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법개정은 나라 망하는 길… 본래 취지인 ‘기업 진흥법’이 답” [데스크가 만난 사람]

이관범 기자 2025. 7. 25. 1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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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데스크가 만난 사람 - 한석훈 국민연금 투자정책전문위원장
Q. 기업·주주를 위한 제3의 길은
상법개정, 지나치게 투명성 강조
기업 흔들리면 국민연금도 손해
국민 재산인데 수익률 급락할것
주주충실의무, 소송 리스크 커져
주주 = 회사인데 착시효과에 불과
집중투표제 등 기업가 정신 해쳐
감사위원 선임 ‘3%룰’ 폐지해야
경영판단 원칙 입법 보완도 절실
논란을 사온 상법 개정 내용이 공포된 지난 15일 서울 서대문구 국민연금 사옥 앞에서 만난 한석훈 보건복지부 국민연금기금운용위원회 투자정책전문위원장은 “기업 진흥을 위한 상법을 규제 수단으로 사용하면 결국 기업을 운영할 수 없게 만들 것”이라며 강한 우려를 나타냈다. 박윤슬 기자

인터뷰 = 이관범 산업부장, 정리 = 김호준 기자

한석훈 보건복지부 국민연금기금운용위원회 투자정책전문위원장(상근 전문위원)은 국내에서는 찾아 보기 힘든 검사 출신 상법 학자다. 한 위원장처럼 형법 전문가가 상법까지 아우르는 경우는 찾아보기가 힘들다.

한 위원장을 만난 날은 공교롭게도 지난 정부에서 거부권을 행사하며 막아 섰던 상법 개정 내용이 우여곡절 끝에 공포된 지난 15일이었다. 이사의 충실 의무 대상을 회사에서 회사 및 주주로 확대했다. 오늘날의 삼성 반도체 신화를 있게 만든 투자 결정을 어느 경영자가 할 수 있겠느냐는 우려의 목소리가 컸던 사안이었다.

이날 코스피 지수는 올해 장중 최고치(3215.28포인트)를 찍었다. 여당과 새 정부는 여세를 몰아 감사위원 분리선출 대상을 확대하고, 특정 이사 후보에 몰아서 표를 줄 수 있는 집중투표제 도입 등을 골자로 한 추가 상법 개정을 밀어붙이고 있다.

서울 서대문구 충정로 국민연금 사옥 상근전문위원실에서 만난 그에게 앞으로 상법 개정이 몰고 올 현실과 주주와 기업이 모두 동반 이익을 극대화할 수 있는 제3의 길을 물었다. 한 위원장은 새 정부가 잘되는 것을 위해서라도 할 말은 해야 한다면서 “이렇게 가면 결국 우리나라에서는 기업을 운영할 수가 없고, 결국 나라가 망하는 길”이라면서 강한 우려를 표명했다. 규제법인 자본시장법을 놔둔 채 기업 진흥을 위한 상법을 고쳐서 기업을 손보려는 것은 본말이 전도될 시도라는 얘기다.

―공교롭게도, 새 정부가 개정된 상법을 공포하는 날 찾아뵙게 됐다. 우려되는 바는.

“가장 우려되는 건 기업의 소송 리스크가 늘어나 결국 적극적인 경영을 하지 못하게 된다는 점이다. 지금 한국 경제에서 가장 중요한 게 신성장 동력을 개발하고 적극적으로 치고 나가야 할 때 아닌가. 앞으론 우리나라는 이런 기업이 민·형사소송에 시달릴 수밖에 없는 처지에 빠질 것이다. 기업의 결정으로 손해를 본 주주들이 ‘기업이 경영을 잘못해 손해를 입었다’며 손해배상청구는 물론 배임죄로 줄고소를 할 것이다.”

―우리나라는 형사 처벌을 하려면 고의가 있어야 하는데.

