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퇴 일본인 역사교사 "130년 전 동학농민군 학살 대신 사죄"
"일본이 저지른 첫 집단학살…학생들에게 제대로 가르쳐야"
(서울=연합뉴스) 최원정 기자 = "동학농민운동은 제국주의 일본이 처음 저지른 집단학살입니다. 절대 잊어선 안 된다는 생각에 사죄비를 세우는 데 참여했습니다."
동학농민혁명 130주년 기념일을 하루 앞둔 지난 10일 하타노 요시코(86)씨는 연합뉴스와 통화에서 지난해 10월 일본군에 희생된 농민군을 기리는 사죄비 건립에 힘을 보탠 계기를 이렇게 설명했다.
전직 역사교사인 하타노 씨는 한일합동교육연구회 회원으로 동학농민혁명을 일본 사회에 알리는 데 힘쓰고 있다.
하타노 씨는 2013년 고(故) 나카츠카 아키라 일본 나라여대 명예교수와 박맹수 전 원광대 총장 등 한일 연구자가 함께 쓴 책 '동학농민전쟁과 일본'을 읽고 동학농민혁명에 관심을 갖게 됐다.
이전부터 한일 간 역사 교류에 적극 참여했던 그였지만 100여년 전 조선 땅에서 벌어진 참상에 큰 충격을 받았다. 학계는 일본군에 학살된 동학농민군의 수를 3만∼5만명으로 추정하고 있다.
동학농민혁명은 1894년 전봉준이 중심이 돼 일으킨 반봉건·반외세 운동으로, 비록 실패로 막을 내렸지만 갑오개혁과 3.1운동에 큰 영향을 미쳤다.
정부는 지난 2018년 '황토현 전승일'인 5월 11일을 동학농민혁명 법정 기념일로 정했다. '황토현 전승일'은 동학농민군과 관군이 황토현 일대에서 전투를 벌여 동학농민군이 대승을 거둔 날이다.
동북아역사재단의 분석에 따르면 내년부터 일본 중학교에서 쓰일 사회과 교과서 대부분이 동학농민혁명을 '조선을 둘러싼 청나라와 일본 간 세력 다툼 과정에서 발생한 사건'의 관점에서만 서술하고 있다.
"저도 어렸을 때는 '동학란'이라는 이름으로 배웠고 10년 전까지만 해도 일본군과 싸워 패배한 조선 농민들이 뿔뿔이 도망갔다고만 알고 있었어요. 이제라도 학생들에게 제대로 가르쳐야 해요. 동학농민혁명은 불행했던 한일 과거사의 출발점이니까요."
하타노 씨는 2019년 한·일 양국 시민들로 이뤄진 동학 기행에 참여해 호남 일대의 동학농민혁명 유적지를 찾았고 지난해 10월에는 전남 나주시에서 열린 '동학농민군 희생자를 기리는 사죄비' 제막식에도 참석했다.
사죄비 양면엔 한국어와 일본어로 '나주에서 희생당한 동학농민군을 기리고자 일본 시민들이 먼저 사죄의 마음을 담은 성금을 자발적으로 모았다'는 글귀가 적혀있다.
하타노 씨는 '사발통문'을 보며 일본의 농민봉기인 '잇키'를 떠올렸다고 한다.
'사발통문'은 동학혁명이 일어나기 직전 해인 1893년 11월 전봉준을 비롯한 22명의 동학 간부가 모여 농민군의 최종 목표를 적은 문서로, 주모자를 알 수 없도록 사발처럼 둥근형태로 서명한 것이다.
그녀는 "일본도 전국시대에 농민들이 권력에 저항하기 전 참여자 이름을 둥글게 적은 '가라카사(종이우산) 연판장'을 돌리곤 했다"며 "부조리한 사회를 바꾸려 한 민중의 행동이 오늘날 한국과 일본의 시민운동과 민주주의에도 시사점이 크다"고 말했다.
하타노 씨도 초임 교사 시절이었던 서른 살 때 재일조선인 학생들을 만나기 전까지는 과거사 문제에 관심을 갖지 않았다고 털어놨다.
수업 때 한 학생이 '조선'을 주제로 발표했고 그제야 하타노 씨는 한국과 일본의 역사를 공부하기 시작했다. 과거 일본이 저지른 잘못이 재일조선인의 빈곤한 삶의 배경이 됐다는 사실을 알고서는 제자들에게 부끄럽지 않도록 정확한 역사를 알려야겠다고 생각했다.
하타노 씨는 역사를 공부하며 한국어도 배웠다. 유홍준 전 문화재청장이 쓴 '나의 문화유산 답사기'를 읽고 한국의 고도(古都)를 여러 차례 찾기도 했다.
하타노 씨는 양국 시민이 역사를 올바르게 이해하는 것이 한일관계가 미래로 나아가는 토대라고 믿는다.
"옛날 일을 갖고 언제까지 이야기해야 하느냐는 분들이 아직도 많아요. 하지만 일본 정부는 수십 년 동안 자기 잘못을 숨기고 정당화하고 있죠. 시민들이 제대로 알아야 왜 양국 간의 화해가 이뤄지지 않는지 그 원인을 알 수 있습니다."
away777@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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