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J제일제당도 못 살렸다…확 식어버린 '밀키트' 시장
외식·완제품 간편식에 밀려
대기업 밀키트도 축소 단계
코로나19 시대의 최대 수혜자 중 하나였던 '밀키트' 시장이 흔들리고 있다. 재택근무와 사회적 거리두기의 영향에 성장했던 집밥 수요가 엔데믹과 함께 외식으로 돌아가면서 밀키트 수요가 줄었다는 분석이다. 간편하고 빠르게 먹을 수 있는 완조리 가정간편식(HMR)의 품질이 최근 들어 크게 개선된 것도 이유다.
집밥의 미래
밀키트는 코로나19 시대에 크게 인기를 끈 가정간편식의 일종이다. 이미 조리가 완료돼 바로 먹을 수 있거나 간단하게 데우기만 하면 되는 기존 간편식과 달리, 채소와 육류 등 원재료를 따로 담아 볶거나 끓이는 등의 조리를 한 후 먹는 제품이다.
유로모니터에 따르면 국내 밀키트 시장 규모는 2018년 345억원에서 지난해 3800억원 규모로 10배 이상 성장했다. 코로나19로 재택근무·화상회의가 일상화하면서 집에서 밥을 해 먹지 않던 사람들이 밀키트를 이용해 집밥을 즐기기 시작한 영향이다.
원물을 그대로 담은 만큼 기존 간편식보다 맛이 뛰어나고 요리에 익숙하지 않은 사람들도 쉽게 만들 수 있어 집밥 트렌드와 함께 고속 성장을 이뤘다. 어느 정도 요리를 할 수 있는 사람이더라도 만들기 까다로운 해외 요리를 남는 재료 없이 만들 수 있다는 것도 매력 포인트였다.
밀키트 시장의 선두주자는 '프레시지'였다. 2018년 200억원대였던 프레시지의 매출은 이듬해 700억원대로 급증했다. 2020년엔 1000억원, 2021년엔 2000억원을 돌파했다. '허닭', '테이스티나인' 등 경쟁사들을 집어삼킨 2022년엔 5000억원을 돌파, 매년 매출이 배 이상 늘었다. 1~2인 가구와 맞벌이 부부 증가는 곧 밀키트 시장 성장의 확고부동한 증거로 인식됐다.
밀키트 시장의 급성장에 CJ제일제당 '쿡킷', hy '잇츠온', GS리테일 '심플리쿡' 등 대기업도 손을 뻗었다. 맛 품질이 따라오지 못한 완제품 간편식을 밀키트가 대체할 수 있을 것으로 봤다. 이마트, 롯데마트, 홈플러스 등 대형마트들도 신선식품 코너를 크게 할애해 밀키트 존을 만들었다.
장점이 단점으로
하지만 밀키트의 고속 성장은 엔데믹과 함께 끝났다. 자유롭게 거리를 돌아다닐 수 있게 된 소비자들은 다시 맛집 앞에 줄을 서기 시작했다. 2~3년간 계속됐던 밀키트의 인기는 곧 '식상함'으로 이어졌다. 웬만한 밀키트 메뉴를 한 번씩 다 먹어본 소비자들은 금세 지루함을 느꼈다. 메뉴 구성도 '거기서 거기'라는 인식이 생겼다.
코로나19 동안 노하우를 축적한 식품 제조사들이 퀄리티 높은 완제품 간편식을 잇따라 내놓은 것도 밀키트 시장의 정체를 불러왔다. 간단하게 요리하는 재미는 '귀찮음'으로 바뀌었고 신선한 원재료가 들어 있다는 장점은 '보관이 불편하다'는 단점으로 치환됐다.
높은 가격도 발목을 잡았다. 밀키트는 각 원재료를 별도 공급처에서 공급받아 포장하는 방식이다. 한 번에 많은 종류의 원재료를 매입해 제조하는 일반적인 가공식품보다 단가가 높을 수밖에 없다. 그러다보니 간단한 찌개류·반찬류는 가격 경쟁력이 떨어진다. 일반적인 식재료로 만들기 어려운 해외 음식 수요는 외식업계가 흡수했다.
코로나19 기간 동안 쌓여왔던 친환경에 대한 관심도 밀키트 시장의 발목을 잡고 있다. 밀키트는 모든 재료가 별도의 비닐이나 플라스틱에 포장되다. 따라서 완성된 메뉴의 양 대비 쓰레기가 많이 나온다. 실제로 한 부대찌개 밀키트 제품의 경우 재료를 각각 담은 플라스틱 포장이 11개, 제품을 담는 플라스틱 트레이와 뚜껑이 각각 1개, 제품 설명이 담긴 종이 1개 등 총 14개의 쓰레기가 나왔다. 이 메뉴는 모든 재료를 한 번에 냄비에 넣고 끓이는 방식이다.
발 빼는 기업들
최근 밀키트 시장의 성장세는 예상을 크게 밑돌고 있다. 밀키트 시장의 성장이 한창이던 2021년, 업계에서는 2025년 시장 규모가 7000억원을 돌파할 것으로 전망했다. 현재 전망은 4000억원대다. 수십 %를 넘나들던 성장률도 매년 줄어들고 있다. 올해엔 한자릿수 성장이 예상된다.
밀키트 시장에 뛰어든 기업들의 움직임도 예전같지 않다. 업계 선두인 프레시지는 지난해 매출이 전년 대비 38% 줄어들었다. 순손실이 2200억원을 넘었다. 정중교 프레시지 창업자는 지난 4월 대표 자리에서 물러났다. 시장 성장을 전망하고 허닭, 테이스티나인 등 경쟁사를 인수한 게 독이 됐다는 분석이다.
이마트에서도 밀키트 매출 성장률이 2022년 상반기 6.7%에서 지난해 상반기 2.1%로 줄었고 올해 들어서는 전년 수준을 유지하는 데 그치고 있다.
대기업들도 사업을 축소하고 있다. CJ제일제당은 이달부터 밀키트 전문 앱 쿡킷의 운영을 종료했다. 30여 가지가 넘던 쿡킷 밀키트 제품은 대형마트 판매를 염두에 둔 냉동 8개 제품만 CJ더마켓에서 판매되고 있다. 이에 업계에서는 CJ제일제당이 사실상 밀키트 사업을 접는 수순인 것으로 보고 있다. 현대백화점도 2018년 선보인 밀키트 브랜드 '셰프박스'를 일찌감치 접었다. 대학가와 주거지역을 중심으로 늘어나던 무인 밀키트 매장도 감소세로 돌아섰다.
업계에선 밀키트 시장이 유통망을 갖춘 대형마트 제품을 중심으로 일부 영역에서만 살아남을 것으로 전망한다. 실제로 이마트의 '피코크', 롯데마트의 '요리하다', 홈플러스의 '홈밀' 등 PB 밀키트는 꾸준한 매출을 올리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업계 관계자는 "밀키트는 요리에 관심이 있지만 요리를 잘 하지는 못하는, 과도기적인 단계에 있는 소비자에게 어필할 수 있는 제품"이라며 "가격이나 맛을 중시한다면 직접 재료를 구입해 요리를 하는 방향으로, 편의성이 중요하다면 완제품 간편식을 구매하는 방향으로 흘러가기 때문에 소비층을 붙들어놓기 어려운 카테고리"라고 말했다.
김아름 (armijjang@bizwatch.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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