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알앤비의 대명사 휘성을 보내며

아이즈 ize 김성대(대중음악 평론가) 2025. 3. 12. 1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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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즈 ize 김성대(대중음악 평론가)

사진출처=스타뉴스DB

단 한 번 실수도 용납 않겠다는 듯, 익명의 혀끝과 손끝들이 비수가 되어 또 한 사람의 가슴에 꽂혔다. 그들 죽음을 안타까워하는 대중은 본질적 사인(死因)에 대한 심증만 가졌을 뿐, 뚜렷한 물증이 없어 사태를 지켜보아야만 하는 무기력한 집단이 된 지 오래다. 휘성. 알앤비가 미국의 것인 줄만 알았던 시절, 그것이 한국인의 것이 될 수도 있다는 걸 증명한 가수. 떠나고 나면 그 사람의 진가가 더 뚜렷이 드러나는 건 얼마나 잔인하고 슬픈 일인가. 팔로알토, 버벌진트, 창모, 산이, 윤민수, 옥주현, 그리고 3월 15일 휘성과 합동 콘서트를 앞두고 있던 KCM이 공개적으로 고인을 추모했고, 결혼식에서 그의 축가를 받았거나 음악을 통해 그와 만난 사람들이 저마다 SNS에서 고인을 추억했다. 물론 팬들을 비롯한, 드러나지 않은 훨씬 더 많은 사람들의 작별 인사를 받으며 휘성은 눈을 감았으리라. 한때는 악플에 상처받아 일주일 동안 밥도 먹지 않았다는, 소심하고 내성적이었던 고인. 도대체 무엇이 그를 견디지 못하게 한 것일까. 노래가 아니면 할 수 있는 게 없다고 말한 그가 남긴 음악을 들으며 이 의문을, 황망함을 걷어내 보려 한다.

안되나요

일가를 이룬 가수에겐 시그니처 노래가 한 두 곡씩은 있다. 휘성에겐 '안되나요'가 그런 곡이다. 이 노래는 보이즈 투 멘에게 'End of the Road'가, 마이클 잭슨에게 'Billie Jean'이 갖는 의미와 같은 의미로서 휘성 곁을 지켰다. 대중에겐 휘성 하면 '안되나요'였고, '안되나요'는 2000년대를 대표한 한국 알앤비 발라드의 정수였다. 먹먹하면서 후련한 휘성의 역설적 음색이 제자 둘과 교사 사이의 삼각관계를 둘러싼 뒤틀린 짝사랑의 감정을 드라마타이즈 형식으로 담아낸 뮤직비디오 위로 넘실거렸을 때, 한국 대중은 알앤비라는 장르에 흠뻑 취했다. "대중들이 들어 주지 않으면 가수가 아니다." 고인이 생전에 말한 대로 '안되나요'는 발표한 그해 열린 한일 월드컵만큼 유명했던 2002년의 후렴구를 남기며 휘성을 진정한 '가수'로 만들어주었다. '안되나요'의 부제는 '화양연화'. 이 노래는 실제 휘성의 가수 인생 중 가장 아름다운 시절로 우리 기억에 남아 있다.

With Me

휘성은 생전에 그루비한 미들 템포 트랙 'With Me'가 자신의 진정한 음악 취향이었다고 말했다. 그래서일까. 간절한 백킹 코러스 멜로디를 찢는 현란한 프리 스타일 보컬은 물을 제대로 만난 가수의 자신감과 여유로 가득하다. 그는 'With Me'와 'Insomnia'가 잘 된 이유가, 곡들 안에서 자기표현을 주저하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자평한 적이 있다. 자신의 예명을 쓴 독립 레이블 리얼슬로를 설립해 발표한 '아로마'도 비슷한 이유로 그가 아꼈던 곡이다. 'With Me'가 수록된 'It's Real' 작업 당시 "나는 왜 흑인이 아닐까"라는 고민까지 했었다는 휘성은 이런 말도 했다. "멋있는 게 뭔지 알려면 멋있지 않은 곳에서 멋있는 걸 바라봐야 한다." 멋스러움은 언감생심, 삶 자체를 감당하기에도 빠듯하게 일상에 치여 살던 대중 앞에 휘성은 'With Me'를 가져가 멋이 무엇인지를 제대로 들려주고 또 보여주었다.