“우리나라는 미필적 고의와 과실이 거의 구분이 안 된다. 그래서 민·형사상 소송 리스크가 더 크다. 주주 충실 의무 규정은 잘못 이해되고 있다. ‘주주’란 총주주를 말하므로 사실상 주주와 회사는 개념이 같다. 상법에 해당 규정을 두면 개별 주주의 이익을 다 돌봐야 하는 걸로 오인한다. 결국 대부분 주주들이 소송에서 패소할 텐데, 기업으로는 리스크만 커지는 꼴이다. 문제는 아무도 그런 리스크를 짊어지고 들어오려는 우수한 경영자가 없고 기존 경영자도 위험한 적극적 경영을 기피하게 된다는 것이다. 지금 중대재해처벌법으로 형사 리스크가 너무 크다고 유수의 외국인 CEO가 우리나라에 오기를 거부하는데 이런 리스크까지 겹치면 전혀 안 올 것이다.”

―법원의 판단 결과가 굉장히 자의적, 주관적으로 나올 수도 있겠다.

“그렇다. 경영자가 경영판단을 함에 있어 임무를 소홀히 한 것인지 여부 판단은 판사에 따라 다를 수가 있다. 그러므로 경영자의 경영판단을 보호하여 적극적 경영을 할 수 있도록 미국에서는 판례법으로 경영판단원칙을 발달시켜 왔고, 독일에서는 주식법에 이를 성문화한 규정이 있다. 독일 주식법에서도 ‘기업가적 결정이 적절한 정보에 근거하여 회사의 이익을 위해 한 것으로 합리적으로 인정되는 경우라면 이사의 의무 위반은 없는 것이다’라고 규정하고 있다. 우리도 이사 충실 의무에 관한 규정을 바꿨으면, 이 정도는 입법을 해줘야 된다.”

―경영판단원칙을 명문화하면 어떤 효과가 있나.

“이런 경영판단원칙을 성문법화하면 경영자가 보다 안심하고 적극적인 경영을 할 수 있는 토대가 될 것이다. 미국이 오랜 세월 선진국 자리를 유지하는 이유도 철저하게 기업가의 경영 판단을 보호해 왔기 때문이라고 본다.”

―집중투표제라든지 감사위원 분리선출 확대, 자사주 소각 의무화까지 예고하고 있는데 곧 현실화될 것 같다. 이렇게 될 경우 앞으로 3년 안에 대한민국 경제와 산업계는 어떻게 될까?

“비관적으로 볼 수밖에 없다. 우리 경제 성장의 주된 힘은 기업가 정신이다. 기업가 정신을 키우고 적극적으로 투자하고 기술 혁신을 해온 것. 이런 점이 외국 기업과 차별화하고, 성장을 가능케 했다. 그런데 이제는 이런 위험을 감수할 수 있는 적극적인 경영과 그에 대한 보상 자체에 대해 의문을 품게 할 것이다. (집권당이 하자는 대로) 상법을 개정하게 되면 결국 적극적 경영이 위축되고, 이사회에 이질적인 이사들이 들어가면서 기업의 투자 위축과 기술 개발 부진, 공장 해외 이전, 실업률 증가 등 경제가 크게 퇴보할 수밖에 없다.”

―국민연금 기금을 운용하는 입장에서 어떤 부분이 가장 우려되는가.

“기금 운용의 큰 원칙은 바로 장기 수익률 제고다. 소중한 국민의 재산을 투자한 것이니 수익률을 많이 올려야 한다. 그러니 기업이 망하면 우리도 망하는 것이다. 우리가 가만히 두고 볼 수 있겠나.”

―일각에서는 이런 사태를 기업이 자초한 것으로 보고, 실제로 지배주주의 이익만 좇다 보니 일반 주주 이익을 침해한 사례도 있다.

“물론 일부 그런 건 있겠다. 분명한 것은 상법 개정이 해결책은 아니라는 점이다. 대표적인 사례가 삼성물산 합병 사태와 LG에너지솔루션의 물적 분할 사태를 꼽을 수 있는데, 삼성물산 합병의 경우에는 9년에 걸친 형사소송 결과 합병에 위법이 없다고 보아 배임죄가 무죄선고 되었지만, 모두 문제가 된 이후 자본시장법을 개정해 보완책을 마련했다. 한마디로 지배구조의 문제가 아니라는 것이다. 기업가의 경영 판단이 보호받지 못해서 적극적인 경영을 하려면 민사 책임뿐 아니라 형사 책임 위험까지 부담하는 리스크에 시달리고 중대재해처벌법을 비롯해 각종 기업 규제가 너무 심하다.”

