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과 늦은 AI 신약 개발사들…몸집 불려 버틴다
1년 새 AI 신약기업 세 곳 인수
“국내서도 비슷한 상황 일어날 수도”
인공지능(AI)이 신약 개발의 무기로 떠오른 가운데 미국에서 대표적 AI 신약 기업 두 곳이 합병했다. 업계는 수익성 측면에서 한계에 다다른 AI 신약 개발업체들이 인수합병(M&A)으로 몸집을 키우는 생존 전략을 선택했다고 본다. 국내에서도 관련 기업들이 미국의 전철을 밟을지 모른다는 예측이 나온다.
지난 8일(현지 시각) 미국 AI 신약 개발 기업인 리커전 파마슈티컬즈(Recursion Pharmaceuticals)는 역시 AI 신약 기업인 익센시아(Exscientia)를 6억 8800만달러(한화 9500억원)에 인수한다고 발표했다. 리커전은 미국 반도체기업 엔비디아에서 투자를 받은 기업으로, AI 신약 개발 분야에서 유망한 기업으로 꼽힌다.
AI는 신약 개발 비용과 시간을 크게 줄일 무기로 떠올랐다. AI는 수많은 화합물과 질병과 연관된 인체 단백질의 구조 정보를 담은 빅데이터를 학습해 스스로 인간이 미처 알아내지 못한 패턴을 파악할 수 있다. 약으로 공략할 인체 단백질을 지정하면 AI가 새로운 화합물을 제시한다. 컴퓨터 가상실험과 문헌 분석을 통해 약효도 사전에 거의 정확하게 예측한다.
리커전은 익센시아 인수와 함께 앞으로 1년 6개월 동안 10건 이상 신약 후보물질의 임상시험에 착수하겠다는 목표도 세웠다. 크리스 깁슨 리커전 최고경영자(CEO)는 “이번 합병은 고품질 의약품을 저렴하게 제공하기 위해 약물 발견을 AI로 산업화하려는 우리의 사명과 일치한다”며 “차세대 생명공학 기업의 가장 좋은 사례를 계속 구축하게 돼 기쁘다”고 설명했다.
리커전은 이번 합병으로 시가총액 24억 4000만달러(3조 3000억원)인 최대 AI 신약 개발기업이 된다. 회사는 앞서 지난해에 또 다른 AI 신약 업체인 밸런스 디스커버리(Valence Discovery)와 사이클리카(Cyclica)를 8750만달러(1200억원)에 인수했다. 한 회사가 1년 남짓한 기간에 같은 업종의 회사 3곳을 인수한 셈이다.
최근 AI는 신약 개발의 강력한 도구라는 평가를 받았다. 한국제약바이오협회에 따르면 AI 신약 개발 시장은 지난해 6억980만달러(8400억원)에서 2027년 40억 350만 달러(5조 5000억원)로 성장할 것으로 전망된다. 연평균 성장률은 45%에 달한다.
AI 신약을 처음 출시하기 위한 경쟁도 치열해지고 있다. 구글 자회사인 딥마인드는 지난해 말 저분자와 단백질 결합을 예측할 수 있는 AI인 ‘알파폴드 레이티스트’를 출시했다. 알파폴드로 발굴된 저분자 화합물은 미국 일라이 릴리와 스위스 노바티스에 제공된다. 특히 일라이 릴리는 AI 신약 기업 슈뢰딩거와도 저분자 의약품 후보 물질을 발굴하는 계약을 맺고 AI 치료제를 개발을 가속화하고 있다.
리커전과 익센시아의 합병은 시장 성장에 따른 성과보다는 생존 전략이라는 분석이 더 지배적이다. AI를 사용해 후보물질을 개발해도 임상시험을 거쳐 신약 개발 성과가 가시화되기까지 시간이 걸리는 만큼, 관련 기업들이 사업 운영의 어려움을 겪다 합병을 선택했다는 설명이다. 현재 전 세계에서 AI 기술로 개발해 허가를 받은 약물은 없다. 실제로 리커전과 익센시아는 합병 전 각각 주가가 공모주 대비 대폭 하락했고, 재정적 어려움을 겪었다.
한 제약업계 관계자는 “이번 합병은 AI 신약 개발 분야를 독점하기보다 오히려 사업적으로 어려움을 겪는 기업이 몸집을 불려 큰 제약사와 딜(계약)을 할 때까지 버티는 게 목적일 것”이라며 “AI 신약 개발업체들이 점차 자금 규모가 떨어지고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고 말했다.
같은 맥락에서 국내 AI 신약 업체들도 인수합병에 나설 수 있다. 국내 AI 신약 개발업체는 신테카바이오와 파로스아이바이오, 보로노이가 대표적이다. 이외에도 비상장사인 온코크로스, 스탠다임, 팜캐드가 AI를 이용해 치료제 개발에 나섰다. 이들 모두 미국 AI 신약 기업들처럼 자금이 떨어지면 버틸 수 있는 방법을 모색해야 한다.
AI 신약 개발 시장규모가 미국보다 훨씬 작은 한국에선 대형 제약사들이 관련 업체들을 인수할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온다. 국내 대형 제약사 중에는 유한양행과 대웅제약, JW중외제약이 AI 신약 개발에 호의적이다. 특히 JW중외제약은 연구법인 자회사 C&C신약연구소를 통해 AI 플랫폼을 활발하게 이용하고 있다.
제약업계 관계자는 “한국은 AI 신약 업체들의 규모가 작아 같은 업종의 기업을 인수할 여력이 되지 않을 것”이라며 “대형 제약사들을 중심으로 AI 신약 업체 인수합병이 진행되고 임상시험까지 진행하는 시나리오가 될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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