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격” 선동에 4명 사망…‘尹 칩거’ 속 전운 감도는 헌재

이혜영 기자 2025. 3. 17. 19: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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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년 전 박근혜 전 대통령 파면 당시 헌재 몰려든 지지자들 경찰과 충돌
최장기 숙의에 긴장감 커져…경찰, 재판관 경호 강화 등 총력 대응 방침
석방된 尹 관저 칩거…“尹과 與野, 국민들 헌재 결정에 모두 승복해야”

(시사저널=이혜영 기자)

3월8일 서울구치소에서 석방된 윤석열 대통령이 한남동 관저 앞에 도착해 지지자들과 인사를 나누고 있다. ⓒ연합뉴스

윤석열 대통령에 대한 헌법재판소의 탄핵심판 선고일이 임박해오면서 전운이 감돈다. 대통령 파면을 둘러싼 광장의 갈등이 깊어지면서 8년 전 참극이 재현될 수 있다는 우려도 커진다. 경찰은 2017년 박근혜 전 대통령 파면 당시 상황과 서울서부지법 난동 사태를 복기하며 참극 재현을 막기 위해 총력을 기울인다는 방침이다. 석방된 윤 대통령이 관저 칩거를 이어가는 가운데 대통령과 여야 모두 헌재의 결정에 '승복한다'는 분명한 메시지를 내야 한다는 주문이 나오고 있다. 

'탄핵 찬반' 광장 극한 대립 속 헌재는 최장기 숙의 

17일 법조계에 따르면, 윤 대통령의 탄핵심판 선고는 오는 20~21일이 유력하게 거론된다. 헌재는 선고 2~3일 전 청구인과 피청구인 측에 각각 확정 기일을 통지한 뒤 이를 언론에 공지한다. 일각에서는 헌재가 대통령 탄핵심판 중 역대 최장기 숙의를 이어가는 상황이 다음주까지 계속될 것이란 전망도 나온다. 

윤 대통령 '운명의 날'이 당초 예상보다 늦어지면서 탄핵 찬반 집회 분위기는 가열되는 양상이다. 

'윤석열즉각퇴진·사회대개혁 비상행동'(비상행동)은 이날 오후 2시 광화문광장 북측에서 정치권과 종교계, 사회 주요 단체와 '윤석열 즉각파면 촉구 각계 긴급 시국선언' 기자회견을 열었다. 더불어민주당 국회의원 전원이 연명으로 뜻을 함께한다는 입장을 전했고 조국혁신당과 진보당, 기본소득당, 사회민주당도 참여했다. 

경찰 비공식 추산 1200명이 참석한 집회에서 이들은 "내란수괴 윤석열을 파면하라"며 "헌재는 탄핵소추안이 가결된 지 93일이 지난 오늘까지도 선고 일정조차 밝히지 않고 있다. 내란 세력들이 원하는 것처럼 3월말, 4월까지 이 상황이 이어진다면 우리 사회는 극심한 혼란에 빠질 수밖에 없다"고 강조했다. 

이어 "헌재의 파면 결정만이 극심한 혼란을 조기에 종식하고 시민의 잃어버린 일상을 돌려줄 수 있다"며 헌재의 신속한 선고를 거듭 촉구했다. 

탄핵 반대 단체들은 헌재 인근의 안국역 5번 출구에서 집회를 열었다. 자유통일당과 엄마부대 등은 지난 10일부터 이 곳에서 철야시위를 벌이는 중이다. 경찰 비공식 추산 300명의 참가자들은 태극기와 성조기를 들고 "탄핵 각하" "윤석열 만세" 등 구호를 외쳤다.

윤 대통령 지지자들로 구성된 대통령국민변호인단도 오전 9시부터 헌재 앞에서 탄핵 반대 릴레이 기자회견을 열었다. 탄핵반대범국민연합과 자유통일당도 각각  헌재 인근과 용산구 한남동 윤 대통령 관저 인근에서 탄핵 반대 집회를 열었다.

