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63일 진통제 맞고, 130번 CT 찍고...생명 위협하는 의료쇼핑 실태

신성식 2024. 12. 9. 16: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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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수치료 장면. [중앙포토]

환자의 '의료 쇼핑'의 대명사는 물리치료·도수치료이다. 70대 여성은 2022년 292일 동안 1216회 물리치료를 받았다. 하루 평균 병원 4.2곳을 다녔다. 무릎·어깨·허리·척추 등에 치료를 받았다. 하루 7개 병원에 다닌 적이 있는데, 6곳에서 표층열치료를 받았고 4곳에서 심층열치료를 동시에 받았다. 거의 안마 받는 것처럼 다녔다.
다만 과도한 물리치료가 생명을 위협하지는 않는다. 그런데 안전을 위협하는 의료 쇼핑이 심각한 것으로 드러났다.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은 9일 국민의힘 안상훈 의원이 주최한 토론회에서 이 같은 위험한 의료 과다 이용 실태를 공개했다. 한 광역시에 사는 50대 남성은 2022년 설·추석만 빼고 363일 병의원(하루 평균 8.2곳)에서 트라마돌이라는 해열진통소염제 주사를 2249번 맞았다. 관절염·근육손상·등통증 등이 있었고, 감기에 걸려도 맞았다. 트라마돌은 미국 마약단속국(DEA)에서 남용·의존을 우려해 유사 마약으로 분류해 규제한다. 1회 50~100mg, 하루 400mg이 허용치이다. 이 환자는 52회 초과 투여했다. 하루 10시간에 걸쳐 11번(550mg) 맞기도했다. 그는 지하철 노선대로 병의원을 돌아다녔다.
트라마돌은 중독성이 강해 단기간 써야 한다. 장기 주사하면 붕 떠 있는 느낌이 들어 마약 효과가 난다. 중추신경계 이상 반응을 야기해 흥분·착란·환각 등의 증세를 야기하고 심각한 호흡 곤란, 발작이 나타나고 의식을 잃고 혼수상태에 빠지고 경련이 일어난다. 심평원에 따르면 2022년 150~365회 의료기관을 방문한 10만 6640명(암 환자 제외)인데, 이 중 60%가 트라마돌 주사를 월평균 4회 맞았다. 365회 넘게 병원을 찾은 2462명의 75%가 월평균 11.5회 맞았다.
영상단층촬영(CT) 과다 이용도 심각하다. CT를 한 번 찍으면 0.6~10mSv의 방사선에 노출된다. 질병관리청은 연 1mSv를 한도로 제시한다. 국제방사선방호위원회 권고에 따르면 연간 100mSv 넘는 방사선에 노출되면 암 발생 위험이 커진다. 노출량에 따라 백혈구 감소, 구토 증세, 불임 등이 나타나고 심하면 사망에 이를 수도 있다. 심평원은 연 10회 이상 찍으면 위험해질 수 있다고 본다.
2022년 10회 이상 찍은 환자가 9만 9819명이다. 이 중 60회 넘게 찍은 환자가 32명, 40~59회 228명, 30~39회 789명이다. 50대 뇌출혈 환자는 2022년 한 병원에서 130회 찍었다. 어떤 달에 36회 찍은 적도 있다. 머리 117회, 가슴 10회, 복부 3회 등이다. 그 병원의 여러 과에서 찍었다고 한다. 결석 및 골반 통증 등을 앓는 40대 남성은 25개 병원을 돌며 30번 찍었다. 지영건 차의과대 예방의학과 교수는 이날 토론회에서 "CT를 이렇게 많이 찍으면 갑상샘암에 걸릴 수도 있다"고 말했다.
허리 등에 통증주사를 하는 신경차단술도 문제다. 외래 방문 횟수가 150~365회인 환자의 50%가 신경차단술 주사를 맞았다. 70대 남성은 2022년 하루 최대 4개 병원을 돌며 670회 신경차단술을 받았다. 이 주사에는 마취제와 스테로이드가 들어간다. 스테로이드를 장기간 쓰면 근육이 늘어나고 소화 불량 및 궤양, 당뇨병·고혈압·녹내장·백내장·골다공증 등의 부작용이 나타난다.
이런 '위험 의료쇼핑'이 성행하는 이유는 환자가 위험성을 잘 모르기 때문이다. 심평원이 과다 이용 환자에게 "왜 이렇게 많이 이용하느냐"고 물었더니 "내 맘대로 하는데 왜 그러냐"고 오히려 화를 냈다고 한다. 더 큰 문제는 의료기관이 환자의 과다 이용 상황을 모른다는 점이다. A의원에서 트라마돌을 맞고 한 시간 후 인근 B의원에 가더라도 B의원은 이런 사실을 알 길이 없다. 실시간으로 확인하는 시스템이 없다.
지영건 교수는 "최근의 과잉 의료 양상은 의료기관이 주도하는 측면이 적지 않지만, 환자의 의료 쇼핑 또한 무시할 수 없다"며 "사전에 정보를 제공하고 감시하는 체계로 강화하되 법적 근거와 기준을 마련해야 한다"고 말했다. 지 교수는 "환자별 진료 누적 횟수를 실시간으로 점검하는 시스템을 도입하고 환자가 스스로 이용량을 확인할 수 있는 체계를 만들어야 한다"며 "CT 과다 촬영에 의한 방사선 피폭 위해성을 널리 알리고 피폭량 측정 프로그램을 병원에 갖추게 해야 한다"고 말했다.
참고할 만한 제도가 있다. 한방 추나요법을 건강보험 적용하면서 연간 20회로 제한했다. 심평원이 실시간으로 의료기관에 환자별 이용 횟수 정보를 제공한다. 식품의약품안전처는 마약류통합관리시스템(NIMS)에서 의료기관이 펜타닐이라는 마약류를 처방할 때 개별 환자의 1년 치 내역을 확인할 수 있게 지원한다. 시행한 지 6개월 됐다.

신성식 복지전문기자 ssshi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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