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것도 배운 게 없단 말인가 [김누리 칼럼]

한겨레 2024. 6. 19. 07: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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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비판과 관용의 정신이 독일을 성숙한 민주사회로 만들었다. 특히 비판적인 언론과 깨어 있는 대학이 위기의 시대에 민주주의를 지키고 있다. 그들은 역사에서 배운 것이다. 그런데 우리는, 비극적 역사에서 무엇을 배웠는가.
독일 건국 75년을 맞아 지난달 18일 시사주간지 슈피겔이 발행한 표지로 ‘독일 건국 75년, 아무것도 배운 게 없단 말인가?’라는 제목을 달았다. 슈피겔 누리집

김누리 | 중앙대 교수(독문학)

흑적황 삼색의 독일 국기가 덮고 있는 하켄크로이츠(나치의 상징·갈고리 십자가)가 불길하게 그러나 또렷하게 윤곽을 드러내고 있다. ‘독일 건국 75년, 아무것도 배운 게 없단 말인가(nichts gelernt?)’ 상단 검은 배경색 위에 쓰여 있는 문구다. 지난달 발간된 독일 시사주간지 ‘슈피겔’의 파격적인 표지다.

독일에선 25년 주기를 각별히 기념한다. 2020년엔 2차대전 종전 75주년 행사를 특별하게 치렀다. 이번엔 독일 건국 75주년이다. 1949년 5월23일 기본법(헌법)이 제정되면서 독일연방공화국(서독)이 건국된 지 75년이 흐른 것이다. 프랑크발터 슈타인마이어 대통령은 기념사에서 기본법의 의미를 높이 평가했다. “이 헌법은 독일이 만들어낸 최고의 것 중 하나입니다.” 수상 관저와 연방의회가 있는 부지에선 ‘기본법 75년, 민주주의를 즐기자’는 축제가 열리기도 했다.

이해할 만한 일이다. 기본법의 틀 안에서 독일은 20세기 ‘세계 최악의 전범 국가’에서 21세기 ‘세계 최고의 모범 국가’로 기적적인 변신을 이뤘기 때문이다. 아데나워의 ‘라인강의 기적’에서 브란트의 ‘복지국가’를 거쳐, 헬무트 콜의 ‘독일 통일’까지 현대 독일이 일궈낸 이 모든 성취는 바로 기본법의 바탕 위에서 가능했던 것이다. 그렇기에 슈피겔의 지극히 부정적인 표지는 실로 충격적이다. 독일 건국 75년의 의미를 그들은 ‘성취’보다는 ‘위기’의 관점에서 살핀다. 사실 독일만큼 ‘역사로부터 잘 배운 나라’도 많지 않다. 독일은 철저한 과거 청산을 통해 도덕적 권위를 회복한 국가다. 그런 독일에서 극우 성향 정당의 부상을 경고하며 ‘역사에서 아무것도 배운 것이 없다’고 거센 비판을 가하는 것이다.

나는 이런 신랄한 자기비판이야말로 오늘의 독일을 만든 가장 중요한 요인이라고 생각한다. 특히 슈피겔은 독일 건국 이후 줄곧 자기비판과 자기성찰의 자세를 일관되게 견지하여 독일 사회의 ‘도덕적 심급’으로 자리 잡았다. 그들은 오늘날 독일이 이룬 거대한 성취를 상찬하기보다는 그 배후에서 꿈틀거리는 불길한 위험을 경고하는 것이 언론의 일차적 사명이라고 본다.

자기비판과 자기성찰은 오늘날 독일에서 하나의 문화로 정착된 것 같다. 연구 학기를 맞아 방문한 함부르크대학과 주변의 지식인 사회는 이런 점에서 참으로 인상적이다. 자기비판과 자기성찰의 지성적 문화가 폭넓게 뿌리내리고 있다. ‘자유지상주의적 권위주의’라는 난해한 제목을 단 대학 공개강연의 강의실이 미어졌다. 절반 이상이 중년과 노년의 청중이었다. 함부르크 시내 ‘탈리아 극장’에서 진행된 북 콘서트 ‘슈트라이트바’에서는 자본주의 비판을 주제로 치열한 토론이 벌어졌는데, 여기서도 빈자리를 찾을 수 없었다. 함부르크 사회연구소에서 개최한 ‘프랑크푸르트학파의 역사’ 강연회 역시 인산인해였다. 이런 전문적, 이론적 성격의 강연에 사람들이 몰려드는 모습이 기이했다. 이러한 지적 성찰의 문화야말로 독일이 지닌 힘의 진정한 원천일 것이다.

성찰적 자기비판은 유럽의회 선거 직후 만난 교수들의 모습에서도 확연했다. 극우 정당이 1위를 차지한 프랑스, 이탈리아, 오스트리아보다는 나은 결과라지만, 독일에서도 극우적 성향의 ‘독일대안당’(AfD)이 2위를 차지한 선거 결과에 대해 교수들은 한결같이 격앙된 반응을 보였다. ‘재앙’, ‘파탄’, ‘충격’, ‘경악’ 등의 용어를 써가며 격렬한 비판과 깊은 절망감을 토로했다. 나는 독일 지식인의 이러한 비관주의와 절망 의식에서 오히려 왠지 모를 희망을 느꼈다.

이처럼 자기비판에 가차 없는 독일인들이 놀랍게도 타인에 대해서는 무척 관대했다. 함부르크 거리에서 피부로 느낀 것은 1990년대 초 귄터 그라스가 주장했던 대로 독일이 정말 ‘망명자와 난민의 조국’이 되었다는 사실이다. 버스에서건 전철에서건 아시아, 아프리카, 남미, 동유럽 등지에서 온 각양각색의 다양한 사람들이 넘쳐났다. 대학 캠퍼스에서 히잡을 쓴 학생들을 이렇게 자주 볼 수 있는 나라가 또 있을까. 2015년 시리아 난민 사태 이후 지난 10년간 독일은 약 400만명의 난민을 받아들였고, 실제로 연평균 60만명 이상의 난민이 들어왔다고 한다. 인구의 5%가 난민인 나라가 된 것이다. 세상에서 가장 큰 고통을 겪었던 사람들이 가장 많이 모여 사는 나라가 독일이다.

자기비판과 관용의 정신이 독일을 성숙한 민주사회로 만들었다. 특히 비판적인 언론과 깨어 있는 대학이 위기의 시대에 민주주의를 지키고 있다. 그들은 역사에서 배운 것이다. 그런데 우리는, 비극적 역사에서 무엇을 배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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