3월17일 서울 종로구 광화문광장에서 윤석열 즉각퇴진·사회대개혁비상행동 주최로 열린 윤석열 즉각 파면 촉구 각계 긴급시국선언 집회에서 민주당 박찬대 원내대표를 비롯한 참가자들이 구호를 외치고 있다. ⓒ 연합뉴스

경찰은 윤 대통령 석방을 기점으로 평일에도 집회 참가자가 늘어나는 점을 예의주시하며 선고일을 전후로 한 시점별 비상대응 전략을 수립 중이다. 8년 전 박근혜 전 대통령 파면에 반대하는 지지자들이 탄핵심판 선고 당일에만 4명이 숨진 전례가 있는 만큼 물리적 충돌과 인명피해를 최소화하는 방안에 총력을 기울인다는 방침이다.  

우선 경찰은 윤 대통령 선고일에는 '갑호비상'을, 전날에는 '을호비상'을 통해 비상체계를 유지할 방침이다. 가장 높은 단계의 비상근무 체제인 갑호비상이 발령되면 경찰력 100% 동원이 가능하고 경찰관들의 연차휴가가 중지된다. 선고 당일 전국적으로 기동대 337개 부대, 2만여 명이 투입될 것으로 예상된다. 

헌재 주변으로 기동대 투입과 안전펜스를 설치한 뒤 차벽으로 진입을 통제해 100m 인근을 사실상 '진공' 상태로 만들 계획이다. 헌재와 헌법재판관 안전 확보를 위해 전담 경호대와 형사, 경찰특공대도 전진 배치한다. 특공대를 헌재 내부 등 확대 배치하는 방안도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헌법재판소의 윤석열 대통령 탄핵 심판 선고가 임박한 가운데 3월17일 서울 종로구 헌법재판소 앞에서 국민의힘 김승수(왼쪽부터),권영진,김석기 의원이 탄핵 각하를 촉구하며 릴레이 시위를 이어가고 있다. ⓒ 연합뉴스

"서부지법 피습이 학습효과로…과격 행동 우려"

윤 대통령에 대한 탄핵심판 선고는 구속영장 발부 때와 달리 결과 공지에 시차를 둘 수 없는 상황인 점을 고려해 재판관들에 대한 경호를 강화하고 적극적인 경찰권을 발동해야 한다는 분석이 나온다. 

류삼영 전 총경은 이날 MBC라디오 《김종배의 시선집중》에 출연해 "상당히 걱정되는 상황"이라며 "서부지법 때도 경찰 차벽과 경찰력이 뚫렸고, 법원 내부가 완전히 유린이 된 상황이기 때문에 헌법재판관들은 그런 일이 없어야 될 것"이라고 우려했다. 선고 당일 헌재 주변으로 40만 명 안팎의 시민이 집결할 것으로 예상되는 만큼 경찰 인력 2~3만 명으로는 물리적 대응에 한계가 있을 가능성도 지적했다. 

류 전 총경은 "(윤 대통령 탄핵에) 반대하는 입장에서는 서부지방법원 피습 때 경험들이 학습효과로 인한 자신감으로 좀 더 과격한 행동으로 이어질 수 있다"며 "서부지법에서도 구속영장이 떨어졌다는 걸 알고는 (영장 발부) 판사를 찾으러 다니지 않았나. 만일 (탄핵이) 인용되면 많은 사람들이 난입해 헌법재판관을 찾아다닐 가능성이 있는 것"이라고 경고했다.

경찰도 여러 경우의 수를 고려하는 동시에 서부지법 폭력 난동과 박 전 대통령 탄핵 당시 상황을 반면교사 삼아 경찰력 투입과 운용에 적극 반영할 방침이다. 서울시도 시민 안전을 위해 선고 당일 안국역을 폐쇄한다고 밝혔다. 

헌법재판소의 윤석열 대통령 탄핵 심판 선고가 임박한 가운데 3월16일 서울 종로구 헌법재판소 울타리에 철조망이 설치되어 있다. ⓒ 연합뉴스

8년 전 악몽 반복 우려…경찰 버스 탈취하고 공격 선동

헌정사 첫 대통령 파면이 결정됐던 2017년 3월10일, 헌재의 선고가 나온 직후 헌재 일대는 순식간에 격앙된 지지자들이 뒤엉켰고 결국 다수의 사망자가 발생하는 참극으로 이어졌다. 

