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콩 개발史 산증인’ 부동산 재벌 리자오지 별세… “한 시대 저물었다”
청쿵그룹 리카싱과 함께 홍콩 4대 가문
2차 세계대전 후 홍콩 부동산 개발 견인
2000년대 주식 성공, ‘亞 워런 버핏’ 별명
2019년 경영 은퇴… 홍콩 침체기 진입
홍콩 부동산 개발을 주도하며 1990년대 아시아 최고 부자에도 올랐던 리자오지 헨더슨랜드그룹 창립자가 별세했다. 향년 97세. 리자오지는 제2차 세계대전 후 시작된 홍콩 도시화 흐름을 타고 함께 성장한 인물이다. 여기에 홍콩 금융 시장이 전성기를 구가하던 시절 주식 투자를 통해 ‘아시아의 워런 버핏’이라는 별명을 얻기도 했다. 공교롭게도 그가 경영 일선에서 물러난 이후 홍콩의 침체기가 시작됐다. 현지 매체들은 리자오지의 사망에 “홍콩 개발의 한 시대가 끝났다”는 평가를 내놓고 있다.
18일 중국 홍성신문에 따르면, 헨더슨랜드그룹은 “17일 저녁 그룹 창립자 리자오지가 97세의 나이로 가족들 곁에서 평화롭게 세상을 떠났다”고 밝혔다. 그룹은 리자오지의 구체적 사망 장소와 사망 원인 등에 대해선 언급하지 않았다. 헨더슨랜드그룹은 부동산 개발부터 호텔, 백화점, 천연가스 유통까지 사업을 보유하고 있는데, 홍콩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는 “리자오지가 건설한 사업 제국의 총시장가치는 17일 기준 5510억홍콩달러(약 102조3000억원)에 달한다”라고 했다. 현재 개인 자산은 295억달러(약 42조6000억원)로, 1990년대 미국 포브스 선정 아시아 최고 부자, 세계 4위 부자까지 오른 바 있다.
리자오지의 별세 소식이 전해진 직후 홍콩 매체 딤섬 데일리는 “리자오지의 죽음은 단순히 비즈니스 거물을 잃은 것 이상”이라며 “홍콩 개발의 한 시대가 끝났다는 것을 상징한다”라고 했다. 실제 리자오지의 생애는 홍콩 발전 역사와 맞닿아 있다. 1928년 중국 남부 광둥성 포산시 순더구에서 태어난 그는 제2차 세계대전 여파가 아직 남아 있던 20세 때 홍콩으로 건너갔다. 그의 가족들은 본토에서 귀금속·외환 거래 사업을 했고, 리자오지 역시 홍콩에서 같은 업종으로 출발했다.
리자오지는 그렇게 번 돈으로 29세 때 부동산 건설에 뛰어들었다. 본토 대비 상대적으로 안정적인 경제 환경에 본토인들이 대거 홍콩으로 이주해 왔고, 산업도 성장하면서 주택 공급이 턱없이 부족하다는 데 착안한 것이다. 리자오지는 그의 전기에서 “모든 가족은 머리 위에 지붕이 필요하다”며 “주택은 사람들에게 가장 확고한 안전을 제공한다”라고 했다. 1958년 리자오지의 첫 부동산 사업을 함께한 인물 7명 중 하나가 고(故) 궈더성(1990년 별세) 순훙카이그룹 창업자다. 1990년대부터 이들은 청쿵그룹 리카싱(97) 일가, 신세계개발 정위퉁(2016년 별세) 일가와 함께 홍콩 4대 가문으로 올라섰는데, 그 시작이 이때였던 셈이다.
리자오지와 동업자들은 홍콩 부동산 시장의 판도를 바꿨다. ‘층별 판매, 10년 분할 납부’ 방식을 처음으로 도입한 것이 이들이다. 이전까지 홍콩 부동산은 건물별로만 투자가 가능했는데, 소액 투자자도 시장에 참여할 수 있게 문을 열어준 것이다. 1963년 리자오지와 궈더성 등은 독립해 선훙카이그룹을 창업했는데, 1967년 본토 문화대혁명 영향으로 홍콩 부동산 가격이 급락하자 대량 매수에 나서 홍콩 부동산 붐을 일으키기도 했다. 1976년 독자적으로 헨더슨랜드를 세운 뒤에도 남들과 다른 길을 갔다. 대형 부동산 개발사들이 홍콩 중심지 호화 부동산 개발에 주력할 때, 리자오지는 본토와 접한 외곽 지역의 저렴한 농경지 개발에 착수했다. 그렇게 만들어진 곳이 홍콩 최대 주거지역 중 한 곳인 샤틴 신도시다.
부동산에 기대어 성장하던 홍콩은 1997년 중국에 반환되면서 분위기가 반전된다. 뉴욕타임스(NYT)는 “영국 통치가 끝나고 중국으로 복귀하면서 홍콩은 자유로운 비즈니스 중심지 분위기를 일부 잃었다”며 “홍콩에 사무실을 설립하는 기업이 줄어들면서 현지 부동산 시장은 침체됐다”고 했다. 홍콩 시사주간지 파 이스턴 이코노믹 리뷰가 부동산 재벌 리자오지를 두고 “새로운 세대와 새로운 사업 환경에 대비하는 데 어려움을 겪었다”고 평가한 배경이다. 하지만 리자오지는 곧 금융이라는 새로운 먹거리를 찾았다. 2000년대 들어 뛰어든 주식 투자 덕에 2008년엔 2000억홍콩달러(약 37조2000억원) 상당의 개인 주식 포트폴리오를 축적했다. 리자오지가 ‘홍콩의 워런 버핏’, ‘주식의 신’이라는 별명을 얻게 된 것도 이 때다.
리자오지는 2019년 리자제와 리자청 등 두 아들에게 공동 회장을 맡기고 경영 일선에서 물러났다. 이후 홍콩의 부동산·금융 시장의 상승세도 꺾이기 시작했다. 지난해 말 영국 이코노미스트는 “홍콩은 오랫동안 엄청난 부동산 가격의 상징이었지만, 지금은 극심한 침체를 겪고 있다”며 “주택 가격은 2021년 말 이후로 4분의 1 이상 하락했고, 미분양 주택 수는 20년 만에 최고치를 기록했다”라고 했다. 글로벌 부동산 기업 세빌스에 따르면, 지난해 홍콩 사무실 임대 가격은 2019년 최고치에서 40% 하락했다. 홍콩 민주화 운동으로 위기를 느낀 중국 정부가 홍콩의 자유를 박탈하고 통제를 강화하면서 글로벌 금융 중심지라는 위상도 흔들리고 있다. 2023년 홍콩 사모펀드와 벤처캐피털의 자본 조달액은 102억달러(약 14조8000억원)에 그쳤다. 이는 2021년(533억달러) 대비 81% 줄어든 수치다.
딤섬 데일리는 “리자오지의 죽음은 홍콩이 전례 없는 어려움에 직면한 가운데 일어났다”며 “오랜 시간 홍콩 경제의 기둥이었던 부동산 시장은 취약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는 것은 신세계개발이 최근 66억홍콩달러 손실을 본 것이 이를 방증한다”라고 했다. 주요 성장 동력이 힘을 잃으면서 홍콩의 지난해 국내총생산(GDP)은 전년 동기 대비 2.5% 성장하는 데 그쳤다. 전년(3.3%)보다 둔화한 수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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