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논단] 돌봄과 의료, 단절의 벽을 넘어
병 걸리면 아픈 채 홀로 남겨져
의료기관과 인력 절대 부족에
퇴원 후 회복·재활 엄두 못 내
이미 초고령사회 진입했는데
통합 돌봄 체계 구축 요원하다
홀로 사는 박순자(84)씨. 10년 전 배우자를 떠나보내고 자녀는 타지에 있다. 거동이 불편해 몇 년 전부터 장기요양 재가 서비스를 받고 있었다. 매일 요양보호사가 찾아와 식사를 챙기고, 몸을 씻겨주고, 청소를 도왔다. 그런데 며칠 전 몸이 좋지 않아 병원에 갔더니 폐결핵 진단이 나왔다. 의사는 최소 2주간 집에서 격리해야 한다고 했다. 그날 저녁, 늘 방문하던 요양보호사가 전화를 걸어왔다. “어르신, 폐결핵은 감염성이 있어서 완치될 때까지 저희가 돌봐드릴 수 없어요.” 요양보호사도 검사를 받아야 했고, 기존 서비스는 즉시 중단됐다. 요양보호사의 목소리는 걱정스러워 보였지만, 현실은 아픈 채 홀로 남겨진 것이다.
이 사례는 한국 돌봄체계의 치명적인 공백을 보여준다. 지난해 3월 제정된 ‘의료·요양 등 지역 돌봄의 통합 지원에 관한 법률’(돌봄통합지원법)은 바로 이러한 문제에 대응하기 위한 것이다. 2026년 시행을 앞두고 보건복지부는 최근 정책 토론회를 열어 인프라 구축과 시범사업 확대 방안을 논의했다. 지방자치단체와 학계의 우려 목소리가 적지 않다.
우려의 핵심 내용은 크게 세 가지다. 첫째는 서비스 공급의 구조적 공백이다. 돌봄을 통합 지원하기 위해 가장 중요한 것은 필요한 서비스를 연계할 의료·복지 공급자가 확보되는 것이다. 그러나 현실은 다르다. 지자체들은 재택 의료를 담당할 의료기관과 인력 부재를 가장 큰 문제로 꼽는다. 퇴원 환자의 회복·재활 지원, 재가 와상노인 돌봄, 재택 임종 케어 서비스는 필수적이다. 하지만 지역 내 대부분의 민간 의료기관은 낮은 수가 문제로 참여를 꺼리고 있으며, 보건소는 이미 기존 필수사업 수행으로 추가적인 역할을 감당하기 어렵다. 비단 의료 서비스만의 문제는 아니다. 주거, 재활, 영양, 이동, 일상생활 지원 등도 마찬가지다. 전국적 실행을 앞두고 공급 부족과 연계 미비가 심각한 걸림돌로 작용할 가능성이 크다. 결국 서비스 공급 생태계를 어떻게 건강하게 조성할 것인가가 돌봄 통합 지원의 핵심 과제다.
둘째는 지자체 중심의 돌봄 통합 지원이라는 법 취지의 약화 우려다. 건강보험공단이 통합판정 체계를 운영하고, 대상자 발굴과 서비스 제공을 전문 조직에 위임하는 구조가 지자체의 역할을 약화시킬 것이라는 지적이다. 중앙이 욕구 사정과 판정을 담당하고, 지원 계획 수립은 지자체가 맡는 방식은 실행 과정에서 분절화를 초래할 수 있다는 것이다. 통합판정 체계는 초고령사회에서 지속 가능한 합리적 돌봄자원 배분을 위한 제도적 장치다. 전국적으로 통일된 기준이 필요하며, 장기요양 인정조사 경험이 축적된 건강보험공단이 수행하는 게 타당하다. 다만 통합판정 체계가 지자체의 재량권을 침해하지 않는다는 점을 명확히 해야 한다. 즉 지자체는 지원 대상과 서비스 욕구 판정을 주도할 권한이 있으며, 중앙의 판정 기준은 보조적 역할을 할 뿐이라는 점을 분명히 할 필요가 있다.
셋째는 보다 근본적인 문제인데, 돌봄 통합 지원은 국가 시스템 개혁 과제다. 돌봄 통합 지원은 단순한 복지 정책이 아니다. 세계에서 유례없는 속도로 진행되는 초고령화 시대의 돌봄 시스템 개편은 사회 전반의 지속 가능성을 좌우하는 국가적 과제다. 하지만 현재 국가도, 지자체도 이 문제를 충분히 인식하지 못하고 있다는 우려가 크다. 특히 지자체가 창발적 책임 행정을 수행할 수 있도록 구조적 개편이 필요하다. 기관 간, 부서 간, 다학제 인력 간 협력 체계가 실질적으로 작동할 수 있도록 정비해야 한다. 예산 집행의 유연성을 보장하고, 성과 평가 및 인사 평가 체계를 개편해 돌봄 정책을 실효성 있게 운영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무엇보다 지자체장의 강력한 리더십이 핵심 변수가 될 것이다. 지역 단위에서 비전을 공유하고, 협력과 연계를 체질화하는 행정 시스템을 구축할 수 있도록 중앙정부는 행정안전부, 기획재정부 등 유관 부처와 협력해 지자체를 강력히 지원해야 한다.
박씨와 같은 사례는 앞으로 더 자주, 더 심각하게 발생할 것이다. 우리 사회가 초고령사회를 맞으며 풀어야 할 과제는 분명하다. 이 2주일간, 누가 박씨를 어떻게 돌볼 것인가. 이 질문에 답하지 못하는 사회라면 우리는 더 많은 노인을 방치하게 될 것이다. 돌봄과 의료가 단절되지 않는 통합 돌봄 체계를 구축해야 한다. 그것이 초고령사회의 한국이 반드시 가야 할 길이다.
석재은(한림대 교수·사회복지학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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