―최근 코스피가 급등하고 있는데, 상법 개정 효과로 보는 사람들도 많다.

“무엇보다 코스피 5000까지 현실적으로 갈 수가 없다고 본다. 궁극적으로 기업 가치를 높이려면 기업의 체질이 강해져야 한다. 기업이 적극적인 경영을 하고 투자자들이 볼 때 해당 기업은 앞으로 더 발전하고 주가가 오를 것이라고 예상을 할 수 있어야 한다. 근본적인 기업가치 증대를 동반하지 않는 증시 부양은 착시 효과만 불러올 뿐이고, 오래 가지 못할 것이다. 허상일 수도 있다고 본다.”

―‘글로벌 스탠더드’에 맞추는 것이라는 의견도 있다.

“주주에 대해서 일반적인 이사의 충실 의무를 규정한 국가는 없다. 영미법에서도 가령 기업 인수 합병을 할 때 이사가 주주에게 정보 제공을 잘못했다든가 그런 특별한 경우에만 예외적으로 해당 주주에 대한 충실 의무를 인정할 뿐이다.”

―집중투표제는 어떤가.

“집중투표제를 의무화한 국가는 러시아와 멕시코, 칠레, 중국과 미국 5개 주 정도인데, 5개 주만 해도 기업들이 거의 없는 지역이다. 원래는 미국에도 22개 주가 집중투표제 의무화 규정을 두고 있었는데 나중에 다 폐지했다. 일본도 원래는 있었는데, 1974년쯤에 폐지한 이유는 이질적인 이사회 구성으로 인해서 이사회 운영 효율성이 저하된다는 이유였다. 한마디로 파벌 싸움이 문제가 됐다. 집중투표제 의무화는 절대 글로벌 기준이 아니다. 감사위원 선임 시 최대주주와 특수관계인의 지분을 3% 인정하는 룰은 우리나라에만 있는 제도라는 건 이미 얘기했다. 문제는 감사위원은 이사라는 점이다. 이사는 경영에 관여하는 경영자다. 경영자인 감사위원에게 3% 룰을 적용하는 건 재산권 보장과 자유시장경제 원칙에 반하는 대단히 잘못된 규정이다. 우리나라에는 3%룰이 1962년도에 도입됐다. 그땐 외부 감사 제도가 없었기 때문에 감독 업무의 투명성을 보장하기 위해서는 필요했다. 그런데 이후 외부 회계 감사 제도가 도입되면서 투명성이 엄청 강화됐다.”

―자사주 소각 의무화도 추진한다.

“이번에 자사주 소각 의무화를 입법하려고 하는 입법안의 제정 이유에서도 언급하고 있듯이 2011년 개정된 상법은 경영권 방어 수단이 필요하다는 재계의 요구를 반영, 자사주 취득을 원칙적으로 허용했다. 즉, 착실하게 기업을 성장시킨 경영주의 경영권을 보호해 주는 게 모든 주주의 이익을 위해서 필요했다는 말이다. 경영권 방어를 위해 더 싼 값에 주식을 사게 하는 포이즌필이나 주당 의결권 수를 다르게 책정하는 차등의결권 같은 제도는 주주 평등 원칙에 반하거나 오용 가능성이 있기 때문에 자사주 취득을 허용한다는 취지였다. 자사주 소각 의무화는 나라마다 다르다. 우리는 자사주를 하나의 재산으로 본다. 미국 같은 경우에는 자사주 취득은 곧 미발행주식이 되어 주주 환원으로 보는 입장이므로 자사주 취득의 성격이 다르고 차등의결권제도나 포이즌필과 같은 경영권방어수단이 있기 때문에 같은 선상에서 비교할 수 없다. 자사주 소각을 의무화한다면 그 대신 위와 같은 경영권방어장치를 입법해야 한다.”

―기업과 주주의 이익을 같이 극대화할 방안은 없나.

