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프] 한국과 중국만 이렇다? 명품 아기 옷에 공포심 느끼는 한국

김종원 기자 2024. 3. 25. 09: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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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에 빡!종원]

명품을 사랑한 한국인, 이젠 아기까지 명품 열풍

한국인의 명품 사랑은 어제오늘 이야기가 아니다. 지난해 모건스탠리가 조사한 자료에 따르면, 한국인의 1인당 명품 소비액은 325달러(우리 돈 약 40만 원)로 전 세계 1위를 차지했다. 세계 경제 최강국인 미국이 280달러, 중국은 55달러에 불과했다는 점과 비교하면 엄청난 액수이다. 명품 사랑이 너무 커서일까, 이제는 성인뿐 아니라 아동 브랜드까지도 명품 브랜드가 큰 인기를 끌고 있다.
3월 새 학기가 시작되자 일부 동네 지역 카페에는 때아닌 '명품 고민' 글들이 올라오고 있다. 요즘 아이들이 학교에서 다 비싼 명품 점퍼 하나씩은 입고 다니는데 우리 아이도 사줘야 할까 하는 고민 글이다. 아이가 중학생 정도 돼 소위 '명품'이라 불리는 브랜드에 대해 인식을 하게 되면서 부모에게 사달라고 하는 경우는 말할 것도 없고, 아이가 아직 유치원생이나 초등학교 저학년으로 어려서 의류 브랜드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는 상황인데도 오히려 부모가 먼저 나서서 우리 아이 '몽클레어' 한 벌 정도는 사줘야 하는 거 아닌가 고민하는 사례도 적지 않다. 전자의 경우는 '등골 브레이커'니 뭐니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지만, 후자의 경우는 언뜻 이해하기가 힘들다. 아이가 아무것도 모르는데 왜 부모가 먼저 없는 살림에 1백만 원을 호가하는 명품 의류를 사서 입히려고 하는 걸까?

SBS가 위치한 목동은 아이들이 많은 동네이다. 근처 초등학교 앞을 지나다 보면 이제 막 입학한 1학년, 2학년 어린 친구들이 어른들도 입기 힘들다는 몽클레어 패딩을 입고 다니는 모습을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다. 한국에서 유아 명품 브랜드의 인기는 당장 백화점 3사 매출만 봐도 알 수 있다. 2022년부터 2023년까지 국내 백화점 3사의 전체 아동복 매출을 보면 롯데백화점은 1.9%, 현대 9.7%, 신세계 3.6%로 조사됐다. 성장률이 그리 크지 않았다. 하지만 수입 명품 브랜드만 떼어놓고 보면 베이비 디올과 몽클레어 앙팡, 펜디 키즈는 20% 넘게, 버버리 칠드런은 32%에 달하는 매출 신장률을 보였다. 백화점에서 전체 아동복 성장세를 크게 웃도는 수치이다.

이러다 보니 아동 명품 브랜드가 단독 매장으로 한국에 들어오는 일도 점점 잦아지고 있다. 명품 브랜드 톰브라운은 '톰브라운 키즈' 매장을 우리나라 백화점에 지난해 팝업스토어 형식으로 오픈을 했는데, 정작 이 브랜드의 본고장인 미국에는 키즈 매장을 이처럼 따로 떼서 운영한 경우가 없다. 최근 인기가 급상승 중이라는 베이비 디올의 경우 2020년 기준 전 세계에 25개 단독 매장이 있는데, 이 중 다섯 개는 중국에 있고, 우리나라에만 3곳이 있다. 올해 안으로 1곳이 추가 오픈을 한다고 하니 우리나라에도 곧 베이비 디올 단독 매장이 4개가 되는 것이다. 참고로 미국에는 맨해튼에 딱 한 곳 있다.

명품까지는 아니지만 우리나라에서는 고가에 팔리는 파타고니아도 지난해 10월 전 세계 처음으로 우리나라에 키즈 매장을 단독으로 오픈했다. 참고로 미국산인 파타고니아는 미국에서는 우리나라보다 훨씬 저렴하게 살 수 있다 보니 미국인들이 매우 즐겨 입는 브랜드인데, 기자가 뉴욕 특파원으로 있을 때 여기저기서 파타고니아 매장을 심심치 않게 볼 수 있었지만 키즈 매장을 따로 운영하는 경우는 한 번도 보지 못했다. 이처럼 아동 명품 브랜드 매장이 한국에 앞다퉈 단독 매장을 내고 있는 상황만 보더라도 한국이 이들 기업에 얼마나 매력적인 시장으로 보이는지를 쉽게 알 수 있다.