지지자 집회를 주도했던 '박근혜를 사랑하는 모임'(박사모) 회장 등에 대한 판결문에는 그 날의 상황이 자세히 담겼다. 선고 당일 오전 '대통령 박근혜를 파면한다'는 주문이 나오자 주최 측에서는 11시21분께 "국민 저항권을 발동할 것"이라면서도 "폭력을 쓰지 말자"며 격앙된 분위기를 가라앉히려 했다. 그러나 30분 후 분위기는 급반전 됐고 무대 위에서 "무조건 돌격, 헌법재판소가 죽든 우리가 죽든 돌격"을 외치기 시작했다.   

집회는 정오를 기점으로 급격히 폭력적 양상을 띄기 시작했다. 주최 측은 시위대를 막아선 경찰에 폭력을 가했고 물리적 충돌로 이어졌다. 

헌재로 향하려던 시위대는 경찰 차벽에 가로막히자 "트럭으로 밀어버리자. 밀면 경찰 압사" 등을 외쳤고 급기야 한 참가자가 경찰 버스에 올라타 차벽을 50차례 가량 들이받는 아찔한 상황이 이어졌다. 시위대는 충돌로 벌어진 차벽 틈을 비집고 경찰의 저지선을 뚫으려 했고, 경찰이 막아서면서 극심한 몸싸움이 벌어졌다. 

아비규환이 된 현장에서는 오후 12시28분께 경찰방송 차량 위에 있던 철제 스피커가 시위 참가자 머리 위로 떨어지면서 1명의 사망자가 발생했다. 집회 참가자들이 순식간에 몰려들면서 여러 명이 바닥에 쓰러졌고 3명이 추가로 목숨을 잃었다. 사상자가 속출하는 상황에서도 집회 참가자들을 자극하며 공격을 부추긴 주최 측은 "고인을 위해 청장년 50명이 앞으로 와 버스를 엎어야 한다"는 발언을 서슴지 않았다. 

결국 박 전 대통령 탄핵 선고 당일에만 4명이 숨졌고, 현장에서 크게 다친 1명도 한 달 후 사망한 것으로 조사됐다. 경찰관 33명을 포함해 총 63명이 크고 작은 부상을 입었다. 폭력 사태를 주도한 혐의를 받았던 정광용 박사모 회장은 대법원에서 징역 1년6개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았다. 입건된 30명 가운데 8명은 구속, 22명이 불구속 수사를 받았는데 버스로 차벽을 들이받았던 인물 외 나머지는 모두 재판에서 집행유예를 선고받았다.  

윤석열 대통령에 대한 탄핵심판 선고를 앞두고 서울 종로구 헌법재판소 주변으로 경찰 버스가 배치된 모습 ⓒ 연합뉴스

선고일이 임박해지면서 여야 모두 승복한다는 메시지를 내고 있지만, 윤 대통령은 직접적인 입장을 밝히지 않았다. 법원의 구속취소 결정과 검찰의 즉시항고 포기로 석방돼 헌재의 결정을 기다리고 있는 윤 대통령은 한남동 관저에 칩거하며 내란 형사재판 대응에 집중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윤 대통령 법률대리인단의 석동현 변호사는 지난달 19일 "헌법재판소 결과에 대통령이 당연히 승복할 것"이라며 "승복을 안 하거나 못하는 경우는 생각할 수 없다"고 밝힌 바 있다. 

여야 정치 원로들은 국회를 향해 윤 대통령 탄핵심판 결정 승복 결의문을 채택하라고 촉구하는 시국 수습 대국민 호소문을 발표했다. 이들은 "윤 대통령과 여야 당 대표 등 지도자는 헌재의 탄핵심판 결정이 자기 의견과 다르다는 이유로 이를 반대하거나 국민을 오도하는 일이 절대 없어야 한다"며 "대통령 탄핵심판이 어떻게 결정 나더라도 전 국민이 승복해 국가적으로 더 이상의 혼란과 갈등, 분열상이 나타나지 않길 바란다"고 호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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