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 기본법 ‘22대 1호 법안’ 돼야 한다[이관범의 시론]
공대 졸업 中 150만 대 韓 10만
한국 기술력은 세계 10위권 밖
국가 예산 美 기업 수십 분의 1
지휘소 회의만 하다 실기 우려
국회·정부 원팀 돼야 추격 가능
G3 대 나락 갈림길 경고 새겨야
“MZ세대(1980년대 초∼2000년대 초 출생)는 중국의 동년배들과 15 대 1로 싸워야 하는 시대를 살고 있습니다.” 어느 전자 대기업 CEO가 사석에서 밝힌 소회다. 실제로 교육통계연보를 들여다보니 2021년 기준 한국의 이공계 대졸자 수는 10만7198명, 중국은 149만3297명이었다.
압도적인 열세는 이미 우리 곁을 배회하고 있다. 새로운 산업혁명 시대의 맹아로 평가받는 인공지능(AI) 분야만 봐도 차이나 파워는 이미 특이점을 넘어섰다. 오죽하면 미국이 엔비디아의 AI 반도체 수출을 막아서면서까지 중국을 견제하겠는가. 미국 조지타운대 안보·유망기술센터(CSET)가 2023년 8월 발간한 보고서에 따르면, 2010∼2021년 동안 중국이 등록한 AI 특허 건수(6만3755건)는 미국(3만5804건)의 약 2배다. 한국은 1만3720건으로 6분의 1 수준이다. AI 미래 역량을 가늠하는 논문 피인용 건수를 봐도 같은 기간 중국(775만7180건)은 미국(1094만5034건)을 바짝 뒤쫓고 있다. 한국(77만1947건)은 중국의 약 10분의 1 수준에 불과하다.
AI와 자율주행, 로봇 등 첨단 기술의 시험대라는 로봇 청소기 분야에선 이미 중국이 가전 최강국인 한국의 안방까지 점령한 상황이다. 중국 로보락이 150만 원 이상의 고가 시장에서 차지하는 점유율은 놀랍게도 80%에 달한다. 로보락이 최근 출시한 신모델 가격은 184만 원으로 웬만한 프리미엄 양문형 냉장고 가격을 웃돈다.
문화일보가 지난 4일 ‘AI 임팩트와 NEW 레볼루션’을 주제로 개최한 문화산업포럼 2024 현장에서도 이런 위기감과 절박함이 시종일관 묻어났다. 이경무 서울대 석좌교수 겸 AI전략최고위협의회 민간위원은 이 자리에서 “최근 미국 스탠퍼드대에서 발표한 AI 인덱스 리포트를 보면 한국은 기술 경쟁력 측면에서 세계 상위 10위 안에 이름을 올리지 못했다”며 “아무리 좋은 정책과 계획을 세워도 실질적인 실행을 하지 않으면 소용이 없다”고 질타했다. 특히, 한국 정부가 지난해 9500억 원, 올해 1조1000억 원의 예산을 AI 분야에 각각 배정했지만, 이는 미국·중국과 비교하면 50분의 1, 5분의 1밖에 안 된다는 얘기다. 챗GPT로 AI 역사를 새롭게 쓴 오픈AI와 동맹인 마이크로소프트가 앞으로 5, 6년 안에 약 134조 원을 투자할 계획인 것과 비교하면 한국의 AI 투자 수준은 ‘걸음마’ 단계에 불과하다는 얘기다. 중국 정부는 이제 질세라 오는 2030년까지 AI 산업 육성에 약 2000조 원을 쏟아붓겠다는 방침이다.
당장 6년 뒤엔 약 1600조 원 시장을 형성할 것으로 기대되는 AI 패권 경쟁 판도는 이미 미국과 중국 쪽으로 현저하게 기울었다. 격차를 따라잡고 AI 시대를 주도하기 위해서는, 이번 포럼에 참가한 전문가들 제언처럼 철저하게 선택과 집중에 따라 치밀하게 대역전 전략을 짜고 컨트롤타워를 명확히 해야 한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가 지난 4월 AI전략최고위협의회를 출범시킨 것은 늦었지만 다행한 일이다. 여기에는 민간 전문가 23인과 기획재정부·산업통상자원부·중소벤처기업부 등 주요 부처 실장급 공무원 7인이 참여한다. 문제는, 협의회에 참여하는 민간위원 사이에서는 벌써 “회의만 하다가는 실기할 수 있다”는 자성의 목소리가 나온다. 컨트롤타워로서 제 역할을 다하려면 전 부처를 아우르는 확실한 정책적 권한과 힘을 보여줘야 한다.
기업인들은 AI를 둘러싼 패권 경쟁이 안보 전쟁으로 치닫고 있어 정부와 국회가 원팀을 이뤄 뛰지 않으면 승산이 없다고 본다. 정작 제21대 국회는 결국 AI 기본법안을 폐기한 채 막을 내렸다. 제22대 국회만큼은 달라진 모습을 보여야 한다. 다행히 이번 포럼을 찾은 정점식 국민의힘 정책위의장은 “AI 기본법을 22대 국회 1호 법안으로 추진할 것”이라고 말했고, 진성준 더불어민주당 정책위의장은 “포럼에서 제안된 여러 의견을 참고해 필요한 입법과 정책 논의를 국회에서 이어가겠다”고 말했다.
주제 강연을 한 하정우 네이버클라우드 AI이노베이션센터장의 경고를 귀담아들어야 한다. 정부·국회·기업·학계가 제대로 힘을 합하면 G3(세계 주요 3국)로 도약할 수 있지만, 실기하면 나락으로 떨어질 수밖에 없다. 여야 모두 약속을 지키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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