이 더욱 어려워질 것이란 전망도 나온다. 금융위원회와 금융감독원은 지난 12일 '보험업권 자본규제 고도화 방안'을 통해 보험사 재무 건전성을 보여줬던 킥스 비율은 최대 20%포인트 낮추는 대신 자본성증권을 통한 자본조달금을 제외한 '기본자본 킥스 비율'을 새로운 핵심 지표로 관리하기로 했다. 이렇게되면 자본성증권 발행을 통한 자금 조달의 의미가 희석될 여지가 있다.
보험업계 관계자는 "자본성증권 발행으로 K-ICS비율을 높일수 없게 된다면 결국 유상증자를 하거나 자산 매각 및 구조조정을 통해 자금을 확보해야 한다"면서 "보험 계약의 리스크를 재보험사에 이전할 수 있는 재보험 가입도 고려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kimthin@tf.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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