아동 명품 시장이 커지면서 중고로 거래하는 '리세일 시장' 역시 성장하고 있다. 아동복의 특징은 한 철 입히고 나면 끝이라는 건데, 아무래도 100만 원을 호가하는 제품을 몇 번 입히고 버리는 게 아깝다 보니 살 때도 중고로 샀다가, 한 시즌 입히고 다시 중고로 파는 사람들이 늘고 있는 것이다. 중고나라 등 중고 거래 플랫폼에서 아동 명품 브랜드를 검색하면 거래 물건들이 수천 건씩 나오는데, 아예 중고 아동 명품만 전문적으로 취급하는 전용 사이트가 생겨날 정도이다.
 

왜 이렇게까지 입혀야 하나?

왜 이렇게까지 해서 아이들에게 명품을 입히려는 것일까? 우선 우리나라를 비롯해 전 세계적으로 아동복 시장은 조금씩 성장하는 추세이다. 그도 그럴 것이 전 세계 인구의 25%가 0세에서 14세까지의 아동이다. 그런데 한국에서만의 특징이 있다. 한국은 심각한 저출산 현상으로 어린이 인구가 급격히 줄어들고 있는 나라이다. 전체 아동복 시장이 점점 줄어들 수밖에 없다. 하지만 이는 명품 유아복 브랜드에게는 통하지 않는 얘기이다.
한다혜 서울대 소비트렌드 분석센터 연구위원은 우리나라의 중저가 아동복 업체 중에는 현재 어려움을 겪고 있는 곳이 많다고 했다. 중가 유아용 평상복의 경우 신규 구매 대신 대물림이나 같이 나눠 입기를 한다거나, 아니면 아예 초저가 제품을 사주는 추세가 늘고 있다는 것이다. 이렇게 평상복에서 아낀 예산을 특별한 날 한두 번 입을 명품 아동복을 구매하는데 쓰는 신개념 '합리적 소비'가 유행을 하고 있다는 분석이다.
실제로 이런 분석을 드러내는 연구 결과도 있다. 시장조사기업 트렌드리서치는 어른 옷을 살 때와 아동복을 살 때 구매 패턴에 대해 조사했는데, 어른 옷보다 아동복을 살 때 취향보다는 브랜드를 보고 구매하는 경향이 더 강한 것으로 나타났다. 그런가 하면 어른 옷을 살 때에는 가성비를 따진다는 응답이 높게 나왔지만, 아동복을 살 때에는 가성비를 본다는 대답이 훨씬 더 낮게 나왔다.

다른 나라도 이렇게 입히나?

미국의 경우도 명품 아동복의 매출이 늘어나고 있는 건 사실이지만 일상에서 체감을 하기란 거의 불가능하다. 기자가 뉴욕 특파원을 하는 3년 동안 뉴저지 백인 중산층이 주로 모여 사는 동네에서 생활했는데, 초등학생이던 아이들을 매일 학교로 태우고 다녔지만 몽클레어나 베이비디올 같은 고가의 옷을 입은 아이는 단 한 명도 본 적이 없다.

다만, 미국에서도 유명 연예인들이나 인플루언서들이 자신의 아이에게 명품 브랜드를 입히는 사진을 소셜 미디어에 업로드하는 일이 점점 더 많아지고 있는데, 미국 언론은 이들이 자신의 아이들에게 명품 브랜드를 입히는 것을 사업의 일환이라고 보고 있다. 명품 기업과 광고 계약을 하고 사진을 올린다는 것이다. (사실 영어로 명품은 'luxury goods'로, 이를 그대로 해석하면 '명품'이 아닌 '사치품'이다. 하지만 '사치품'이라는 단어의 어감이 그리 좋은 것은 아니다 보니, 우리나라에 진출한 사치품 기업들은 '명품'이라는 기가 막힌 단어를 만들어내 이를 완벽히 대체했다.) 대표적인 것이 킴 카다시안의 딸 노스웨스트의 사례이다. 영향력 있는 스타 2세들이 명품을 입고 있는 모습이 소셜미디어를 통해 자주 소개가 되다 보니 이를 동조해 명품 아동복을 사는 사람들이 자연스레 늘어나는 건데, 특정 상류층 집단에서 주로 이런 현상이 나타나다 보니 명품 아동복의 성장세가 우리나라처럼 크지 않다.

일본의 경우는 아이들에게 사주는 고가의 제품 중 가장 유명한 것이 '란도셀'이라고 불리는 가죽 가방이다. 우리나라 뉴스에도 종종 소개가 되곤 하는데, 가격이 꽤 나가서 평균 50만 원, 비싼 것은 150만 원을 호가하기도 한다. 하지만 이 란도셀은 특정 브랜드를 보고 사는 게 아닌 데다, 아이가 초등학교 입학 할 때 한 번 사면 6년 내내 멘다는 점에서 한 철 입고 끝나는 한국 명품 아동복 구매 패턴과는 다소 차이가 있다. 한다혜 연구위원은 일본 소비자들은 고가의 명품 브랜드를 특정 브랜드가 아닌, 정말 오래 쓸 수 있는 품질 좋은 제품으로 인식하는 경향이 강하다고 설명했다. ('사치품'이 아닌 진정한 의미의 '명품'이라 할 수 있다.)

