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30 달라졌다…취준생 80% "블루칼라 기피 안한다"
배윤슬(32)씨는 2017년 연세대 사회복지학과를 졸업하고 일반 사무직으로 사회생활을 시작했다. 그런데 2년가량 만인 2019년 도배사로 진로를 틀었다. 노력을 들인 만큼 수익을 거둘 수 있다는 게 매력이었다. 6일 중앙일보와 인터뷰한 배씨는 7년차 팀장급 도배사로 성장해 있었다.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인스타그램을 통해 일감을 수주하는 배씨는 “사무직으로 일했을 때보다 돈을 평균적으로 50%가량 더 번다”고 말했다.
2030세대 사이에서 육체노동 위주인 ‘블루칼라’ 일자리에 우호적인 트렌드가 자리 잡아가고 있다. 중앙일보가 설문조사 기업 오픈서베이에 의뢰해 지난 2일까지 2030세대 1000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한 결과 53.4%가 블루칼라 직종에 대한 인식으로 “긍정적”이라고 답했다. 44.4%가 “중립”이었고, 2.2%만 “부정적”이었다. 이병훈 중앙대 사회학과 명예교수는 “한국은 조선 시대부터 사농공상(士農工商) 문화에 따라 블루칼라를 낮잡아 보는 경향이 뿌리 깊었는데, 최근 젊은 층 사이에서 인식이 개선된 것으로 보인다”고 풀이했다.
미취업 상태인 2030세대로 한정해 “향후 블루칼라 직종으로 취업하는 건 어떤지” 물었더니, 28.7%가 “긍정적”이라고 답했다. 51.9%가 “중립”, 19.4%만 “부정적”이었다. 긍정적이라고 답한 이들에게 그 이유를 질문한 결과 47.2%가 도배사 배씨처럼 “노력한 만큼 소득을 얻을 수 있을 것 같다”고 밝혔다. 가장 임금이 높은 블루칼라 일자리로 알려진 특고압 케이블 작업공의 경우 하루 8시간씩 한 달(근무일 20일 기준) 동안 일하면 평균 840만원을 벌 수 있다.
또한 블루칼라를 긍정적으로 보는 이유로 “조직생활 스트레스(실적·승진 압박 등)가 덜할 것 같다”(21.3%)는 답변 비중도 컸다. 일과 개인생활을 엄격히 구별하고 부당한 대우에 불만을 표현하는 데 익숙한 2030세대들의 특징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육체노동 자체의 매력이 있다”(12.4%)는 응답도 상당했다. 타일공 교육을 받고 있는 정모(35)씨는 “내가 땀 흘린 만큼 세상에 직접적으로 도움을 준다는 느낌을 얻고 싶었다”고 말했다. 여기에 정년 없이 평생 직장으로 일할 수 있는 점도 블루칼라의 매력이다. 최근 대기업 화이트칼라 일자리를 중심으로 4050세대 상당수가 회사에서 떠밀리는 ‘신(新)사오정’ 시대가 펼쳐지고 있는 점을 고려하면 블루칼라의 매력은 더욱 상승한다. 화이트칼라에 비해 시간 활용이 유연하다는 점 역시 블루칼라의 장점으로 꼽힌다.
가장 일하고 싶은 블루칼라 업종으로 산업 생산(28.1%) 분야가 꼽혔다. 이와 관련해 2023년 초 현대차가 생산직 신입사원을 10년 만에 뽑았을 때 채용 홈페이지가 마비되며 ‘킹산직’이라는 별명을 얻었다. 억대에 가까운 연봉과 정년까지 다닐 수 있다는 안정성이 매력으로 꼽혀서다.
현재 화이트칼라 직종에서 일하고 있는 설문조사 참가자 가운데 35.5%는 블루칼라 직종으로 전직하는 데 “긍정적”이라고 밝혔다. 광고대행사에서 마케터로 일하는 김모(38)씨는 “인공지능(AI)이 내 현재 일자리를 위협하는 거 같아 요즘 인간만이 할 수 있는 블루칼라 업종으로 전직을 진지하게 알아보고 있다”고 밝혔다. 시장분석 업체인 IDC는 “2027년까지 일상적인 마케팅 업무의 30%를 생성형 AI가 대체할 것”이라고 전망한다.
2030세대가 블루칼라로 눈을 돌리는 현상은 블루칼라 취업 비중의 증가세로 이어진다. 6일 통계청 마이크로데이터를 분석한 결과 4년제 대졸 이상 학력의 39세 이하 취업자 가운데 단순노무 종사자가 차지하는 비율은 2014년 연평균 1.52%에서 2023년 2.57%로 뛰었다. 같은 기간 고숙련 블루칼라 중심인 기능원 및 관련 기능 종사자 비율은 2.34%에서 2.77%로 올랐다. 송준행 통계청 고용통계과장은 “10년 사이 산업 구조의 변화에 따른 영향도 고려해야 한다”고 말했다. 가령 2020년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와 맞물려 배달대행 산업 등이 급성장한 결과 블루칼라 일자리의 공급이 수요를 창출한 면도 있다는 이야기다.
해외에선 젊은 층의 블루칼라 선호 현상이 더욱 두드러진다. 미국 경제지 월스트리트저널은 지난해 “미국에서 대학 진학 대신 기술직을 선택하는 Z세대(1990년대 중반부터 2010년대 초반 태어난 세대)가 늘고 있다”고 보도한 바 있다. 그러면서 이들을 ‘공구벨트 세대’(Toolbelt generation)라고 이름 붙였다. 공구벨트 세대들은 ‘비싼 대학 학비를 고려하면 대학 진학 후 화이트칼라로 일하는 것보다 고등학교 졸업 후 바로 블루칼라로 일하는 게 생애 전체적으로 이익이 더 크다’고 판단하는 것으로 풀이된다.
앞으로 한국도 청년들의 블루칼라 선호 현상이 심화할 가능성이 크다(오계택 한국노동연구원 선임연구위원)는 전망이 나온다. 저성장 고착화에 기업의 고용 창출 능력 저하, AI 확산 등이 맞물리면서 양질의 화이트칼라 일자리 수가 점차 줄어들 것으로 예측돼서다. 이는 젊은 층들이 비자발적으로 블루칼라로 몰리게 할 요인이다. 반면 블루칼라 일자리는 젊은 층을 더욱 끌어당길 수 있다는 분석이다. 저출산에 따른 생산가능인구 감소와 고령화로 젊은 블루칼라 노동자에 대한 수요가 확대돼 임금이 더 오를 것이라는 판단에서다.
박지순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임금이 상대적으로 낮은 저숙련 블루칼라 일자리는 외국인 노동자들이 차지하고, 고임금의 고숙련 블루칼라 일자리엔 내국인 젊은 층이 몰릴 것으로 보인다”고 내다봤다.
세종=김민중 기자 kim.minjoong1@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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