일년이면

2005년 서울의 한 인터넷 음반몰에서 일할 때 나는 휘성의 당시 새 앨범 'Love... Love...? Love...!'가 무섭게 팔려나가는 모습을 실시간으로 본 적이 있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때가 휘성의 전성기였던 것 같다. 그만의 애절한 감성이 듬뿍 스민 '일년이면'은 바로 그 대량으로 포장돼 나가던 휘성의 네 번째 앨범에 수록된 곡이다. 가수로서뿐 아니라 작사가로서도 남다른 재능을 지녔던 그는 실제 여자친구와 헤어진 뒤 1년이 지났을 때 '일년이면'의 가사를 썼다. 1년이 지나니 절대 잊히지 않을 것 같았던 여자친구의 입술과 목소리가 거짓말처럼 잊혀가더란 얘기였다. "그때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내가 원하건 원하지 않건 모든 것은 지워진다는 거." 휘성은 그 슬픈 깨달음을 가사로 남겨 간직했다. 물론, 팬들은 그를 기억에서 쉽게 지워낼 순 없겠지만.

사랑은 맛있다

휘성은 한때 완벽주의자처럼 보였다. 춤, 노래, 랩, 작사와 작곡, 프로듀싱까지 모두 섭렵하겠다는 의지를 불태웠다. 그것은 자신의 음악이 답습과 정체에 갇히는 데 대한 거부반응에서 비롯됐다. 그는 수백억 원을 번다해도 한 곳에 갇히거나 한자리에서 제자리걸음은 싫었다. 베토벤의 '비창 소나타'를 샘플링 한 '사랑은 맛있다'는 휘성의 그런 음악가로서 정체성 고민이 시작된 어느 시점에 대중에게 던져진 곡이다. 그가 느린 열창 대신 들뜬 춤을 추고 랩을 하는 이 곡은 "휘성은 어두운 음악을 한다"는 대중의 선입견을 깨기 위해 스스로 알을 깨고 나온 노래였다. 하지만 그 변신이 낯설고 부담스러웠는지 팬들 사이에서도 호불호는 갈렸고, 평단의 평가 역시 싸늘했다. 그는 한 인터뷰에서 스스로를 '잘됐다 안됐다 하는 가수'라며 자조한 적이 있는데, 돌이켜보면 '사랑은 맛있다'에서 죽기보다 싫었던 답습과 정체를 떨쳐낸 면에선 자부심을 가졌어도 됐다. 휘성은 필요 이상으로 스스로에게 너무 엄격했다.

결혼까지 생각했어

거대한 현악과 터프한 록 기타, 기름진 알앤비 힙합 그루브를 모두 담은 '결혼까지 생각했어'의 가사는 휘성이 자신의 10년 지기 영어 교사 친구 이야기에서 비롯한 것이다. 친구가 너무 사랑했던 여자 친구와 말도 안 되는 이유로 헤어진 사연에 영감을 받은 가사였던 것. 휘성에 따르면 남자는 "사랑했다"는 표현만으로 부족할 때 "결혼까지 생각했다"라는 말을 한다. 내가 얼마나 진지했는지, 내가 얼마나 사랑했는지를 상대에게 알려주는 단 하나의 표현이라는 얘기다. 곡의 뮤직비디오에서 휘성의 연기와 몸짓이 다소 과장된 듯 보이면서도 절도 있고 단호했던 건 그래서다. "휘성은 정말 무섭게, 하루 종일 열심히 연습만 하는 후배였다." 물론 이 노래의 하이라이트는 김범수의 증언이 증명되는, 후반부에서 솟아오르는 휘성의 압도적 절창이다. 하지만 이제 우린 그의 절창을 더는 라이브로 들을 수 없다. 고인의 명복을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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