“상법을 이렇게 규제법으로 운영하지 말고 본래 취지인 기업 진흥법으로 운영해야 한다. 기업을 어떻게 하면 유지하고 강화시킬 것인가, 그것이 상법의 양대 이념 중에 하나다. 다른 이념은 거래의 안전 보호다. 그러면 소액 주주 보호를 위해서는 자본시장법에 있는 개개의 조항을 손보면 된다. 그게 오히려 소액 주주 보호를 위해서는 더 효과적이다.”

―그렇다면 앞으로 상법은 어떻게 고쳐야 하나.

“우선 주주에 대한 충실 의무 조항은 다시 원래대로 환원하고 오히려 독일 주식법에서 규정하는 것과 같은 글로벌 스탠더드인 경영판단원칙을 명문화해야 한다. 개정된 주주에 대한 충실의무 조항은 착시 효과에 불과해 기업 소송 리스크만 증가시킬 뿐이다. 또 이미 엄격한 외부 회계 감사제도 도입으로 경영의 투명성이 높아진 만큼, 3%룰은 최소 범위 내에서 적용하고 특히 감사위원 선임에 대한 3% 룰은 폐지해야 한다. 자본시장법 같은 경우, 소액 주주 보호 제도를 더 보완해야 한다. 국민연금은 근로자와 기업이 낸 연금 보험료로 운영하는데, 기업이 망하면 보험료가 적어지고 또 기금 운용은 수익을 제대로 못 내고 엄청난 손해다. 지금 상법 개정은 지나치게 투명성만 강조하고 있다.”

변호사 → 검사 → 상법 전문가… “기업계서 추천해 국민연금行”

한석훈 보건복지부 국민연금기금운용위원회 투자정책전문위원장은 2023년 2월부터 상근전문위원으로서 기금운용 관련 투자정책이나 성과보상의 자문 또는 중요 의결권행사 결의 등 주주권 행사 활동을 해오고 있다.

서울동부지검 부부장검사를 비롯하여 부장검사를 역임하고 2007년 성균관대 법학과 교수, 2009년 성균관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등을 거친 사실상 국내 유일의 검사 출신 상법 학자다.

주요 저서로는 ‘비즈니스범죄와 기업법’이 있고 ‘주식회사법대계’와 ‘주석외부감사법’을 공동집필했으며, 한국상사법학회·한국기업법학회 부회장 등을 역임했다.

―오랜 기간 검사로 일하시다가 상법 학자로 살고 계신데.

“원래는 변호사였다. 금융사건을 주로 다루는 변호사로 있으면서 상법을 전공했다. 그런데 김영삼 정부 시절 ‘검사 순혈주의’를 깨고 처음으로 전문 역량을 가진 변호사를 검사로 공채했는데, 1기로 9명을 뽑았다. 여기에 들어가 검사 임관을 했고 12년 동안 검사 생활을 했다. 그러던 중 모교인 성균관대에서 법률 실무를 갖춘 교수를 찾았는데 전공이 상법이라 상법 로스쿨 교수로 15년 재직했다. 검사 경력과 상법 전공 경험을 바탕으로 국내에선 드물게 기업범죄를 연구하고 기업범죄의 종합해설서를 쓰게 됐다. 그렇게 쓴 책이 ‘비즈니스범죄와 기업법’이다.”

―국민연금으로 오실 때 세간의 오해도 있었는데.

“윤석열 정부 당시 검사 출신만 임명한다고 공격받았는데, 참 억울한 면이 있다. 윤 전 대통령하고는 일면식도 없는 사이다. 애초에 저는 검사로 뽑힌 게 아니라 경영계에서 상법학자로 추천했다. 연기금의 의결권행사 관련 논문을 발표하고 상법 관련 세미나에 자주 참석하면서 기업 지배 구조에 대해서 안다고 인식됐던 것 같다.”

■ 한석훈 국민연금 투자정책전문위원장

△1957년 제주 출생 △성균관대 법학 박사(상사법) △사법연수원 18기 △서울동부지검 부부장 △군산지청 부장 △성균관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한국상사법학회·한국기업법학회 부회장 △국가인권위원회 비상임위원 △국민연금 기금운용위원회 상근전문위원 △국민연금 수탁자책임전문위원회 위원장

이관범·김호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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