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도에 온통 빨간 경매 딱지...전세사기 휘몰아친 화곡동 보니
대규모 전세 사기 피해 지역이었던 서울 화곡동 단 한 곳에서만 빌라 등 주거용 건물 236채에 대한 경매가 진행 중인 것으로 31일 집계됐다. 서울 시내에서 경매에 나온 전체 주거용 건물 3채 중 1채가 화곡동에 있었다.
법원경매정보에 따르면, 이날 기준 강서구 화곡동에서는 총 236채의 주거용 건물이 경매 매물로 나와 있었다. 이 가운데 223채가 빌라 또는 오피스텔이었다. 25개 구 426개 동으로 이뤄진 서울에서 ‘화곡동’ 단 1개 동의 주거용 건물 경매가 차지하는 비율이 29.6%였다.
화곡동 상황은 전국의 부동산 법원 경매·공매 매물 현황을 보여주는 ‘경매지도’에서 선명하게 나타났다.
지도상 화곡동 일대는 여백이 많은 서울 다른 지역과 달리, 경매·공매 매물을 나타내는 빨간색 표시로 빈틈을 찾기 어려울 정도로 뒤덮였다. 이 모습이 이날 온라인에서 화제가 됐다. 매물의 감정평가액은 대부분 1억~3억원대였고, 빌라(다세대주택)가 가장 많았다. 온라인에서는 “무섭다”는 반응이 줄을 이었다.
그 배경에 전세 보증금 미반환 사고가 있다. 2022년 11월 기준 주택도시보증공사(HUG)가 파악한 상위 30위 전세보증금반환보증 집중관리 다주택 채무자(악성 임대인)의 지역별 통계에 따르면, 화곡동에서만 전세금 미반환 사고가 737건 발생했다. 전국 1위였고, 서울 전 지역 사고(1769건)의 41% 수준이다.
2022년부터 전국에서 연쇄적으로 터진 전세 사기의 여파라는 해석이다. 전세 사기는 자기 자본 없이 세입자 보증금으로 빌라를 짓고 팔기를 반복하며 재산을 불리는 방식이지만, 주택 경기 하락으로 보증금 반환 능력을 상실하면서 피해자를 양산했다.
특히 화곡동은 2019~2020년 집중적으로 전세 사기 행각을 벌이며 업계에서 소위 ‘빌라왕’으로 불렸던 김모씨의 주무대였다. 그는 전세 보증금을 돌려줄 능력도 없이 1100여 채의 주택을 임대하다가 재작년 10월 사망해 논란이 됐다.
전세 사기 피해 주택 중 상당수가 임의경매에 넘어간 것으로 추정된다. 임의경매는 부동산을 담보로 돈을 빌린 채무자가 빌린 돈과 이자를 제때 갚지 못할 경우 채권자가 대출금 회수를 위해 부동산을 경매에 넘기는 절차다. 전세 보증금도 부동산 담보 채무의 대표적 유형이다.
이주현 지지옥션 전문위원은 “화곡동 경매 물건 낙찰자 상당수가 전세 보증금을 돌려받지 못한 피해자”라며 “해당 지역 일대에서는 빌라가 정상적인 시장에서는 팔리지 않아 경매에 부쳐진 상황”이라고 했다.
화곡동 경매 매물 상당수는 여러 차례 유찰을 겪으며 가격이 계속 내려가고 있다. 최대 10여 차례 유찰된 물건도 많았고, 일부 빌라는 감정가가 1억~2억원임에도 최저입찰가가 수백만원에 불과했다.
박원갑 KB국민은행 부동산 수석전문위원은 “집을 공짜로 낙찰받아도, 전세 세입자들에게 돌려줘야 할 임차 보증금 합계액이 이미 시중 빌라 가격을 넘어섰기 때문에 벌어지는 현상”이라며 “전세 사기 피해 주택 경매가 진행되는 과정에서 빌라 가격 급락이 맞물리며 상황이 더욱 악화했다”고 했다. 경매업계 관계자는 “전세 사기 피해자들이 궁여지책으로 임차한 물건을 낙찰받는 경우도 많다”고 했다.
법원 등기정보광장에 따르면 지난해 부동산(토지, 건물, 집합건물 등) 임의경매 개시 결정 등기 신청 건수는 총 10만5614건으로 2022년에 비해 61% 늘어난 것으로 조사됐으며, 이 중에서 서울의 집합건물 임의경매 등기신청 건수는 4773건으로 전년 대비 74.1% 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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