우리나라와 가장 비슷한 소비 패턴을 보이는 나라는 중국이다. 우리나라는 심각한 인구 감소 현상으로 아이가 줄고 있는데, 그러다 보니 전체적인 아동복 시장은 위축되고 있지만, 초고가 명품 아동복 브랜드는 그럴수록 더 잘 팔리고 있는 특징을 보인다. 그 이유 중 하나가 아이가 귀해지다 보니 아이 한 명에게 쓸 수 있는 예산이 많아지기 때문인데, 조부모부터 지인까지 아이 한 명에게 10명이 지갑을 연다고 해서 '텐포켓'이라거나, 아주 귀한 아이라는 뜻이 VIB(Very Important Baby) 같은 신조어가 나오기도 한다. 중국은 우리보다도 더 먼저 이런 '귀한 아이' 현상을 겪었다. 최근에는 경제 침체로 주춤하지만, 초고가 유아 명품 브랜드의 인기는 중국에서 먼저 시작됐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유아 명품 선호하는 한국 소비자 심리는

한국에서 초고가 아동복 명품이 인기를 끄는 이유는 크게 두 가지로 볼 수 있다. 우선 바로 앞에서 설명한 '아이가 귀해지기 때문'이 첫 번째 이유이다. 두 번째 이유는 한국인만의 독특한 심리상태에서 찾아볼 수 있다. 소비자심리학에서는 고가의 명품을 구매하는 심리적 동기를 총 4가지로 나눠서 설명한다. 
1. 과시형: 남들과 똑같은 취급을 받기 싫다는 심리
2. 질시형: 나보다 나은 사람에게 무시당할 수 있다는 내면의 열등감의 심리
3. 환상형: 나도 저 사람처럼 될 수 있다는 환상에서 비롯한 심리
4. 동조형: 내가 속한 집단에서 뒤처질 수 있다는 공포심에서 비롯한 심리

미국에서 셀럽들이 자녀에게 명품을 입히는 걸 보고 '나도 저렇게 되고 싶다'는 마음으로 명품을 구매하는 것이 3번 환상형이라고 한다면, 한국은 주로 4번, 동조형 심리가 강하게 작용한다는 것이 소비자심리학자들의 진단이다. 

한국은 세계 주요 국가들에 비해 남과의 비교가 매우 자연스러운 나라이다. 심리학자 레온 피스팅거는 '사회비교이론'을 통해, 인간은 남들과의 비교를 통해 내가 괜찮은 삶을 살고 있다는 상대적 위안을 받는다고 얘기했다. 그런데 이 비교는 주로 나와 비슷한 상황에 있는 사람들과 하게 되는데, 우리나라는 이런 비교집단이 너무 크다는 특징이 있다. 1960~70년 급격한 경제발전을 하며 인적자원밖에 없는 한국은 일종의 인재 규격화에 나섰고, 그러다 보니 초중고등학교를 나오고 대학을 들어가고, 취업을 하고,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아 기르는 특정한 패턴의 삶이 일종의 '정답'처럼 여겨지는 사회가 됐다는 것이다.

최근에는 소셜 미디어가 발달하면서 이러한 비교를 더욱 더 많이, 더 쉽게, 상시로 할 수 있게 됐는데, 실제로 한 조사에 따르면 우리나라가 아랍에미리트에 이어 전 세계 소셜미디어 이용률 2위를 기록하기로 했다. 그야말로 전 국민의 전 국민에 대한 비교의 시대라 할 수 있다.

얼마 전 미국의 작가 마크 맨슨은 "한국이 세계에서 가장 우울한 나라"라는 다큐를 만들기도 했는데, '맞다, 틀리다' 논란을 차치하고 눈길이 가는 대목이 있었다. 바로 한국이 우울한 이유로 유교와 자본주의의 최악의 단점만을 채택했다는 주장이었다. 유교의 '수치심'과 '타인에 대한 판단', 그리고 자본주의의 '물질주의'와 '생활비 문제'라는 단점은 극대화된 반면, 가족·지역사회와의 친밀감이라는 유교의 장점이나 자기표현·개인주의라는 자본주의의 장점은 사라졌다는 것이다.

결국 이러다 보니 내가 속한 집단, 즉 내가 나를 비교할 집단에서 뒤처질 수 있다는 공포심이 극대화됐고, 그게 남이 사는 명품 나도 사야 한다는 소비 심리로 이어졌다는 분석이다. 이런 '공포심'은 내 아이의 일이 되면 더욱더 극대화되다 보니 '놀이터에서 다른 아이들 다 입고 있는 몽클레어, 우리 아이도 하나 사줘야겠다'는 논리로 이어지는 것이다.

(남은 이야기는 스프에서)

김종원 기자 terryable@s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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